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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 지도’ 만들기 신약 개발 열쇠

중앙선데이 2015.08.30 00:27 442호 2면 지면보기
올해 초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면역질환 치료의 열쇠를 쥔 물질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면역계의 전술가 역할을 하는?‘RAG 단백질’이다. 병원균이 인체에 침입하면 체내에서는 방패(항체)를 만든다. 문제는 수십만 가지의 병원균이 각기 다른 형태로?인체를 공격하는 것이다. 체내에서는 공격에 맞서 다양한 항체를 재조합해 새로운 방패를 만들어낸다. 이때 활약하는 것이 RAG?단백질이다. 지금까지는 새로운 방패를 만들어내라고 명령하는 단백질이 있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미국국립보건원(NIH) 김민성 박사의 연구로 RAG 단백질의 구체적인 생김새를 알 수 있게 됐다.?



생명 현상의 열쇠를 쥐고 있는 단백질 구조 정보는 난치병 신약 개발의 원동력이다. 인체에는 10만 개 이상의 단백질이 있다. 단백질이 여러 이유로 자신의 고유 모양을 잃고 변형되면 질병을 유발한다. 알츠하이머병·광우병·파킨슨병이 그 예다. 단백질은 생김새에 따라 기능이 천차만별이다.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치료하기도 한다. 이를 활용하면 차세대 맞춤 신약 개발의 길이 열린다.

질환 단백질의 입체 구조를 근거로 약의 근원이 되는 화합물을 컴퓨터로 찾아냈다. 이 화합물을 바탕으로 약물을 설계할 수 있다.


난치병 맞춤치료 시대 오나

한국인이 RAG 단백질 구조 밝혀내 과학계가 2003년 2만5000여 개의 DNA를 밝힌 지놈 지도(genome project)를 완성한 이후 10만여 개의 단백질 구조를 규명하는 연구를 차세대 프로젝트로 가동한 이유다. 지놈 프로젝트로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면서 질병 예측이 가능한 시대가 됐다.



?그러나 미리 알게 된 질환에 적절한 치료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40)의 사례가 그렇다. 유전자 검사에서 난소암과 유방암을 야기하는 유전자 BRCA가 발견됐다. 결국 여성성(性)의 상징인 유방과 난소(나팔관 포함)를 절제했다.



?지놈 지도가 인체의 설계도였다면 단백질은 인체를 구성하는 부속품이다. 단백질 구조를 낱낱이 밝혀내면 고장난 블록을 갈아끼우듯 맞춤치료가 가능해진다. 질병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단백질의 3차원 입체구조를 밝혀내는 게 첫 단추다. 돌연변이 단백질은 단단한 자물쇠와 같다. 이 자물쇠를 여는 열쇠(신약)를 찾으면 질병이 치료된다. ?이때 필요한 핵심 자료가 단백질 구조다. 천차만별인 단백질 구조와 기능을 정확히 알아내면 딱 들어맞는 열쇠를 개발해 단백질 기능을 제어할 수 있다. 질병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크리스탈지노믹스 노성구 박사는 “예전에는 질병이 출현하면 이에 맞는 약을 찾는 데 상당 기간이 걸렸다. 어떤 열쇠가 자물쇠에 들어맞는지 이 열쇠, 저 열쇠를 일일이 맞춰보고 껴봐야 했다. 자물쇠 구조를 파악하면 맞춤 열쇠를 빠르게 제작해 질병 치료를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단백질 구조 기반한 에이즈 치료제 단백질 구조를 이용해 개발된 약이 나오기 시작한 건 20세기 말부터다. 에이즈 치료약이 그중 하나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HIV다. HIV 바이러스에 필요 물질을 공급하고 증식을 돕는 것은 ‘프로테아제’ 단백질이다. 프로테아제 단백질의 입체구조가 1989년 X선 촬영으로 밝혀졌다. 구조를 바탕으로 프로테이즈를 억제하는 치료약이 나왔다.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 역시 단백질 구조를 확보해 신약 개발로 이어진 사례다.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희망이 된 1세대 표적항암제 글리벡도 단백질 구조를 기반으로 한 치료제 개발의 성과다. 글리벡은 비시알에이블(BCR-ABL) 단백질 구조가 밝혀진 덕분에 개발됐다.



?환자 삶의 질을 끌어올린 획기적인 치료제들이지만 아직까지 한계는 있다. 부작용이다. 단백질 구조가 정밀하게 파악되지 않아 신약이 딱 들어맞지 않으면 약이 만들어져도 환자는 부작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약에 내성이 생긴 단백질이 모양을 변형해 치료 효과를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다. 2세대 표적항암제인 타시그나는 글리벡의 내성과 부작용을 극복한 단백질 구조 기반으로 한 치료제다.



?단백질 구조를 읽어내는 기술도 진화했다. 바로 분자이미징 기술이다. 부작용이 없고 치료 효과가 좋은 신약을 개발하는 돌파구다. 단백질 구조를 알아내려면 먼저 질병에 관여하는 단백질 간 상호작용을 밝혀야 한다. 수백 가지의 단백질이 얽혀 질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단백질 구조는 X선 결정법(X-ray Crystallography)이라는 방법을 사용해서 얻는다. 단백질에 X선을 쬐어 산란되는 방사선을 이용해 개별 원자의 위치를 파악한다. 단백질 분자는 수소·질소·탄소 같은 원자가 주성분이다. 문제는 X선 결정법이 정지돼 있는 단백질의 안정적인 구조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간에 따라 구조가 변화하는 과정은 알 수 없다.



?핵자기공명분광법(NMR)도 있다. 단백질 구성 요소인 수소·질소·탄소 같은 원자가 자석 안에 들어가면 약하게 자성을 띤다. 이를 NMR로 관찰할 수 있다. NMR에서 나온 신호에는 원자의 종류와 원자 간 거리, 결합 각도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를 분석하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단백질의 골격과 울퉁불퉁한 생김새가 비로소 드러난다.



?그런데 이 과정이 쉽지 않다. 단백질은 시시때때로 구조를 바꾼다. 현재 영상 촬영 장비로는 빠르게 변하는 단백질 구조와 반응을 정확히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1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크기의 단백질은 크기가 너무 작을 뿐만 아니라 반응 속도는 수 마이크로초(1㎲=100만분의 1초)에 달한다. 게다가 수십~수백 가지의 단백질이 결합하기 일쑤다.



단백질 변형 포착하는 기술이 관건 이런 단백질은 정지된 영상만으로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미세한 움직임까지 잡아내는 초정밀 영상 촬영 기술이 필요하다. 움직이는 단백질 구조를 추적하고 이에 근접한 신약 물질을 찾아내야 한다.



 올해 초 네이처에는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 연구단 이효철 교수팀의 분자이미징 기술이 게재됐다. 1000조분의 1초로 빠른 움직임을 포착해 단백질의 순간적인 반응과 구조 변화를 관측할 수 있다. 파장이 0.1나노미터 정도로 짧은 X선을 이용했다. 일반적으로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인 가시광선 파장이 400~700나노미터다.



?노성구 박사는 “분자이미징 기술이 발전하면 단백질 종류·특성에 관계없이 정밀한 구조를 신속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맞춤치료가 한 단계 진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백질=근육·피부·머리카락·항체 같은 다양한 인체 구성 물질의 핵심 요소다. 20종류의 아미노산 수백 개가 연결된 집합체다. 아미노산 조합 형태에 따라 10만여 개의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각각의 기능이 달라진다. 아미노산이 어떻게 조합을 이룰지는 DNA 정보에 달려 있다. ?



◆단백질 구조=1~4차로 나뉜다. 1차 구조는 아미노산이 단순하게 일렬로 나열된 형태다. 1차 구조에 의해 생성된 단백질 분자의 각도가 꼬이거나 굴곡된 것이 2차 구조다. 2차 구조 단백질이 공 모양처럼 입체적으로 구부러지고 접힌 것을 3차 구조라고 한다. 3차 구조는 단백질이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구조다. 4차 구조는 3차 구조 단백질이 둘 이상 결합한 형태다.



 



윤혜진 기자 yoon.hye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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