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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생산 세계 5위 반도체 시장 점유율 2위 ‘스페이스 클럽’ 회원

중앙선데이 2015.08.30 00:18 442호 4면 지면보기
석정 장기영 선생은 1952년 ‘부흥십년론’을 통해 염원했다. “우리도 디젤기관의 유선형 기차, 대형 신식 선박, 국민 1인당 1대의 자동차를 보유할 뿐만 아니라 우리 공업으로 제작·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다”고 말이다. 그의 바람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이른 시간 내에 이뤄졌다. 기차·선박·자동차는 물론 이제는 우주로 로켓을 쏘아올리는 수준까지 과학기술이 발전했다. 광복 70년, 1인당 국민소득 66달러에서 2만8180달러로 420배 늘어난 배경에는 과학기술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미래창조과학부가 선정한 과학기술의 ‘대표 성과 70선’을 소개한다.

인간형 휴머노이드(휴보)



초대형 유조선·이지스함 진수 1949년 10월, 우리나라 초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은 미국을 향했다. 250t급 원양어선 ‘지남호(指南號)’를 인수하기 위해서였다. 바다는 해방 후 가난한 우리나라의 꿈이 담긴 공간이었다. 지남호라는 이름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지었다. 남쪽으로 가서 부를 건져 오라는 뜻이다. 냉장실, 어군탐지기를 장착한 지남호는 전에 없는 첨단 대형 선박이었다. 과학자들은 참치 수확량을 높이도록 조업기술을 잇따라 개발했다. 참치 연승어구(줄에 여러 낚시를 매단 기구)는 이 과정에서 탄생한 원천기술이다. 57년 인도양으로 출항한 지남호는 3개월여 만에 참치 50t을 싣고 돌아온다. 70년대 원양어업은 주요 수출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71년 원양 수산물 수출액은 1억 달러로 우리나라 총수출액의 10%를 차지할 정도였다.


광복 70년-과학기술 70년 발자취

 바다를 향한 도전은 계속됐다. 74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울산조선소를 완공하기도 전에 그리스로부터 26만t급 초대형 유조선 2척을 수주한다. 대한조선공사가 건조한 1만8000t급 화물선이 국내에서 건조한 최대 선박이었을 때다. 정 전 회장이 수주 설득을 위해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내밀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영세한 상황에서도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일궈낸 성과는 상업용 화물선(벌크선), 원유시추탐사선(드릴십), 컨테이너선으로 이어지며 우리나라 조선업을 세계 정상으로 도약시켰다.



 그 정점은 한국형 이지스함 ‘세종대왕함’이다. 다기능 위상배열 레이더, 원거리 대공 방어와 대함전·대잠전·탄도탄(TMD) 요격을 동시에 수행하는 이지스함은 해군 전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길이 165.9m, 폭 21.4m의 초대형 구축함인 세종대왕함은 순수 우리 기술로 제작했다. 세종대왕함은 2009년 4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15초 만에 탐지해 위력을 뽐냈다. 같은 동해상에 있던 미국, 일본의 이지스함보다 한발 앞선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통일벼 개발 도로는 국토를 관통하는 산업의 혈맥이다. 1970년 건설된 경부고속도로는 화물, 인력 수송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총건설비 429억원, 연 건설인원 892만 명, 165만 대의 장비가 투입됐다. 12시간이 걸리던 서울과 부산을 5시간 만에 연결하면서 화물 수송 비율도 70년 24.7%에서 72년 47.5%로 2배 가까이로 늘었다. 경부고속도로는 ‘국토의 대동맥’으로 불리며 고도성장의 기반을 제공했다.



 경부고속도로를 질주한 포니 자동차는 산업화의 또 다른 상징이다. 75년 국내 생산을 시작한 최초의 고유 모델 자동차가 포니다. 엔진이나 변속기, 차형 설계는 외국과의 기술제휴로 들여왔지만 부품의 90% 이상을 순수 제작하며 자동차 자체 생산국으로의 초석을 다졌다. 이제 국내 자동차산업은 세계 5위 규모로 성장하며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위상이 달라졌다.



 70년대 농업에서 공업으로 국가 산업체계가 바뀔 수 있었던 데는 배고픔을 해결한 통일벼와 우장춘 박사의 공이 크다. 통일벼는 우리 입맛에 맞는 자포니카 종과 생산성이 높은 인디카 종, 온대와 열대 중간에서 자라는 대만 재래종을 교잡한 결과다. 통일벼로 연간 쌀 생산량은 350만t에서 600만t으로 71% 증가했다.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우리나라는 76년 드디어 쌀 자급에 성공했다. 우장춘 박사는 채소 종자를 개량해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 배추 종자의 혁명으로 불리는 ‘원예 1호’, 제주도 감귤 재배기술 확보, 강원도 대관령의 병 없는 씨감자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고추·오이·양배추·양파·토마토·수박 등 20여 품종의 종자를 확보했다. 해방 후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이룬 최초의 분야가 채소였다.



?정보통신기술에 소금 같은 기술이 있다. 바로 반도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로, 세계시장의 16.5%를 점유하고 있다. 올 상반기 반도체 수출액은 310억2000만 달러(약 35조원)에 달한다. 1만원권 지폐(가로 14.8, 세로 6.8㎝)를 깔면 지구와 달을 잇고도 남는 수준이다.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반도체 강국’은 요원한 일이었다. 관련 기술도, 인력도 부족했다. 이런 상황은 정부가 81년 ‘전자공업 육성 방안’을 발표하면서 전기를 맞는다. 삼성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금성, 현대 등이 모여 단군 이래 최대 합작 연구를 시작한다. 86년 1MB(메가바이트) D램 개발로 첫발을 뗀 반도체산업은 90년 16MB, 94년 256MB로 급성장했다. 이를 통해 당시 반도체 시장을 양분하던 미국·일본과의 경쟁에 당당히 뛰어들었다. 94년부터는 기술에서 일본을 앞질렀다. 현재 우리나라는 128GB 용량의 스마트폰용 내장 메모리를 양산할 정도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췄다.  

흑백 TV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 반도체 개발에 발맞춰 정보통신산업(ICT)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스마트폰의 조상격인 이동통신용 단말기(SC-2000)와 휴대전화(SCH-100)는 각각 1986, 87년 탄생했다.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이동통신 수요는 4배 이상 치솟았다. 동시에 한정된 주파수를 적절히 활용해 통화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는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문제는 그 방식이 세계적으로 표준화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미국은 시간분할방식(TDMA), 유럽과 일본은 각각 GSM과 PDC 방식을 연구·도입하는 중이었다. 우리나라는 당초 미국의 TDMA 개발을 목표로 연구개발을 추진했다. 하지만 급증하는 통신 인원을 수용하기엔 용량이 부족했고, 기술 종속 우려도 제기됐다. 이때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미국의 벤처기업 퀄컴(Qualcomm)과 손을 맞잡았다. 선택은 적중했다. 퀄컴의 부호분할다중접속 방식, 즉 CDMA의 용량은 기존 아날로그 방식의 10배, TDMA의 3배가 넘었다. 96년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우리나라는 폭증하는 이동통신 이용자를 거뜬히 수용했다.



 우리나라를 정보통신 강국의 반열에 올린 또 다른 기술은 광섬유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81년 변형화학증착공법(MCVD)을 이용해 정보 손실을 최소화한 광섬유를 독자 기술로 개발했다. 이 기술로 우리나라는 초고속 인터넷망을 세계 최초로 갖췄다. 우리나라에 광섬유를 판매하러 온 미국 AT&T의 ‘벨랩(Bell Lab)’이 오히려 기술을 배워갈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
독자 기상위성 일곱 번째 보유국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우주로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92년 8월, 우주로 쏘아올린 ‘우리별 1호’는 그 신호탄이다. 93년 9월에는 우리별 2호가, 99년 5월에는 우리별 3호가 우주로 향했다. 마침내 99년, 우리나라는 기존 위성보다 정밀하게 지구를 관측할 수 있는 다목적 인공위성 ‘아리랑’ 개발에 성공한다. 지구를 넘어 우주를 관측하는 ‘과학기술위성 1호(STSAT-1)’, 정지궤도 위성인 ‘천리안’(통신해양기상위성)도 잇따라 우주로 쏘아올렸다. 천리안을 발사하면서 우리는 세계 일곱 번째로 독자 기상위성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위성 개발 기술은 날로 발전했지만 우주산업에는 여전한 갈증이 있었다. 위성을 우주로 실어나르는 발사체 기술을 외국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로호는 우주를 정복하려는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숙원을 풀었다. ?2013년 1월 30일,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서 우리나라의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1)가 하늘을 갈랐다. 열 차례의 발사 연기, 두 차례의 발사 실패를 딛고 이뤄낸 성과였다. 우리나라는 우주센터·인공위성·우주발사체 세 가지를 갖춘 ‘스페이스 클럽’에 세계 11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이제 한국형 우주발사체가 달을 정복할 날이 멀지 않았다.?



글=김진구·박정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그래픽=강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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