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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현장서 땀 자국만 찾아도 범인 몽타주 그릴 수 있는 시대

중앙선데이 2015.08.30 04:09 442호 25면 지면보기

범죄현장에서 범인의 흔적을 찾는 것이 과학수사의 핵심이다. [중앙포토]



2012년 미국 법원은 커크 오덤(49세)의 성폭행 유죄 판결을 뒤집었다. 하지만 이미 21년의 옥살이를 한 후였다. 범행의 결정적 증거인 모발 검사가 애초 잘못됐다. 이를 밝힌 것은 20여 년 전에는 불가능했던 DNA 검사결과다. 잘못된 검사가 한 사람과 그 가정을 산산조각낸 셈이다. 조선시대 살인사건 수사 지침서 이름이 ‘무원록(無寃錄)’이다. 무원, 즉 원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최근의 첨단 DNA 수사는 이런 억울함이 생기지 않게 할 정도로 정확하다고 알려졌다. 과연 완벽할까? 첨단 DNA 수사의 현재와 미래가 궁금하다.


[김은기의 ‘바이오토크’] DNA 범죄수사

21년 전의 누명을 벗긴 첨단 DNA검사지만, 화성연쇄살인 피해 여성들의 한을 풀어주지는 못하고 있다. 1986년 이후 발생한 10여 건의 화성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2003)’에서 주인공 형사(송강호 분)는 DNA 검사를 국내에서 하지 못함에 땅을 친다. 영구 미제 사건이 되는 것처럼 영화는 끝난다. 다행히 경찰은 9번째 희생자에게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DNA시료를 확보했다. 하지만 현재 확보된 10만여 명의 국내 전과자 리스트에는 맞는 DNA가 없다. 만약 범인이나 그의 친척이 다른 범죄로 잡혀서 그들의 DNA가 확보된다면 범인을 잡을 수 있다. 16년 전의 미제 살인사건이 해결된 네덜란드의 경우가 바로 그런 사례다.



99년 네덜란드 한 시골에서 16세 소녀가 성폭행 후 살해됐다. DNA검사에 맞는 용의자는 없었다. 13년 뒤 경찰은 다른 종류의 DNA 검사를 실시했다. 즉 남성에게만 있는 Y염색체를 검사했다. Y염색체는 범인의 친척도 찾아낼 수 있다. 사건현장 5㎞ 반경 내에 사는 남성 8000명이 ‘자발적’으로 면봉으로 구강 상피세포를 채취하는 데 동참했다. 그런데 그 안에 일치하는 DNA가 있었다. 45세 범인은 범행을 자백했다. 왜 그는 ‘자발적’인 검사에 참여했을까? ‘자발적’이라 하지만 빠지면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경우 570건의 DNA 검사가 있었지만 아직 일치하는 용의자가 없었다.



TV의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즉 미국 ‘과학수사대’ 드라마에서의 실험실은 언제나 믿음직스럽다. 지문을 넣기만 하면 척척 컴퓨터가 범인을 찾아준다. 또 모발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모습만 보여도 범인은 이미 잡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완벽한 과학은 어디에도 없다. 10년 전만 해도 모발은 현장의 최고 샘플이었다. 하지만 현미경상으로 완벽하게 같아 보이는 모발도 실제는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DNA 검사 기법이 도입된 후다. 그동안 부정확한 모발 증거로 잡아넣은 복역자 중 잘못된 80명이 석방됐다. FBI도 모든 과학수사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현재 범죄 수사상 가장 강력한 증거는 DNA 검사다.   제퍼슨의 흑인 혼외 자녀도 DNA로 밝혀 88년 과학 잡지인 네이처에 충격적인 논문이 실렸다. 미국 백인 대통령에게 흑인 노예 사생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이고, 2달러 미국 지폐의 얼굴이며 미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이다. 그가 흑인노예 사생아를 낳았다는 루머는 지난 180년간 미국사회에 떠돌았다. 옥스퍼드대학연구팀이 대통령 자손과 흑인노예 자손들의 DNA를 비교한 결과, 루머는 사실이었다. 이후 ‘대통령의 흑인노예 자녀들’이란 이름의 전시가 스미소니언박물관 주도로 전국을 순회했다. 공교롭게도 이 전시회가 한창일 때 빌 클린턴 대통령과 여비서 모니카 르윈스키 사이의 섹스 스캔들이 터졌다. 클린턴은 통정(通情)한 적은 절대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여비서의 옷에 묻어있던 정액 샘플과 비교할 테니 클린턴의 혈액 샘플을 보내라는 대배심의 통보 압박에 클린턴은 ‘부적절한 관계’임을 털어놓았다. 미 대통령들의 어두운 일면을 DNA 검사가 만천하에 밝힌 셈이다.



두 대통령의 민낯을 밝혔다는 면에서는 같지만 두 케이스의 DNA 검사 방법은 약간 다르다. 제퍼슨의 경우 180년 뒤의 남자 후손들이 ‘같은 씨앗인가’를 보는 것이고 클린턴의 경우는 ‘이게 네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3종류의 DNA가 범죄수사에 쓰인다. 부자·형제친척인가는 Y 성염색체를, 모녀·자매 사이인가는 ‘미토콘드리아’를, 본인을 확인할 때는 성염색채가 아닌 22쌍의 상(常)염색체를 쓴다. 모든 염색체의 DNA를 다 검사하기는 비용·시간이 많이 든다. 대신 지문처럼 ‘특징점’을 본다. 전체 염색체 중 13군데를 비교하니 틀릴 확률이 10억분의 1이다. 혈흔·모발·정액·타액 외에도 가해자가 만진 모든 물건의 표면에는 비록 지문은 없을지라도 땀 속 미량의 DNA는 남아있다. 일단 DNA가 확보되면 그 포위망을 벗어나기는 힘들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다이아몬드도 흠이 있을 수 있다.

범죄현장 증거가 중요하지만 때론 오류가 있다. 오히려 지문 속의 DNA 흔적에서 범인을 확실히 잡을 수 있다.



인조 DNA로 범죄 누명 씌울 수도 만약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나의 혈액을 똑같이 만들어서 살인 현장에 뿌려놓는다면, 그리고 하필 나의 알리바이가 없다면, 무죄라고 주장해도 법원이 내 손을 들어줄까? 실제로 이스라엘의 한 대학연구팀이 DNA 수사의 허점을 짚는 실험을 했다. 방법은 이렇다. 어떤 남자의 모발을 한 가닥 얻어서 유전자정보를 분석하고 유전자를 그대로 복사해서 극미량의 DNA를 얻었다. 이 DNA로 두 개의 증거물을 만들었다. 하나는 칼 손잡이에 DNA를 묻혔다. 또 하나는 인조혈액을 만들었다. 즉 어떤 여자의 혈액을 1㏄ 뽑아 DNA가 있는 백혈구를 제거하고 여기에 인조 DNA를 첨가했다.



이렇게 만든 두 종류의 DNA 샘플을 미국의 공인된 DNA 검사소에 보냈다. 검사는 다른 샘플처럼 아무 문제없이 정상대로 진행됐다. 결과를 통보받았다. 샘플 주인공은 남자이고 DNA 특징은 이러이러하다고 DNA 정보를 보내왔다. 여성의 혈액이었음을 전혀 구분 못했고 또 이 샘플이 인조라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누군가를 범인으로 만들기는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DNA 만들기가 그렇게 쉬울까? 답은 ‘그렇다’이다. 대학생 정도의 지식이면 집에서도 만들 수 있다. 실험 장비와 비용은 수 천만 원대 정도면 충분하다. DNA 정보만 있으면 그 사람을 대변할 조각 DNA를 만들어서 현장 흉기에 묻혀놓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최고의 과학인 DNA검사도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런 인조 DNA 위협에 법과학도 대처하고 있다. 진짜 DNA에만 붙어있는 꼬리표(메틸기)를 검사하는 방법을 개발 중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어떤 유형일까? 이 사건은 공통 특징들이 몇 가지 있다. 피해 여성 나이가 다양하고 스타킹으로 두 손을 묶고 속옷으로 얼굴을 덮는 이상행동이다. ‘프로파일러’라고 불리는 범죄 심리학자들은 이런 특징으로부터 범인을 예측한다. 즉, 단독범, 안정적 직업, 극심한 가학성 소유자를 예측하고 있다. 범행패턴을 보고 범인을 예측하는 범죄 프로파일러의 주 무기는 통계다. 예를 들면 대형마트에 토요일 오후 6~7시 경에 오는 사람들의 신용카드를 분석하면 구매자의 나이·성별·주거지·직업·수입 심지어는 차량 정보도 알 수 있다. 만약 범인이 그 시간에 대형마트에서 특정 물건을 구입한 사람이라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를 추측할 수 있다. DNA로 범인을 예측하는 것도 광범위한 통계이다. Y염색체로 범인의 성(姓)을 예측하는 것도 같은 성(姓)씨의 형제친척이 같은 Y를 가진다는 DNA 통계다.

사람마다 DNA의 특정부분의 길이가 다르다. 이것을 비교하면 동일인인지 자식 관계인지도 알 수 있다.

인간 DNA(46개 염색체)의 통계를 내면 피 한방울 속의 DNA만으로도 몽타쥬를 그릴 날이 머지않았다.



DNA 정보는 아직 여러 증거 중의 하나 DNA 예측은 신체적 특징을 알려준다. DNA 종류에 따라 검은 얼굴색을 예측할 수 있다. 피부색을 결정하는 특정 유전자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유전자에 따라 눈동자색도 결정된다. 실제로 유전자 정보만으로 푸른색의 눈동자인지 맞출 확률은 80% 이상이다. 미간의 길이를 결정하는 4개의 유전자도 발견됐다. 4개의 유전자 정보로 얼굴 모양을 그릴 수 있다. 이런 유전자의 발견으로 현재는 키, 대머리 여부, 얼굴 형태도 DNA 분석으로 예측 가능하다. 이제 현장에 범인의 손이 닿은 곳에 있는 땀 흔적만으로도 범인의 몽타주를 그릴 날이 머지않았다.



프랑스 작가 라 뤼브에르는 “죄인이 벌 받는 것은 악한들에 대한 경고이지만, 무죄인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는 것은 모든 성실한 사람들이 나눠 갖는 문제다”라고 했다. 21년을 억울하게 옥살이 한 흑인 청년의 경우처럼 당시 최고의 기술이었던 현미경 모발검사법도 오류가 있었다. 최첨단의 DNA 검사법도 완벽하지는 않다. 10억분의 1 확률이라고 하지만 100% 범인이라는 확증은 역시 아니다. 헌법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다. 즉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모든 피고인은 무죄다. DNA 검사도 유죄 증거의 하나일 뿐이다. ‘백 명의 진범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형법의 기본이다. 억울한 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범죄현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EBS ‘극한직업’ 프로그램에 과학수사대가 방영될 정도로 범죄현장 수사는 힘들다. 참혹한 살인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육체적·정신적 어려움을 DNA 첨단기법이 덜어주었으면 한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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