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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사이클’의 역류 … 한국도 중국 본격 침체 대비해야

중앙선데이 2015.08.30 03:39 442호 6면 지면보기

지난 26일 베이징의 한 증권사 객장에서 투자자가 시세판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 중국 인민은행은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동시에 내렸지만 상하이종합지수는 1.27% 떨어졌다. [AP=뉴시스]



‘드라마틱’하다. 중국을 보는 서구의 시각 변화가 그렇다. 세계경제가 미국발 금융위기에 직면했던 2008~2009년 서방 언론이 묘사한 중국은 ‘백기사(White Knight)’였다. 세계 국내총생산(GDP) 성장의 약 50%를 중국이 만들어 내던 때다. 영국의 유력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의 표현대로 중국은 ‘서방 경제의 구원자(Saver)’였다. 당시 4조 위안(당시 약 680조원)의 경기부양 자금을 쏟아낸 결과다. 그런 중국이 지금 서방 언론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상하이 증시 버블 붕괴, 위안화 평가절하 등이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백기사’에서 경제 불안의 ‘원흉’으로 전락한 모양새다. 중국은 억울하다. ‘미국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탓에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졌는데 유독 중국만을 매도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중국을 보는 서방 전문가들의 시각은 매섭기만 하다.


[중국발 경제 쇼크] 위기의 본질 무엇인가

 



서방 언론은 도대체 이번 중국 증시 사태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상하이 주가 폭락세가 계속되던 지난 7월 4일. 리커창 총리는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시장 원성이 점점 당국을 향하고 있을 때였다. 리 총리는 강력한 부양책을 주문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장 신뢰를 회복하라’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특명을 받아든 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 행장과 러우지웨이(樓繼偉) 재정부장은 좀 더 시장 흐름을 지켜보자는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총리를 이길 수는 없었다. 직제상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국무원(행정부)의 한 단위에 불과해 독립과는 거리가 멀다. 경제를 틀어쥐고 있는 시 주석의 지시는 더더욱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돈을 풀고, 신규 상장을 막고, 연기금을 동원해 주식을 사들이는 등의 전면전이 벌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중국 고위 당국자의 말을 빌려 전한 상하이 증시 붕괴의 뒷얘기다. (8월 5일자) 리커창 총리의 평소 소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었다. 시진핑-리커창 체제 등장 후 첫 경제 일성은 ‘시장’이었다. 리 총리는 ‘시장의 자율 기능을 강화하고, 행정 규제를 과감히 풀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리코노믹스(Liconomics)’다. 실제로 지난해 600여 개의 규제를 철폐했고, 민간은행 설립을 허용하는 등 친시장 정책이 추진됐다. 그런 리 총리가 저우 행장의 만류를 저지하고 시장 개입에 나선 것이다. 왜 그랬을까? 서방 전문가들의 결론은 하나. 그만큼 경제 속사정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중국 산업계, 공급 과잉으로 신음 문제는 많다. 철강·자동차·가전, 심지어 정보기술(IT) 기기에 이르기까지 중국 산업계는 지금 공급 과잉으로 신음하고 있다. 더 이상 투자 여지가 없다. 부동산 시장은 지루한 침체를 지속하고, 초고속 성장의 일등 공신인 지방정부는 부채에 짓눌려 있다. 수출은 올 상반기 0.9% 증가에 그쳤다. 중국 경제를 이끌어 온 투자와 수출이 꽉 막힌 것이다. 위안화 평가절하는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아, 이제는 경기부양의 최후 수단인 환율까지 손을 대야 할 처지구나’라는 분석이 퍼지면서 세계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또 다른 측면은 정부와 시장의 ‘큰 싸움(Big Game)’이다. 이 싸움의 승자는 언제나 정부였다. 정부는 항상 자신 있었다. 시 주석은 “성장률 10%가 아닌 중고속 성장(7% 안팎)으로도 일자리 창출과 민생 안정을 이룰 수 있는 ‘뉴 노멀(新常態·신창타이)’ 시대가 오고 있다”고 낙관했다. 그러나 이번 주식 파동에서는 달랐다. ‘보이는 손’은 번번이 시장의 힘에 밀려야 했다. 정부가 나서 투자를 하면 거시경제가 금방 달아오르는 옛 국가 주도의 경제 시스템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징후다. ‘중국 고성장 시대의 종말’이라는 얘기가 나오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다. 이번 사태는 더 나아가 ‘여차하면 경제가 경착륙할 수도 있다’는 신호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중국 경제 시스템의 허약성이 노출됐고, 서방 언론은 그걸 간파한 것이다. 옛날의 중국이 아니다. 현재 중국이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5%다. 일본이 부동산 버블 붕괴로 위기에 직면했던 1990년대 초와 비슷한 수준이다. 게다가 중국과 글로벌 경제는 당시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차이나 사이클(중국으로 인해 야기된 세계 성장 주기)’은 이를 표현한 말이다. 지난 15년 세계경제는 이 사이클을 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2001년 WTO 가입하며 ‘세계의 공장’ 부상 사이클의 시작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었다. 중국은 WTO에 가입하면서 대외 교역환경이 좋아졌고, 수출이 늘었다. 수년간 수출 증가율이 20~40%를 기록했다. 중국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세계 공장’이라는 말도 그때 나왔다. IMF 통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4년까지, 세계 GDP 성장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몫은 약 28%에 달했다. 특히 세계가 금융위기로 신음하고 있던 2007~2009년에는 무려 50%에 육박하기도 했다. 서방이 중국에 ‘백기사 작위’를 수여하던 때다. 가장 먼저 ‘차이나 사이클’의 혜택을 받은 나라는 한국·일본·대만 등 주변 동아시아 국가였다. 세계 공장 중국에 부품을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품은 한국에서, 조립은 중국에서, 소비는 미국에서 이뤄지는 분업구조다. 이들 국가의 대중국 수출 중 중간재(반제품·부품)가 차지하는 비율은 지금도 60~80%에 달하고 있다. 이어 러시아·브라질·호주 등 자원부국이 중국 성장의 혜택을 누렸다. 중국은 ‘자원 먹는 하마’였다. 영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 금속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세계 알루미늄 소비의 약 54%를 차지하고 있다. 니켈(50%), 구리(48%), 아연(46%) 등도 중국이 빨아들였다. 중국이 시장에 나타났다 하면 값은 폭등했다. 호주 수출의 약 3분의 1이 중국으로 갔다. 2009년 이후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브라질의 최대 무역파트너가 됐다. 중국과 자원부국의 밀월은 2003년 ‘브릭스(BRICS)’라는 용어를 만들기도 했다.



자원 수출국도 고통의 역류에 휩쓸려 미국·유럽연합(EU) 등 선진국 소비자들은 중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저가 상품으로 편안한 소비를 즐길 수 있었다. 2000년대 들어 10년간 미국은 인플레 없는 성장을 누렸다. 거꾸로 중국 소비자의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IBM·GE·폴크스바겐·삼성·애플 등 다국적 기업들은 대거 중국으로 몰려갔다. 그들에게 중국 시장은 마지막 포식처였다. 그렇게 중국의 성장은 돌고 돌아 세계에 ‘복음’을 전했다. 이번 증시 파동은 상황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중국 경제가 주춤하면서 성장 둔화에 따른 고통이 동일한 경로를 타고 세계로 전이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차이나 사이클’의 역류다. 세계 GDP의 15%를 차지하는 경제대국 중국의 침체는 일부 국가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축복’이 아닌 ‘재앙’을 줄 수 있는 존재, 서방 언론에 비친 지금 중국이 바로 그 모습이다. 사이클 역류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자원부국이다. 중국의 자원 수요가 줄어들면서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중국의 전체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19.1%(한국무역협회 통계) 감소했다. 같은 기간 호주의 대중국 수출은 약 32.6%, 브라질은 26.2%, 러시아는 24.0% 급감했다. 자원의존도가 높은 나라이기에 충격은 더하다. 이 밖에 앙골라·콩고·남아공 등 아프리카 국가와 사우디아라비아·이란 등 중동 산유국 역시 ‘고통의 역류’에 휩쓸리고 있다. 중국의 수출이 줄면 중간재 수요가 감소하고, 이는 곧 주변 동아시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올 상반기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약 7.2% 줄었고, 일본 역시 10.8% 감소했다. 대부분의 제조업이 중국으로 넘어간 대만의 경우 중국이 기침하면 독감에 걸리는 처지가 됐다. 더 심각한 것은 중국의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중국-동아시아 국가 간 분업구조가 깨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제 어지간한 부품은 자국에서 다 만든다. 한국에서 가져가던 액정표시장치(LCD)를 광저우(廣州)에 있는 LG디스플레이에서 공급받고, 일본에서 수입해오던 TV 센서 부품을 우시(無錫)의 중·일 합작공장에서 조달하는 식이다. 그러니 대중국 수출이 줄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 국가에는 중국의 성장도, 경기 후퇴도 부담이다. 미국·EU 등 선진국이라고 해서 사이클 역류를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낮아 직접적인 충격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국 소비시장이 위축될 경우 애플·폴크스바겐 등 서방의 메이저 기업 역시 불안하다. 버버리·루이비통 등 유럽 명품 업체들도 긴장해야 한다. 중국 로컬(현지) 기업이 빠르게 경쟁력을 높여가는 것도 이들 서방 기업에는 부담이다. 아직 중국의 소비시장이 살아 있다는 게 위안일 뿐이다. (올 상반기 중국의 소비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0.5% 성장했다.) 이번 증시 파동을 중국 경제의 경착륙 신호로 보는 것은 무리다. 오히려 정부의 무리한 증시 부양 정책이 부른 ‘정책 실패’라는 게 더 정확한 진단이다. 그렇다고 중국 거시경제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 투자·수출 위주의 성장 전략에서 소비·서비스 산업 중심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이행기의 고통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중국의 성장 둔화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세계가 ‘차이나 사이클’의 역류에 대비해야 할 이유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woodyhan@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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