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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소프트파워 전쟁의 승자는?

온라인 중앙일보 2015.08.30 00:01
일본 문화의 첨병이었지만 국가적 차원의 소프트 파워와는 무관… 중국의 경우는 가슴 울리는 예술적 감동보다는 압도적 스케일 과시에 그쳐


오노 요코식 ‘탈(脫)민족 전위예술’의 위력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오노 요코 특별전. 오노 요코는 세계에 알려진 가장 유명한 일본 여성 중 한 명이다




“서방 지식인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지성인은?”



필자의 판단으로는 티베트 불교의 상징, 달라이 라마다. ‘유어 홀리니스(Your Holiness)’로 통하는 달라이 라마를 보는 서양인의 자세는 동양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평화와 인권운동에 매진하는 정치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신·문화·역사, 나아가 성(聖)의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 귀한 존재다. 간단히 말해 ‘바티칸 교황 + 쿠바의 체게바라 + 비틀스’를 전부 합친 삼위일체형 캐릭터다. 21세기 식으로 얘기하자면 전방위, ‘리버벌 아츠(Liberal Arts)형 인간’이다. 하늘 위에 떠 있는 엄청난 존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친구도 아니다. 동양 지성으로 마하트마 간디 정도가 필적할 수 있지 않을까?



달라이 라마가 가는 곳마다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사람들로 터져나간다. 7월 6일 뉴욕 웨스트 34번가의 달라이 라마 탄생 80회 기념 강연회도 인산인해다. 1인당 50달러에서 175달러에 달하는 입장료지만, 개장 즉시 만석이다. 공산 독재 중국이 아무리 애를 써도 ‘유어 홀리니스’에 대한 서방의 열기를 막을 수 없다. 고령에 접어든 달라이 라마의 나이를 고려할 때 가까운 시일 내에 ‘메이드 인 차이나’ 짝퉁 달라이 라마가 등장할 것이다. 티베트가 정통 후계자를 세운다 하더라도, 달라이 라마에 버금가는 동양발 ‘글로벌 절대지존(絶對至尊)’의 권위를 갖추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가 사라진다고 해서 동양의 지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달라이 라마 정도의 자이언트는 아니지만, 비슷한 캐릭터의 리틀 자이언트는 존재한다.



뉴욕에 거주하는 일본 출신 오노 요코다. 뉴욕에서 활동 중인 전위예술가로 현재 82세다. 한국인에게는 고만고만한 여성 엔터테이너 정도로 받아들여지겠지만, 서방에서의 이미지와 위상은 아주 특별하다.



오노 요코를 보는 서방의 시각은 전위예술가에 그치지 않는다. 예술을 앞세운 평화운동가, 살아있는 미국 현대사의 일부다. 반전 메시지를 통해 전화(戰火)가 끊이지 않는 세계를 위로해줄 수 있는, 여성 달라이 라마 정도로 비쳐진다. 뉴욕 맨해튼 뉴욕현대미술관(www.moma.org,이하 모마)에서 벌어지는 오노 요코 특별전은 그 같은 상황을 증명해주는 실례(實例)다. 5월 17일부터 9월 7일까지 계속될, ‘어느 여성의 쇼(Yoko Ono: One Woman Show, 1960∼1971)’란 제목의 이벤트다.





‘팝 문화’ 흐름에 가장 먼저 진입한 동양 여성



뉴욕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중국 특별전. 미국 뮤지엄 역사상 가장 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은 전시회로 기록될 전망이다.




뉴욕 모마는 21세기 현대예술의 총사령부에 해당된다. 유럽의 뮤지엄과 전혀 다른 각도의 ‘신선한’ 예술에 주목한다. 땀·시간·영혼에 근거한 고전적 예술세계와는 선을 긋는 곳이다.



그러나 내일의 세계에 주목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천지 파라다이스다.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쉽게 기억하고 따라할 수 있는 ‘팝 문화(Pop Culture)’가 21세기 예술의 주류다. 오노 요코는 동양인으로서는 그런 흐름에 가장 먼저 진입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인물이다. 모마가 그 같은 동양 여성을 위해 특별전을 연 것이다. 동양 여성, 아니 동양인 전체를 통틀어 오노 요코만큼 글로벌 지명도를 가진 인물이 있을까?



지역·인종·세대를 막론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양인이다. 1980년 12월 8일 암살된 존 레논의 부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오노 요코라는 자체 브랜드로 세계 정상에 올라선 인물이다.



46년 전인 1969년 봄은 오노 요코가 글로벌 뉴스메이커로 데뷔한 출발점이다. 유명한 ‘베드-인(Bed-In)’ 이벤트다. 1969년 3월 20일, 오노 요코는 비틀스 멤버 존 레논과 결혼한다. 전 세계 미디어가 결혼식을 중계한다. 오노 요코가 아니라, 존 레논에 맞춰진 결혼식이다. 그러나 서방의 관심은 긴 머리에다 신비한 눈빛을 가진 동양 여성에 주목한다. 1960년대 비틀스는 21세기 엔터테인먼트 수준에서 비교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현재 세계를 주름잡는 글로벌 음악스타 전부를 끌어모아도 비틀스에 못 미친다. 음악적으로 보면 18세기 말 유럽에 나타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 비견된다.



비틀스가 던지는 메시지는 당시 그 어떤 정치지도자보다도 강렬했다. 21세기식으로 해석하자면 ‘오바마 + 프란체스코 교황 + 넬슨 만델라’가 비틀스의 위상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어머니가 케냐 출신 흑인과 결혼하던, 기존의 질서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던 질풍노도 시대가 비틀스의 활동시기다. 존 레논은 비틀스의 핵심이다. 나중에 증명되지만, 비틀스 없는 존 레논은 가능하지만, 존 레논 없는 비틀스는 빠른 속도로 잊혀간다.



‘베드-인’ 이벤트는 결혼한 직후인 3월 25일부터 1주일 동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힐튼호텔 스위트룸에서 이뤄진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두 사람이 침대 위에 머물며 베트남전쟁 반대에 나선 ‘희한한’ 이벤트다. ‘베드-인(Bed-In)’이란 말은 ‘Sit-In’, 즉 연좌시위에서 따온 발상이다. 21세기 들어서는 당연시되는 시위 형태 중 하나지만, 1960년대 ‘Sit-In’ 시위는 평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힘을 통해 호소하던 시위가 아니다. 뛰어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앉아서 행하는 ‘Sit-In’도 아닌, 잠자리에 들어 호소하는 가장 평화스러운 데모가 ‘베드-인’ 이벤트다. 존 레논은 이 이벤트의 의미를 “결코 복잡하고 엄숙하지 않은 유머”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세상은 두 사람의 특이한 이벤트를 너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오노 요코가 감독으로 나선 ‘베드-인’ 이벤트



1. 1969년 ‘베드-인’ 이벤트 당시의 존 레논과 오노 요코. / 2. 두 사람은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침대 위에 머물며 베트남전 반대 시위를 벌였다. 1 2 080-




두 사람의 이벤트는 스위트룸을 찾은 신문·방송기자들에 의해 현장중계됐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애정도 확인하면서 잠도 자고 노래도 부르면서 하루를 보냈다. 물론 반전 메시지를 세계에 전달하고 각국의 대통령에게 전쟁을 중단하라고 역설한다. 오노 요코는 반전 상징물로 도토리를 모아 각국 지도자에게 보낸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된 상황을 보면 두 사람은 침대 위에 누워 반전운동에 관한 생각을 잠꼬대처럼 읊조린다. 대부분 존 레논의 독백으로, 오노 요코는 동양 여성답게 간접적으로 남편을 지지한다. 페미니스트들이 보면 화를 낼 장면이지만, 서방의 남성들은 오노 요코가 보여준 무언(無言)의 매력에 빨려 들어간다.



당시 침대 위 큰 창문에는 ‘Hair Peace, Bed Peace’란 포스터가 붙어져 있다. 청년들의 긴 머리를 도덕적 타락으로 본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과, 섹스를 하는 동안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진 포스터다. ‘Bed Peace’ 포스터 덕분이겠지만, 당시 두 사람의 라이브 섹스 여부는 ‘베드-인’ 이벤트의 백미로 받아들여졌다. ‘평화를 위한 라이브 섹스’라는 것이 웃기는 얘기로 들릴 듯하다. 그러나, 섹스를 하는 동안에는 전쟁도 없고, 섹스와 같은 절대 프라이버시를 전 세계 모두에게 공개할 만큼 반전평화운동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베트남전쟁을 둘러싼 이념·문화·세대간의 갈등은 당시 젊은이들의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엄청나고 광범위했다. 가수가 아니라, 정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성전(聖戰)의 투사가 바로 존 레논을 대하는 당시 청년들의 일반적 평가였다.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는 존 레논을 주연으로 한, 세기적 이벤트를 연출해낸 감독이자 여주인공에 해당된다. 남성이 아닌 동양의 여성 입장에서 성과 세계의 기득권에 도전한다. 존 레논이 1971년 발표해 평화 메시지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노래 ‘이매진(Imagine)’과, 반전 슬로건의 대명사인 ‘War is Over if you want it’도 모두 오노 요코의 정신적 도움 아래 창조된 것이다.



모마의 오노 요코 특별전시장은 ‘베드-인’ 이벤트를 비롯한 1960년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타임 슬립(Time Slip)형 공간이다. 오노 요코의 특별전은 45년 전인 1971년의 전위이벤트를 기념한 것이다. 1971년 말 오노 요코는 주변 친구들에게 ‘One Woman Show’를 개최한다고 말한다. 당시 오노 요코는 이미 세계적 지명도를 가진 예술가로 올라선 상태다. 이벤트 장소는 모마다. 그러나 현장에 갔지만, 따로 이벤트가 열리지 않았다. 모마가 주선한 공식 행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노 요코는 찾아온 친구들을 모마 입구에서 맞이한다. 방문객에게 갖고 온 특별한 물건을 선물한다. 파리다. 파리를 풀어 하늘로 날려 보내면서 친구들에게 잡아보라고 말한다. 전위예술이란 것이 원래 황당하지만, 모마는 당시의 비공식적인 인연을 기념하면서 2015년 특별전을 개최한다. 1960년부터 파리 날리기 이벤트가 이뤄진 1971년까지의 활동을 담은 전시회다. 오노 요코를 글로벌 스타로 만든 ‘베드-인’ 이벤트에 관한 기록과 자료는 특별전의 하이라이트에 해당된다.



특별전을 살펴보면서 필자가 느낀 부분은 일본인으로서의 오노 요코다. 일본인 모두가 자임하지만, 오노 요코는 일본 여성, 아니 일본사 전체를 통틀어 전 세계에 통하는 가장 유명한 인물에 해당된다. 천황을 비롯한 그 어떤 일본인도 오노 요코의 지명도에 못 미친다. 그런 특별한 존재지만, 오노 요코는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이 싫어하지도 않는다. 거주지와 활동무대가 뉴욕이기는 하지만, 가끔씩 일본에 와서 공연을 행하기도 한다고 한다. 5년이나 10년에 한 번씩 텔레비전 광고에 출연하지만, 평화에 관련된 메시지 전달이 전부다. 출연량이 워낙 적기 때문에 출연 후에는 ‘광고료 역대 최고 갱신’이란 기사가 따라 다닌다.





일곱 살 어린 존 레논과의 세 번째 결혼



반전 슬로건의 대명사 ‘War is Over if you want it’. 존 레논이 발표했지만 구상은 오노 요코가 했다고 한다.




오노 요코는 일본 가큐슈우인(學習園)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여성이다. 황족·귀족이 다니는 특수 대학이다. 가족, 친척이 일본 정치·경제계의 중심부에 있는 명문이다. 미국에 건너온 것은 대학 2년째이던 1953년이다. 은행가인 아버지를 따라 뉴욕에 거주한다. 전위예술가로 변신한 것은 1959년이다. 패전 8년 만에 미국에 건너가 공부를 하고, 최첨단 문화 활동에 단독으로 나섰다는 것은 보통 일본인의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다. 재능도 있었겠지만, 엄청난 재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존 레논과의 만남은 예술활동과 관련해 런던과 뉴욕을 오가던 중 이뤄진다. 오노 요코는 당시 두 번이나 결혼한, 과거를 가진 여성이다. 존 레논이 세 번째 남편인 셈이다. 나이도 오노 요코가 일곱 살 더 많다.



평소 존 레논은 자신이 학생이고 오노 요코가 선생이란 말을 자주 했다. 더불어 자신이 아시아 여성을 통해 구원받을 것이란 꿈을 꾼 적이 있다고 말했다. 영적인 관계를 통해 맺어졌다는 의미다. 존 레논이 위에 선 수직적 관계가 아닌, 반대로 오노 요코가 앞서서 이끌어가는 관계라 볼 수 있다.



오노 요코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프트파워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나라·민족을 내세우는, 국가적 차원의 소프트파워와 무관하다. 오노 요코라는 개인의 캐릭터에 근거한 일본 문화의 첨병이다. 오노 요코가 전위예술을 벌일 때 일본이란 나라가 나서서 도와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국적화된 일본의 현지기업이 협찬을 할 수는 있겠지만, 국가라는 틀 속에서의 도움은 전무하다. 일본에 주목해서 활동한 적도 없다. 최근 일본과 관련된 활동은 2011년 3월 27일 이벤트다. 뉴욕에서 열린 3·11동일본 대지진 위문공연이다. 일본 정부가 아니라, 미국인 음악가가 주선한 자리에 초대손님으로 나섰다. 일본이라는 나라와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활동하는 셈이다.



국가·민족의 범주 밖에서 활동한다 하더라도 미국과 유럽인들은 오노 요코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전위예술의 내용을 보면 일본적인 요소가 곳곳에 투영돼 있다. 자신이 원하든 않든 서방에서 보면 일본 문화, 일본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서방에서 오노 요코가 일본인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듯하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전 세계가 자국에 호의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총력전을 기울이는 판국에 ‘아무 의미 없다’는 말이 설득력을 갖기는 어렵다. 더더욱 오노 요코의 이미지인 평화는 일본이 주력하는 소프트파워의 핵심 이데올로기 중 하나다. 멀리는 원자폭탄이 없는 평화에서부터, 가까이는 남중국해로 밀려드는 중국의 무력대응에 맞설 논리로서의 평화다.



글로벌 시티즌 오노 요코의 탄생은 국가와 민족이란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패전 후 미국에 사는 일본인은 자국의 나라 이름을 입에 올리기가 어려웠다. 일본인을 비하하는 차별어인 ‘잽(JAP)’은 1980년대 초까지 아무런 제재 없이 사용됐다. 그 같은 상황에서 오노 요코가 ‘자연스럽게’ 일본이란 틀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56송이 꽃’ VS ‘AKB48’



중국 소프트파워의 원조 여성으로 불리는 중국계 미국인 아나 메이 웡. 1930년대 무성 영화시대의 배우다.




그러나 그 논리에 따르면, 일본이 부활하고 일본인에 대한 서방의 편견이 약화된 시점에서는 일본 예찬으로 돌아서야 한다. 오노 요코는 반대도, 찬미도 아닌 중간자적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다. 일본이란 정체성에 무관한 회색빛 캐릭터다.



새삼스럽게 일본 여성의 정체성을 꺼내는 이유는 한국·중국에서 상식화된 국가주의·민족주의 사고의 한계를 강조하고 싶어서다. 한 나라의 국가적 품과 격을 세계에 알리는 소프트파워라는 관점에서 볼 때, 오노 요코와 같은 인물은 미래형 캐릭터로 느껴진다. 2015년 한국·중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탈국가 스타일 소프트파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일본 소프트파워의 확산에 기여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중국·일본 3국은 총성 없는 전쟁, 즉 소프트파워를 통한 국가적 위상 강화에 매달리고 있다. 서로를 의식하면서 자국의 소프트파워를 세계에 알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공산 중국이 체제의 우월성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의도로 이를 국가 핵심 프로젝트로 상정한 상태다. 외국인에게 중국을 자랑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거꾸로 자랑스러운 중국의 위상을 중국인에게 보여주면서 체제에 대한 불만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도 포함돼 있다. 전적으로 국가주도 아래 펼쳐지는 것이 중국의 소프트파워다. 오노 요코 스타일과 얼마나 다른지,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중국 소프트파워는 이렇다 할 전략·전술이 없다. 인해전술에 의한 무차별 공습, 즉 양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소프트파워가 핵심이다. 중국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문화적 요소를 하나로 묶어, 초대형 무대 위에 한꺼번에 터뜨리는 식이다. 질은 상관없다. 지난 7월 결성된 초대형 그룹, ‘56송이 꽃’ 아이돌 그룹을 보자. 일본의 아이돌 AKB48을 염두에 둔 그룹으로 알려져 있지만, 문화혁명 당시의 이념적 냄새로 가득찬 프로파간다 기쁨조에 지나지 않는다. AKB48은 무려 5년 동안의 실험기간을 거쳐 탄생된 일본 집단주의 문화의 산물이다. 48명 집단이지만, 개개인이 독자적으로도 활동한다. 48명의 순위가 주기적으로 정해지면서 밑으로 내려갈 경우 멤버에서 탈락한다. 48이란 숫자도, 에도(江?) 시대 당시 주군의 명예회복을 위해 원수를 갚고 할복자살하는 추신쿠라(忠臣?)의 47인 사무라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중국의 경우 이런 과정이나 역사는 전부 무시된다. 일본이 48명이라면 우리는 더 많은 56명이라는 것이 그들의 속내다. 중국은 ‘56송이 꽃’이 56개 소수민족을 대변하는 아이돌이라 말한다. 그러나 중국 내 소수민족이 AKB48보다 적은 45개라 할 때, 과연 ‘45송이 꽃’이란 아이돌이 탄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질이야 어떻든, 양에서는 절대 일본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50개 글로벌 브랜드가 참가한 뮤지엄 안의 패션쇼



중국 특별전에 소개된 문화혁명 당시의 마오쩌둥 패션은 미국인들에게 특히 인기를 끈다.




양적 기획에 따란 당연한 결과겠지만, 크고, 넓고, 화려하기는 한데 눈에 띄는 중국인이 극히 드물다. 인구가 13억이라고 하지만, 영화·음악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의 소수를 제외하면 없다. 전 세계 모두가 골고루 받아들일 수 있는 리버럴 아츠형 인간은 전무하다. 글로벌 차원의 메시지를 전달할만한, 세계로부터 인정받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



공교롭게도 현재 뉴욕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는 중국 관련 초대형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오노 요코를 감안한 대항전은 아니겠지만, 모마의 특별전과 같은 시기에 벌어진다. 두 전시회를 비교하면서 관람할 경우 중국과 일본의 소프트 파워가 얼마나 상이한 각도에서 출발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전은 ‘중국이란 거울을 통해 들어가 보면 (China: Through the Looking Glass)’이란 타이틀로, 지난 5월 7일부터 열리고 있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뉴욕메 트로폴리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초대형 이벤트가 아닐까 판단된다. 무려 세 개 층에 걸쳐 전시되고 있다. 찾는 사람이 엄청나다. 미국 뮤지엄 역사를 통틀어 기록적인 관람객을 유지하고 있다. 문을 연지 10주 만인 7월 21일까지 전부 50만명이 다녀갔다.



오픈 즉시 곧바로 달려갔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호화찬란한 특별전이다. 통상 중국이라고 하면 도자기·그림·당삼채(唐三彩)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메트로폴리탄 특별전은 기존의 내용과 전혀 다른, 패션이다. 중국인이 입는 옷이 아니다. 외국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꾸민, 중국에 관련된 패션이다. 프라다·구찌·지방시 등 전부 50여 개의 글로벌 브랜드와 소속 디자이너들이 참가했다. 중국인 디자이너는 단 한 명으로 1967년생 구이 페이(郭培)라는 여성이다. 베이징(北京) 출신으로 중국인 모두가 아는 자랑스런 인물이다. 중국을 떠올리게 만드는 문양·디자인·색깔의 옷들이 100여 군데에 걸쳐 전시되고 있다. 희로애락과 무관한 무표정의 마네킹에 걸쳐진 옷들이다. 중국 관련 영화나 기록물도 전시장 벽을 통해 상영되고 있다. 중국풍 음악소리도 곳곳에서 들린다. 문화혁명 당시의 비디오와 함께, 홍위병이 입었던 인민복도 전시되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을 모티브로 한 현란한 옷들도 홍위병과 함께 서 있다.



어두운 조명 하의 비디오와 오디오 연출 때문이겠지만, 이국적인 분위기의 나이트클럽에 온 듯 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중국에 진출하려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 전시장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관람객들의 열기는 뜨겁다. 중국이란 이름을 빌린 비즈니스 현장이란 점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 특별전을 본 보통사람이라면 중국에 대한 환상이 한층 더 강해질 듯하다.



하지만 그토록 대규모 이벤트지만, 뭐라고 하나 집어낼 만한 캐릭터가 없다. 세상을 떠난 마오쩌둥의 티셔츠 정도가 인상 깊다. 가슴을 울리며 세심하게 와 닿는 예술적 감동은 필요없다. 엄청난 규모로 쏟아부으면서, 비즈니스로 연결될 수 있는 계기로서의 초대형 이벤트면 충분하다. 중국인이 직접 관여하지 않지만, 중국 정부의 의향을 충분히 반영해 거꾸로 중국에서의 비즈니스 기회를 넓히겠다는 의미의 특별전이다. 공산 독재국가 중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국가와 민족이란 대의명분에 충실한 이벤트가 바로 ‘중국이란 거울을 통해 들어가 보면’이 갖는 의미다. 국가와 민족이란 틀에서 벗어나, 가슴에 와 닿는 메시지 전달에 충실한 오노 요코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프트파워다.



중국과 비슷하지만, 한국 소프트파워의 경우 정체성의 문제를 최우선으로 잡으면서 나아간다. 비빔밥을 먹고 K-Pop을 들으면서도 코리아를 되새겨야 하는 것이 한국식 소프트파워의 가치다. 일본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한국·중국에 비하면 국가·민족에 기초한 정체성 강조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결과적으로 일본이란 것을 알리지만, 처음부터 국가 이데올로기로 덧칠하지는 않는다.





일본 소프트파워 전령사 新3인방



만화 캐릭터를 예술로 만들어 세계에 수출한 설치예술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




‘서로 함께 힘을 합쳐(Get Togerther, Get Involved)’라는 개념은 21세기 서방 젊은이들의 이데올로기 중 하나다. 국가나 민족을 강조하는 식의 발상은 순간적으로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한국·중국을 강조하는 문화 속에 들어갈 경우 스스로의 목소리를 발견해내기 어렵다.



유럽에 이어 뉴욕에도 최근 상륙했지만, 핑크빛 스시나 케밥 스시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다. 이름만 스시지, 미국인이 제멋대로 만든 창작요리다. 뉴욕의 일본 스시집에서는 무슬림 고객을 위해 케밥 스시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일본 캐릭터의 대명사인 고질라를 근육형 야수로 재창조하고, 추신쿠라 47명 중 한 명을 백인인 키아누 리브스에게 맡기는 것이 21세기 일본식 소프트파워다. 로보트 태권V를 쿵후 전문 캐릭터로 바꾸고, 춘향전의 이몽룡 역할을 톰 크루즈에게 맡기는 식의 발상이다. 근본을 유지하면서, 가능하면 상대방에게 많이 나눠주자는 것이 일본이 추구하는 소프트파워의 전략전술이다.



사실 그 같은 일본의 생각은 소프트파워 원조인 미국에서 오래전에 시작한 발상이기도 하다. 프로야구의 한국 선수나,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 얼굴을 내비치기 시작한 한국배우 같은 것들은 가장 좋은 예다.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국가·민족이란 차원의 발상에서 벗어난 체제지만, 단일언어, 단일민족의 일본이 미국의 그 같은 발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다.



오노 요코가 달라이 라마 같은 존재에 미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중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국가·민족의 틀에서 벗어난 글로벌 시티즌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탈국가, 탈민족에 근거한 일본의 소프트파워는 오노 요코 한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삶을 바꾸는 마법의 정리법(The Life?Changing Magic of Tidying Up)’이란 타이틀로, 미국 내 출간 이후 지금까지 무려 15주 동안 비소설분야 판매 1위를 기록한 곤도 마리에(近藤麻理?). 86세 현역으로 루이비통 제품에 물방울 디자인을 제공한 도안예술가 쿠사마 야요이(草間 彌生), 1달러짜리 만화 캐릭터를 고가의 예술로 만들어 전 세계에 발신하고 있는 설치예술가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 등등. 초기부터 일본이란 색깔을 강조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의 소프트파워 전령사란 점이 이들 세 사람의 공통점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오래가지 못한다. 여유를 주면서 함께 나누며 나갈 수 있는, 글로벌 관점 하의 소프트파워가 오래가고 튼튼해질 수 있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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