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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리포트] 가우디 건축물이 7개나 세계유산 된 비결 찾으러 가요

온라인 중앙일보 2015.08.30 00:02
디자이너 가우디를 만날 수 있는 ‘도시 주택-가우디의 예술과 공예’ 섹션. 아버지가 대장장이였던 그는 금속 재료를 다루는 데도 재능을 보였다.


‘세계의 건축가’ 하면 누가 떠오르나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콘크리트 건축의 대가 일본의 안도 다다오, 그에게 영향을 준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하면 떠오르는 프랭크 게리, 우리나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 세계엔 유명한 건축가와 멋진 건축물이 많이 있죠. 세계적 건축가는 건축물을 단지 사람이 편하게 살고 머무는 곳이라고 실용적인 생각만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건축은 예술입니다. 그중에서 단연 손꼽히는 스페인의 거장 안토니 가우디(1852~1926)의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안토니 가우디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건설 과정을 담은 기록 사진.


천재적 건축가 중에서도 가우디의 작품 세계는 특별합니다. 빌딩·집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각형입니다. 직선으로 만드는 게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가우디의 건축물에서는 직선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답니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이런 그의 신념은 건축물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유려한 곡선과 함께 나무·곤충·뱀·버섯 등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쏟아부었죠.



가우디의 건축학교 졸업작품인 `대학교 강당 프로젝트` 중 단면도.


전시장 입구에서는 가우디의 일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852년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1926년 6월 7일 숨을 거두기까지 74년 인생을 담담하게 정리했습니다.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코메야` 장갑 상점 진열대를 그린 스케치.


“여러분, 제가 이 졸업장을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아니면 미친놈에게 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입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건축 학교의 교장선생님 엘리아스 로젠이 가우디를 두고 한 말입니다. 가우디는 너무 독창적이고 개성이 뚜렷해 가르치기 어렵고 신경 거슬리는 학생이었기 때문이죠.



가우디의 경제적 후원자였던 구엘을 위해 설계한 구엘 공원.


그런 가우디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재력가 아우세비 구엘을 만난 겁니다. 스페인 명문가 출신의 구엘은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한 가우디의 가구에 반해 후원을 시작했고, 가우디는 구엘 저택을 지었죠. 구엘의 저택과 별장을 지은 그는 바르셀로나가 내려다보이는 페라다 산기슭에 주택 단지를 만듭니다. 현재 구엘 공원으로 불리는 이 건축물은 환상적이면서도 정확한 구조, 기이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유명하죠. 198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엘 공원 외에도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 가우디 건축물 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7개나 된답니다.



곡선의 아름다움, 자연에서 받은 영감 돋보이는 건축



가우디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세기말 사상이 대유행이었습니다. 1898년 제국이 패망하고 무정부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목소리를 높였던 스페인은 그야말로 혼돈이었습니다. 문학에서는 신고전주의·낭만주의·사실주의가 꽃을 피웠죠. 가우디는 자신의 생각을 건물에 담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주로 바르셀로나 지역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하나 개성이 뚜렷합니다. 카사 바트요는 빛에 따라 내부의 유리 무늬가 달라 보입니다. 바다와 미역을 모티브로 한 카사 밀라의 달팽이 모양 계단도 인상적입니다. 바르셀로나의 자연처럼 풍요로운 색채와 질감은 자유로운 형태와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아우라를 빚어냅니다.



부자들을 위한 대저택을 설계하던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건축도 했습니다. 바로 성당 건축이죠. 다른 건축가가 물러난 자리를 물려받아 건축의 책임을 맡게 됐을 때 가우디는 31세 청년이었습니다. 가우디는 설계를 바꾸고 독창적 아이디어를 접목시켰습니다. 옥수수처럼 생긴 첨탑이 솟았고, 직선을 배제한 곡선으로 이어지는 난해한 설계로 건설은 지연되고 지연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작품은 긴 시간의 결과여야 한다. 따라서 건축하는 기간이 길수록 좋다.”



그는 성당 옆에 숙소를 만들어 살면서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1920년대에 120m 높이의 탑이 완성되었을 때, 바르셀로나에 이보다 높은 건물은 없었죠. 가우디는 죽기 전까지 40여 년간 성당 건축 작업에 올인했습니다. 성당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1936년 일어난 스페인 내전으로 중단된 작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재개됐죠. 완성은 그의 사후 100주년인 2026년으로 예정돼 있습니다. 당시 너무나 전위적인 모습에 평론가들은 “흉물스런 건축물, 스페인 내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라며 비판했습니다. 이 건물이 지금은 세계적 걸작으로 칭송받는 사그리다 파밀리아입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종교 건축물 중 하나’, ‘인간이 만든 최고의 조형물’, ‘신이 머물 지상의 유일한 공간’이라는 평을 받고 있죠. 성당 지하에는 가우디의 시신이 잠들어 있어, 오늘도 공사가 잘 진행되는지 지켜보고 있답니다.











글=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사진=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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