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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따윈 필요 없는 감정 편향의 세계

중앙선데이 2015.08.30 04:45 442호 29면 지면보기
사람들은 드러난 증거보다 감정에 따라 판단하는 경향을 보인다. 만약 누군가를 좋아하면 별다른 증거가 없어도 그의 말을 쉽게 믿는다. 반면 누군가를 싫어한다면 모든 증거가 그의 말을 뒷받침하더라도 쉽게 믿지 않는다. 즉 좋으면 판단할 필요가 없고, 싫으면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의 주장을 의심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의 주장을 수용하는 감정과 판단의 불일치는 인지적 불편함을 유발한다. 우리의 뇌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굳이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단한 자제력을 발휘하지 않는 한, 지금 느끼는 감정이 과연 정당한지 따지기보다 감정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로 인해 논리적 타당성보다 감정적 방향이 특정 대상에 대한 평가를 좌우하는 감정편향이 쉽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나는 약간의 반란은 좋은 것이며, 자연계에서의 폭풍처럼 정치계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주장을 보자. 한 연구에서 미국 대학생들을 두 그룹을 나누어 이 주장에 대한 메시지 수용도 조사를 했다.연구자는 첫 번째 그룹에게 이 메시지가 미국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의 주장이라 소개했다. 반면 두 번째 그룹에게는 러시아 혁명가인 레닌의 주장이라 소개하였다. 조사결과 첫 번째 그룹 대부분은 이 주장에 찬성했지만, 두 번째 그룹 대부분은 이 주장에 반대했다. 이처럼 상대에 대한 감정은 상대와 관련된 주변으로 쉽게 전이된다.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확실치 않으면, 점심 메뉴나 영화를 고르는 가벼운 선택부터 자동차나 주택 구매와 같이 많은 비용과 위험을 수반하는 선택까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결정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조건을 꼼꼼히 따지더라도 최종 선택을 하려면 결국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감정이 실제 의사결정 기능을 한다는 의학적 증거도 있다. 세계적인 신경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연구에 의하면, 감정과 관련된 뇌 부위에 손상을 입어 적절한 감정을 보여주지 못하는 환자들은 결정하는 능력이 같이 손상되었다고 한다. 감정은 단순히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반드시 필요한 기능인 것이다.개인 차원을 넘어 공공정책에 대한 감정 역시 정책이 주는 혜택과 위험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준다. 심리학자 폴 슬로빅은 사람들이 원자력에 대해 이런 판단을 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만약 당신이 원자력에 대해 감정적으로 싫다고 느끼면, 원자력이 주는 사회적 혜택은 실제보다 적고 위험은 실제보다 휠씬 크다고 믿기 쉽다. 반대로 원자력에 대한 당신의 감정이 좋다면, 원자력이 주는 사회적 혜택들이 충분하다고 믿기 쉬우며 원자력을 대체할 대안을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인간이 느끼는 여러 감정 중 공포감은 인지적 긴장감을 유발하고 스트레스를 증폭시킨다. 이 때문에 공포로 떨고 있는 뇌는 공포를 주는 실체의 존재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건의 발생 확률을 계산할 여유가 없다. 이로 인해 일단 공포감에 사로 잡히면 우리의 뇌는 어떤 식으로든 공포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향으로 작동한다. 비행기 추락사고에 대한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 직후에 일시적으로 비행기 예약 취소가 급증하고 여행자보험 가입이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좋고 싫음과 옳고 그름은 다른 것이다. 하지만 감정이 지배하는 세계는 “당신이 싫다. 고로 당신은 틀렸다”는 편향이 아무렇지도 않게 작동한다. 감정은 이유가 필요 없다.



 


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최승호?도모브로더 이사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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