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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짝 게임에 빠진 투자자들

중앙선데이 2015.08.30 02:30 442호 18면 지면보기
100원짜리 동전 대여섯 개를 쥔다. 살포시 두 손을 포개어 위아래로 흔든다. 한 손으로 몇 개의 동전을 잡아챈다. 그리고 주먹 쥔 손을 상대방의 눈 앞에 내밀며 크게 묻는다. “홀이야 짝이야?”



공식용어로는 ‘홀짝 게임’, 동전을 흔들 때 짤랑짤랑 소리가 나서 속된 말로 ‘짤짤이’라 불리는 놀이를 하는 장면이다. 오랜 시간 홀짝 게임이 사랑받은 이유는 방법이 간단하다는 데 있다. 일단 카드, 주사위 같은 도구가 필요 없다. 주머니 속 몇 개의 동전만 있으면 된다. 규칙 또한 단순하다. 오직 손 안에 동전 개수가 홀수인지 짝수인지만 맞추면 된다. 

강일구 일러스트


증시고수에게 듣는다

Fed가 만든 ‘9월의 짤짤이’여럿이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한 명만 동전을 쥐는 수고를 하면 다른 사람들은 홀인지 짝인지 얘기하는 것만으로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 한 명도 할 수 있고 열 명도 할 수 있다. 승률이 공평하다는 점도 매력이다. 홀이 나올 확률도 50%이고 짝이 나올 확률도 50%이기 때문이다.



이런 매력 때문일까. 요즘 전세계 주식투자자들은 신종 홀짝 게임에 푹 빠져있다. 예를 들어 미국을 한번 보자.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자 연방준비제도(Fed)가 구원투수로 등판해 양적완화라는 카드로 초유의 금융위기를 넘겼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모두가 풍부한 유동성으로 만든 호황임을 알기에 Fed가 유동성을 빼는 순간 상황이 반전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Fed 의장인 재닛 옐런의 입만 쳐다보게 된 미국 투자자들은 금리가 인상될 것 같으면 주식을 팔고 금리인상이 연기될 기미가 보이면 주식을 사는 홀짝 게임을 만들어냈다. 필자는 이를 ‘9월의 짤짤이’로 부르고 싶다.



중국인들도 주식투자를 홀짝 게임으로 승화시켰다. 상하이 본토 시장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중국 정부의 증시 부양 의지를 바탕으로 폭등세를 보였다. 이렇게 시장의 에너지가 기업의 실체적 내용이 아닌 중국 정부의 입장에 달려있다 보니 중국 투자자들은 정부의 움직임만 살피는 도박사들이 되고 말았다.



예컨대 정부가 부양책을 쓰면 홀, 방치하는 모습을 보이며 짝이다. 홀이 나오면 시장이 오르니 돈을 따고 짝이 나오면 시장이 내리니 돈을 잃는다. 최근의 움직임을 비유하자면 상반기까지 홀만 나오며 분위기가 좋다가 하반기 들어서며 불행하게도 계속 짝만 나왔고 이번 주에 겨우 홀이 한번 나온 모습이다. 게다가 원금의 몇 배에 이르는 빚까지 내서 홀에만 올인 하다 보니 짝이 연달아 나왔을 때 충격이 가히 메가톤급이었다.그럼 한국은 어떨까? 한 마디로 미국과 중국에서 벌어지는 홀짝 게임의 결과를 보고 나름의 한국식 홀짝 게임을 하는 격이다. 좋은 말로 하면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는 게임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참 자존심도 없다. 요즘 게임의 양상은 이렇다. 상장된 주식들을 ‘고PER(주가수익률)주-저PER주’ 혹은 ‘경기 민감주-경기 방어주’로 나눠 놓은 후 중국 시장이 폭등세를 보이면 비싼 주식에 돈이 몰리고 미국이 금리 인상을 예정대로 추진할 것 같으면 경기 방어주에 돈이 몰리는 식이다. 그 결과 황당하게도 바이오주의 움직임이 자체의 실적이 아닌 중국 시장의 부침과 동행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홀짝 게임은 기업 펀터멘털 무시투기자들 간의 암묵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홀짝 게임의 가장 큰 문제는 주가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인인 기업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무시된다는 점이다. 비싼 주식은 그 자체로 원금 손실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홀이 나왔으니 이 주식은 가치가 얼마이건 간에 올라도 된다”는 논리로 리스크가 합리화된다.



과거 한국의 투기자들이 즐겨했던 대표적인 홀짝 게임이 바로 대선 테마주다. A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크면 그와 개념적으로 묶어둔 주식이 오르고, B 후보가 스캔들에 걸려 낙마할 것 같으면 관련 기업의 주가가 폭락하는 식이다. 시간이 흐른 뒤 대선 테마주는 누가 당선됐는가와는 별개로 결국 내재가치로 주가가 수렴했다. 당선 가능성이라는 홀짝을 맞추려고 달려든 사람들 중 과연 수익을 낸 투자자가 있었을지 의문이다.



글로벌 경기 전망은 불투명하고 자산가격의 변동성은 정상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한 마디로 전세계 금융시장이 매우 혼란한 시기다. 이럴 때일수록 싸고 좋은 주식은 결국 오르고, 비싼 주가를 지지하려면 그에 걸맞은 실적이 필요하다는 주식투자의 기본원리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홀이 나온다고 혹은 짝이 나온다고 개별 주식이 가진 리스크가 사라지진 않는다. 홀짝 게임에서 벗어나라. 오직 과거부터 검증된 탄탄한 비즈니스모델 그리고 불확실성을 상쇄할만한 저평가된 가격만이 혼란한 시기를 이겨낼 버팀목이다.?



최준철?VIP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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