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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순간 황홀하게 포장하는 스타일의 미학

중앙선데이 2015.08.30 00:39 442호 30면 지면보기
연극이 이야기인지 이미지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유럽 유명 연출가들의 최신작들이 그렇다. 영상을 적극 활용한 새로운 무대 언어 실험으로 빚어낸 예술성 넘치는 미장센들이 감탄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이야기가 없어 영 싱거워 보인다. ‘스토리는 사라지고 스타일만 남았다’는 말도 많이 한다. 베케트, 이오네스코와 더불어 3대 부조리작가로 통하는 프랑스 극작가 장 주네의 유작 ‘스플렌디즈’에 대한 첫 인상도 그랬다. 1948년 작이지만 주네 본인이 원하지 않아 발표하지 않았고, 사후인 93년에야 발견되면서 유작이 된 특이한 사연의 작품이다. 요즘 프랑스에서 가장 핫한 연출가라는 아르튀르 노지시엘 연출로 올 1월 오를레앙 국립연극센터에 초연됐고, 국립극단의 초청으로 이번에 첫 세계 투어 무대를 가졌다. 국립극단과 노지시엘 연출은 이후 김영하의 소설 『빛의 제국』을 무대화해 내년 한국과 프랑스에서 선보일 예정이라니, 세계적인 연출가가 한국의 동시대 텍스트를 어떤 무대언어로 뽑아낼지 미리 엿보는 의미도 있다. 탐미주의자였던 장 주네의 희곡에 연극적 미학과 영화적 미장센을 접목시키는 연출가 노지시엘과 리카르도 헤르난데스(무대)·스캇 질린스키(조명) 등 브로드웨이에서 손꼽히는 예술가들이 함께 만든 무대는 역시나 매우 스타일리시했다. 무대를 여는 건 주네가 감독한 유일한 영화 ‘사랑의 찬가’(1950). 26분짜리 흑백 무성영화는 독방에 갇힌 남자 죄수들이 서로를 욕망하는 장면의 연속이다. 그들은 벽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담배를 나눠 피우며 자위를 하고, 이를 엿보는 경찰도 덩달아 달아오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벽을 통해 교감하는 죄수들이 행복한 표정이고, 거기 끼지 못한 경찰은 불행해 보인다. 스크린이 걷히면 고풍스런 호텔 객실층의 복도 모퉁이가 드러나고, 일곱 명의 갱스터가 인질극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이다. 감옥인지 호텔인지 모르게 나란히 밀착된 방 8개를 각각 드나드는 갱스터들은 곧 체포될 위기에 처해도 전혀 긴박하지 않은 리듬의 대화를 나누고, 속옷 바람으로 춤을 추듯 움직인다. 여기에 경찰 한명이 잠입해 편을 드는 척, 결국 이들을 배신하고 만다. 하룻밤 꿈처럼 의미없어 보이는 무대지만 실은 엄청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주네는 불행한 성장환경 탓에 방황하다 절도, 남창, 탈영 등의 죄목으로 종신형을 받고 16년간을 복역했다. 덕분에 죄수들과 범죄의 세계에서 영감을 얻어 많은 작품을 썼고, 그의 글에 감동한 장 콕토, 사르트르 등의 탄원으로 사면을 받고 풀려나게 됐다. 막상 감옥을 나오자 영감을 주던 어둠의 세계에 대한 상실감에 자살기도까지 했던 주네가 그 세계에 작별을 고하는 두 작품이 바로 희곡 ‘스플렌디즈’와 영화 ‘사랑의 찬가’였으니, 실제로 그는 더 이상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주네는 희곡이 아니라 가부키와 같은 의식적인 텍스트를 쓴 것”이라는 노지시엘 연출의 말처럼, 어쩌면 이것은 종교적 의식행위였는지도 모른다. 현실을 아주 역설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던 그는,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범죄 세계에 대한 상실감을 ‘한여름밤의 꿈’으로 치환시켰다. 할리우드 갱스터 무비를 동경했던 만큼, 감옥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가장 황홀한 공간인 호텔로, 죄수들을 필름 누아르 속 멋진 갱스터들로 전복시켜 한바탕 환상의 축제를 벌여준 것이다. 영화 속 죄수들을 동경하고, 무대 위 갱스터들을 배신하는 경찰은 바로 주네 자신에 다름 아니다. 오랜 세월 영감을 의지해오던 감옥을 떠난다는 것은 스스로 느끼기에 배신과도 같은 행위였을 터. 아니, 간신히 집행유예를 받고 감옥을 빠져 나왔을 뿐인 초라한 현실을 갱스터 영화 속 화려한 배신으로 치환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노지시엘은 이런 주네의 심리를 꿈과 현실의 경계로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벽면 가득 몽환적으로 투영된 ‘사랑의 찬가’의 명장면은 주네의 꿈에 대한 오마주다. 일곱 갱스터는 미국 배우들이 영어로 연기하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는 불어라는 점, 주네의 분신인 경찰역을 맡은 유일한 프랑스 배우가 배신 후에는 불어로 말하게 한 연출도 주네를 꿈에서 깨어나게 한다. 감옥에서 갱스터 영화의 주인공을 꿈꾸던 주네는 비로소 현실로 돌아가기 위한 의식을 마친 것이다. 드러나는 이야기가 없기에 관객은 편하지 않다. 하지만 보이는 것만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잘 의도된 연출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우리를 더욱 매료시킨다. 연극도 공부를 하고 봐야 하는 이유다. 노지시엘 연출은 “주네가 아니라 연극이 어렵다. 쉽게 만들 수도 있지만 어렵게 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게 더 재미있으니까”라고 했다. 그의 ‘빛의 제국’을 만나기 전에도 조금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



 


연극 ‘스플렌디즈’, 8월 21~22일 명동예술극장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Photo by Frederic Nauczyc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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