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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쿠바 위기 후 ‘K-K 라인’ … 지금의 남북도 ‘K-K 라인’ 절실

중앙선데이 2015.08.30 04:39 442호 28면 지면보기

1963년 8월 30일 미군이 국방부에 설치된 미·소 핫라인 텔레프린터를 테스트하고 있다. [AP]



“민첩한 갈색 여우는 나태한 개 위로 점프했다 (The quick brown fox jumped over the lazy dog’s back) 1234567890.” 지금으로부터 꼭 52년 전인 1963년 8월 30일 핫라인(긴급직통라인)으로 소련정부에 보낸 미국정부의 메시지다. 기존 팬그램(A부터 Z까지 모든 알파벳이 포함된 문장)에 아라비아숫자와 아포스트로피(’)를 더해 만든 문구였다. 이 메시지를 보내기 10개월 전 미국은 쿠바행 소련 선박을 해상봉쇄하면서 소련과 전면전까지 염두에 둔 일촉즉발의 위기를 겪었다. 인류가 제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을 가장 크게 체감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다. 당시 1분1초를 다투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미국과 소련이 상대국의 공식 외교문서를 받는 데에 반나절이나 걸렸다. 이처럼 늘어진 연락시스템으로는 위기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는다. 이에 미국과 소련 정부는 위기관리 방안으로 핫라인을 설치하기로 63년 6월에 합의하고 2개월 후 개통했다. 핫라인이 모든 글자들을 제대로 타이핑하고 프린트하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해 개통 날 여우와 개가 등장하는 팬그램을 보냈다. 이런 미국의 테스트 메시지에 소련은 모스크바 석양에 관한 서정적 러시아어 글로 답변했다.   적대세력 간 의사소통에 긴요한 핫라인 미·소 간 핫라인의 공식 명칭은 직통연결(direct communications link·DCL)이었고, 미국의 관련 부서에서는 MOLINK (Moscow-link)라 불렀다. 미국 대중에게는 레드폰으로 불렸는데, 그러다 보니 다이얼도 없고 버튼도 없는 붉은 전화기가 영화 등 여러 매체에서 미·소 간 핫라인 소품으로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국가정상 간에 아무런 다이얼링 없이 수화기만 들면 바로 통화할 수 있는 붉은 전화기는 미·소뿐 아니라 우방국 간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날 정상 간 통화는 특정 국제전화번호로 걸어서 이뤄진다. 52년 전 개통된 미·소 핫라인은 텔레타이프였다. 미국은 영문 텔레프린터 4대를 모스크바에 보냈고 또 소련은 러시아어 텔레프린터 4대를 워싱턴에 보냈다. 미국은 모스크바에 설치된 영문 텔레프린터로, 소련은 워싱턴에 설치된 러시아어 텔레프린터로 각각 메시지를 보냈다. 1980년대에 미·소 간 핫라인의 방식은 텔레타이프에서 팩시밀리로 교체됐고, 2000년대 와서는 e메일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미·소 간 핫라인은 백악관과 크렘린을 직접 연결하는 선이 아니었다. 대서양과 여러 나라를 경유하는 유선이다 보니 중간에 지하공사 등으로 케이블이 단절되는 사고도 종종 발생했다. 이런저런 한계가 있지만 미·소 간 핫라인은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진 적대세력 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 전략적 아이디어로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핫라인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여럿이다. 노벨상위원회의 공식 홈페이지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토머스 쉘링이 핫라인 설치에 기여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세상을 바꾼 전략] 공멸을 막는 핫라인

게임이론가 아이디어 반영된 직통 채널 당시 케네디 정부는 게임이론가 등 여러 전략가들을 중용했고 따라서 토머스 쉘링과 같은 게임이론가들의 아이디어가 미국의 정책에 많이 반영됐다. 핫라인이라는 직통 채널도 그런 전략적 효과를 고려하여 추진됐다. 전쟁의 결과는 누가 먼저 공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상대 공격을 받은 후에 반격할 때의 파괴력은 동일한 군사력으로 선제적으로 기습공격할 때의 파괴력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상대가 도발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상대의 도발 전에 선제공격해 상대를 미리 초토화하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방안이다. 이를 예방전쟁이라 부른다. 선제공격을 하더라도 상대가 반격해 전쟁 자체를 피할 수 없고 또 핵전쟁처럼 전쟁 승리가 평화보다 못할 때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상대가 도발할 걸로 오해하게 되면 먼저 공격해서라도 전쟁 피해를 줄이려 한다. 핫라인은 이런 우발적인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미·소 간 핫라인의 첫 공식 교신은 이른바 6일전쟁 때였다. 67년 6월 이스라엘은 아랍국가를 상대로 예방전쟁을 일으켰다. 정말 아랍국가들이 전쟁을 먼저 시작하려고 했는지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하여튼 이 6일전쟁 때문에 소련 흑해함대와 미국 제6함대가 지중해로 출동했다. 이때 미·소 간 핫라인이 가동됐다. 소련 총리 알렉세이 코시긴은 미국대통령 린든 존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전투행위가 즉각 중지되도록 미?소가 행동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6일전쟁은 더 이상 확전 없이 이름 그대로 6일 만에 종식됐다.

1971년 남한측 적십자사 최동일씨가 판문점 상설연락사무소간 직통전화로 첫 통화를 하고있다. [중앙포토]



적대적이거나 대등한 관계에서 더욱 필요 핫라인이 더욱 필요한 관계가 있다. 먼저 적대적인 관계에서다. 신뢰가 쌓여 오해도 없고 또 오해가 있다고 해도 바로 적대적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관계에서는 굳이 핫라인이 필요 없다. 이와 달리 오해가 심각해 바로 적대적 행동을 취하기 쉬운 관계에서는 핫라인이 큰 의미를 갖는다. 둘째, 어느 정도 대등한 관계에서다. 힘의 우열이 분명한 관계에서는 우발적인 전쟁 가능성이 크지 않다. 더구나 선제공격이냐 반격이냐는 것이 전쟁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에 비해 힘이 비슷할 때에는 공격·반격 시점의 미세한 차이가 승패를 가르기도 한다. 따라서 핫라인의 효능은 경쟁국 간에서 빛을 발한다. 셋째, 인접국 간의 관계에서다. 한반도처럼 야포만으로도 주요 시설들이 사정거리 내에 있을 때에는 기습 여부가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기습 가능성뿐 아니라 기습을 제거하려는 예방공격 가능성 또한 크다. 따라서 핫라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남북한 관계는 이런 핫라인을 필요로 한다. 특히 일방이 속전속결의 군사 독트린을 채택할수록 타방에 의한 예방전쟁의 가능성 또한 작지 않기 때문이다. 71년 9월 20일 남북한 적십자회담에서 남북 직통 전화 개설에 합의했다. 9월 22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남측의 자유의 집과 북측의 판문각을 연결하는 2개 회선이 개통됐다. 72년에도 여러 남북 간 접촉으로 전화선이 운영되기 시작했다가 76년 판문점 도끼사건으로 단절되는 등 남북 직통 전화와 함정 간 국제상선 주파수 연결은 개통과 단절을 반복하고 있다. 2005년에는 남북 간 광케이블이 연결돼 현재까지 개성공단의 주요 전화선으로 운영 중이다.



목함지뢰·연천포격 사태, 핫라인 없어 악화 최근 DMZ(비무장지대) 남측구간에 매설된 북한 지뢰가 폭발해 우리 장병이 부상당한 사건을 시작으로 한 대북 확성기 방송 개시, 연천 포격 교환, 준전시사태 선포, 전력 전진 배치 등 일련의 사태들은 남북 간 핫라인이 없어 악화한 측면이 크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은 실무진 간의 연결을 단절시키지 않고 자국 메시지를 상대국에 늘 전달했다. 이에 비해 북한은 접촉 여부를 전략적 선택지로 삼고 행동하고 있다. 벼랑끝 전략에서 자주 나오는 전략이다. 위기는 실무진 간 접촉 유무와 관계없이 고위직 간 접촉이 있어야 덜 악화한다. 그런 점에서 기존 실무적 차원의 남북 직통연결 외에 핫라인 설치가 필요하다. 52년 전 존 F 케네디(Kennedy) 미 대통령과 니키타 흐루쇼프(Khrushchev) 소련 총리가 개설한 핫라인은 그들의 이름 이니셜을 따서 K-K라인으로도 불린다. 이참에 두 코리아의 이니셜을 딴 진짜 K-K라인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한반도 K-K라인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연결이 복잡하지 않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해 잦은 접촉을 갖는 외국의 우방국 정상 간 국제전화처럼 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한반도 K-K라인이 청와대 대통령집무실과 북한 최고지도자 집무실 간 직통 전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 핫라인은 영화 장면으로 매력적이지만 위기관리가 그렇게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백악관과 크렘린이 바로 연결되지 않은 것처럼 남북 두 지도자 집무실 간 직통 연결은 적절한 방식이 아니다. 북한정권의 절대적 호전성을 믿는 사람들은 남북 간 핫라인 설치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핫라인은 변명 등으로 시간을 벌어 상대의 대비나 반격을 늦추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52년 전 당시 야당이었던 미 공화당은 핫라인을 뮌헨회담에 비유했다. 뮌헨회담은 주변국들이 히틀러에게 끌려다니다가 결과적으로 오히려 히틀러에게 전쟁 동기를 부여한 만남으로 평가되는 의사소통이다. 또 인권 등 여러 측면에서 북한 지도자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남북 간 핫라인 개설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을 실제로 통치하는 북한 지도자는 그 정통성과 민주성에 관계없이 매우 중요한 협상파트너다.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도발이 방지되는 것은 아니다.



일방이 전쟁을 원할 때는 별 의미 없어 도발 원점 타격은 도발 방지에 효과적이다. 전략적 그림에서 도발 원점이란 화력이 발사된 총구보다 도발 명령을 내린 지휘부다. 도발이 너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희생을 치르더라도 아예 도발의 뿌리를 선제적으로 뽑는 게 낫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상대가 그렇게 판단하지 않도록 신중한 행동과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일방이 진정 전쟁을 원한다면 핫라인이 별 의미가 없지만, 쌍방이 전쟁을 원치 않을 때에는 의사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게 되면 전투는 북한정권을 종식시킬 방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정권은 전쟁을 원치 않을 것이다. 북한에 비해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남한으로서도 전쟁으로 잃을 게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전쟁을 원할 리 없음은 물론이다. 의사소통이 잘못되어 쌍방이 원치 않는 결과가 도래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핫라인이 필요하다. 냉전시대 쿠바 미사일 위기 후 설치된 미·소 간 핫라인을 벤치마킹해보자. 남북 간 핫라인이 개통되면 첫 메시지는 테스트 문장이 될 것이다. 52년 전 미·소 간 핫라인 테스트 메시지로 등장한 팬그램은 오늘날 MS 윈도우에서 자판 및 폰트의 테스트 문구로도 사용되고 있다. 단어 ‘큰’을 추가하면 ㄱ부터 ㅎ까지한글 기본 자음이 다 들어간 팬그램이 된다. 이를 남북 간 핫라인의 테스트 메시지로 보내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민첩한 갈색 여우는 나태한 큰 개 위로 점프했다 1234567890.”



김재한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로체스터대 정치학 박사. 2009년 미국 후버연구소 National Fellow, 2010년 교육부 국가석학으로 선정됐다. 정치 현상의 수리적 분석에 능하다. 저서로는 『동서양의 신뢰』 『DMZ 평화답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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