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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성기·군부 통제 ‘김정은 소득’ … 美엔 대화 신호 보낼 듯

중앙선데이 2015.08.30 03:54 442호 4면 지면보기
지난 22~25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접촉은 ‘이기려는 한국’과 ‘지지 않으려는 북한’의 한판 승부였다. 서로가 이겼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승부를 판정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전쟁으로 가는 최악의 상황에서 남북한이 지혜를 모았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승부에서 손해 보는 협상을 하지 않았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우리한테는 이산가족 상봉이 중요하긴 하지만 북한과 비교해선 얻은 게 없다. 협상 자체만 보면 북한이 얻은 게 많다”고 평가했다. 천 전 수석은 “우리가 북한이 표현한 ‘유감’을 ‘사과’로 억지로 해석할 뿐이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해 준 것은 균형이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 방증으로 남북 고위급 접촉 대표였던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은 지난 25일 “남조선(한국) 당국은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 가지고”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북한의 대내 선전용이라는 분석이 유력하지만 자신들이 원했던 대북 확성기 중단을 성과물로 얻었다.



대북 확성기 중단은 김정은의 ‘명령’ 북한이 대북 확성기 중단에 집착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대북 확성기 내용 가운데 김정은을 ‘자신감을 잃은 김정은’ ‘철부지 김정은’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할 독재자’라고 표현하는 등 ‘최고 존엄’을 건드리는 내용이 있어 북한은 협상을 통해 이를 막아야 했다. 둘째, 김정은은 포격전이 발생한 지난 20일 밤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해 인민군 최고사령관 명의로 22일 오후 5시까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군사적 행동을 하겠다고 선포했다. 따라서 대북 확성기 방송은 ‘최고사령관 명령’이 돼 버렸기 때문에 북한 고위급 접촉 대표들은 죽기 살기로 매달렸던 것이다. 김정은은 이번 협상에서 한국으로부터 대북 확성기 중단을 얻었고 내부적으로 군부를 통제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었다.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지난 27일 조선중앙TV와의 일문일답 보도 형식에서 목함지뢰 도발사건(8월 4일)에 대해 “원인 모를 사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군부 내 충성 경쟁에서 빚어졌을 가능성이 커 앞으로 자신의 명령 없이 어떠한 도발도 강행하지 말라고 강력한 경고를 군부에 보낸 것이다. 김정은은 그동안 군부를 통제하기 위해 이영호 총참모장,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 등을 숙청하거나 군 고위 인사들을 빈번하게 승진 또는 강등시켰지만 군부는 여전히 그에게 두려운 존재다. 따라서 김정은은 군부를 통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칼’을 휘둘렀다. 김정은이 27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열고 일부 위원을 해임하고 조직 개편을 단행한 것도 그 일환이다. 남북 고위급 접촉에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을 대표로 보낸 것은 한국의 요청도 있었지만 앞으로 군부를 잘 통제하라는 부담을 그에게 주기 위해서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정은은 군부가 나서다 보니 남북관계가 엉망이 됐다고 평가하고, 군부는 앞으로 공동보도문에 따라 행동하라는 뜻을 전달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은은 이를 통해 군부를 휘어잡으면서 명실상부한 친정체제를 강화하게 됐다.


[8·25 남북 합의 이후] 북한 손익계산서와 향후 행보

한국 여론 악화에 김양건 다시 전면에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김정은이 김양건을 전면에 내세운 점이다. 김양건은 지난 20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사태 수습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는 서한을 보내면서 ‘해결사’로 나섰다.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한 김양건은 김정은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김정은이 김양건의 부인을 ‘이모’라고 부를 정도다. 김양건의 부인이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1953~2004)와 친하게 지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김양건을 내세운 점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김정은은 황병서의 지난 25일 발언에 대해 한국의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식한 듯 김양건을 다시 내세웠다. 김양건은 지난 27일 “북과 남은 이번 접촉에서 이룩된 합의정신을 귀중히 여기고 극단적인 위기를 극복한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북남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건설적인 방향으로 전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다음 단계로 구상하는 것은 대외관계 개선일 것이다. 불편해진 중국과의 관계를 원상복구할 필요가 있다. 남북 간 군사적 대치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자 중국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1일 성명을 통해 “중국은 어떤 긴장 조성 행위에도 반대하며 (남북에) 자제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한반도에 긴장 상황을 조성한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표현한 것이다. 중국은 북한이 남북관계를 긴장시키면 미국이 한반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6·25전쟁에서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같은 날 외무성 성명에서 “우리는 수십 년간 자제할 대로 자제해 왔다”며 “그 누구의 그 어떤 자제 타령도 더는 정세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없게 됐다”고 맞받아쳤다. 이렇게 냉각된 북·중 관계를 풀기 위해 김정은은 북·중 혈맹의 상징이랄 수 있는 최용해 당 비서를 다음달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전승절 행사에 보낸다. 베이징 소식통은 “최 비서가 이번 방중을 통해 9월 말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를 논의해 줄 것을 중국에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일 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올 듯 김정은은 자신이 내민 손을 중국이 거절할 경우 그 대안으로 일본을 생각하고 있다. 북·일 양국은 일본인 납치 문제가 속도를 내지 못하자 일본인 유골 찾기로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한다. 현재 북한에 일본인 유골은 2000여 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전후 혼란기에 북한 지역에서 사망해 평양 교외 용산묘지에 묻혔다. 일본인의 유족으로 이뤄진 ‘평양 용산회’ 성묘단 6명이 지난 16일 용산묘지를 찾아가 성묘했다. 북·일은 유골 한 구당 1만 달러 선에서 협상을 벌이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2005년까지 유골 발굴작업을 했다. 일본도 유골 발굴작업에는 적극적이다. 북한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발해 연구도 많이 하고 있다. 북·일이 협상을 시작하면서 발해에 관한 얘기부터 먼저 꺼냈기 때문이다. 해동성국을 이뤘던 발해와 일본은 당시 사이가 좋았다. 사신 교환을 보더라도 발해 34차례, 일본 14차례나 할 정도였다. 북한은 최근 발행한 역사과학(2015년 2호)에서 “발해의 대외무역에서 일본과의 무역은 그 어느 나라보다 활발하게 진행됐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이처럼 중국과 일본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최종 목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다. 따라서 남북 고위급 접촉 타결을 계기로 중국과 일본의 힘을 빌리려 하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지난 26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화 정상회담을 소개하면서 “두 정상이 북한 정세에 대해 협력하겠다는 방침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남북 고위급 접촉 타결 이후 벌어질 한·중 정상회담, 미·중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으로 요동칠 한반도의 변화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고수석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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