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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국선변호료 체불 대책이 ‘열정 변론’?

중앙일보 2015.08.31 00:01 종합 2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백민정
사회부문 기자
수도권 법원에서 국선변호 사건을 맡아온 A변호사는 지난 5개월간 법원으로부터 국선변호료 700만원을 받지 못했다. 국선 사건 보수는 건당 30만원 안팎. 처음 한두 달은 그러려니 했지만 사건 수가 20건 넘도록 국선변호료를 받지 못하자 지방변호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대법원, 서울고법, 서울중앙지법, 부산·대전·광주·대구지법 등 전국 법원 20곳에서 국선변호료 4억800여만원(1351건)을 지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 8월 29일자>



 A변호사는 “연체도 문제지만 앞으로 국선변호 사건 배당이 줄어들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서울에 비해 사건 수가 적은 지방은 특히 수임 경쟁이 치열해 젊은 변호사들이 국선 사건에 몰린다. 일감이 줄어들까 봐 법원에 연체 이유도 물어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대법원은 연체 이유를 “예산 부족 때문”이라고 하면서 향후 대책으로 “국선전담변호사의 사건 배당 건수를 늘리겠다”고 말했다. 국선변호인은 국선전담변호사와 일반 국선변호사로 나뉜다. 국선전담변호사의 경우 매달 고정 급여를 주면서 국선변호 사건을 맡긴다. 또 관할 법원별로 등록된 변호사 중에서 국선변호인 신청을 받아 사건을 배당한 뒤 건당 보수를 준다. 결국 국선전담변호사에게 사건을 더 맡겨 일반 국선변호사에게 지급될 비용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영장실질심사사건 보수 하향 조정(건당 15만원→10만원) ▶불필요한 국선변호사 선정 자제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대법원 대책대로라면 국선전담변호사의 업무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국선전담변호사는 “국선 변호의 질이 나빠지는 건 불 보듯 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매달 신건(새로운 사건)이 30건씩 배당됩니다. 기존 사건까지 합하면 한 달에 50~60건씩 맡는 것이죠. 피고인이 발품 많이 드는 국민참여재판이라도 신청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곤 합니다.”



 국선변호 사건 신청 건수는 지난해 12만 건을 돌파했다. ‘형사 사건 성공보수’에 대해 무효를 선언한 대법원 판결로 국선 사건 신청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이 내놓은 대책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국선변호는 서민들의 재판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최근 여성 최초로 강간죄로 기소됐던 전모(45·여)씨 재판에서 무죄를 이끌어낸 두 변호사도 국선전담이었다. 공정하게 재판 받을 권리를 변호사들의 열정에만 맡기겠다는 건 진정한 대책이라고 볼 수 없다. 시민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대법원의 진지한 답변을 듣고 싶다.



글=백민정 사회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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