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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14개’ 제한 전엔 20~30개 넣고 다녀 … 어기면 한 홀당 2벌타

중앙선데이 2015.08.30 03:48 442호 23면 지면보기
라운드를 하다가 7번 아이언을 부러뜨렸던 경험이 있다. 갑자기 샤프트가 부러지는 바람에 그날 내내 7번 아이언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140~150야드 정도의 거리가 남으면 7번 대신 8번을 잡을지 6번을 써야할지 고민해야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골프 클럽은 왜 14개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거지? 7번과 8번 사이에 7.5번 아이언이 있다면 좋을 텐데….’  누구나 아는 규칙이지만 골프 클럽은 14개까지만 가지고 다닐 수 있다. 프로골프 투어에선 만약 14개를 넘는 클럽을 가지고 다니면 1홀당 2벌타를 받는다. 매치 플레이에선 그 홀에서 진 것으로 판정한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골프 클럽의 개수에 대한 규정을 발표한 건 1939년이었다. 골퍼들이 30개를 넘는 클럽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지자 명문화 된 규정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1930년대 골퍼들은 여러가지 구질의 샷을 구사하기 위해 드라이버만 5~6개를 꽂고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캐디가 “골프백이 너무 무겁다”며 추가로 수고비를 요구했다는 일화도 있다. 골프클럽 개수에 대한 규정이 생겨나면서 3~9번 아이언처럼 클럽에 숫자를 매기는 개념이 등장했다.  골프 클럽은 초창기인 15세기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1800년대까지만 해도 깃털로 만든 공, 가죽과 깃털이 혼합된 공 등 다양한 소재의 공을 때려내기 위해 골퍼들은 20~30개의 클럽을 가지고 다녔다.  1826년 스코틀랜드에선 양질의 골프 클럽을 만들기 위해 미국산 히코리 나무를 수입했다. 그래서 히코리 샤프트로 만든 클럽이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그러면서 클럽 헤드는 미국산 감나무(퍼시몬)로 만든 제품이 유행했다. 그러다 1800년대 후반 아이언 헤드가 나오되면서 감나무로 만든 클럽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스틸 샤프트가 나온 것은 1890년대 후반이었다. R&A는 그러나 1929년에야 스틸 샤프트를 합법적인 제품으로 인정했다. 샌드 웨지는 1930년대 등장했다. 프로골퍼 진 사라센은 벙커에서 쉽게 탈출하기 위해 고민하다 현대와 비슷한 형태의 샌드 웨지를 고안해냈다.  미국의 앨런 셰퍼드는 달을 밟은 5번째 인류이자 달 표면에서 골프를 즐긴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골프를 좋아했던 그는 윌슨의 6번 아이언 헤드를 짐 속에 넣고 아폴로 14호에 탑승했다. 샤프트가 달린 정식 클럽을 가지고 가지 못한 건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71년 2월6일은 인류가 달에서 처음으로 골프를 즐긴 날이다. 셰퍼드는 아이언 헤드를 막대기에 매단 간이 클럽을 가지고 달 표면에서 두차례 샷을 했다. 6번 아이언으로 가볍게 친 공은 무중력 상태에서 300야드 가량 날아갔다.  그라파이트 샤프트는 73년에 첫 선을 보였다. 91년 캘러웨이가 내놓은 빅버사 드라이버도 특기할 만 하다. 스틸 헤드를 장착한 이 드라이버가 인기를 끌면서 퍼시몬 헤드가 달린 옛 드라이버는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2013년 테일러메이드가 내놓은 R1 드라이버는‘셀프 튜닝’의 끝판왕으로 불린다. R1 드라이버는 로프트를 12개의 각도, 페이스 앵글은 7가지 각도로 조절할 수 있는 신제품이었다.



도움말 핑골프 우원희 부장, 강상범 팀장, MFS골프 전재홍 대표, 던롭스포츠코리아 김세훈 팀장?


[정제원의 골프 장비록] 클럽 갯수 규제의 역사

 



정제원 기자?newspoe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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