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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민낯 드러낸 롯데의 경영권 쟁탈전

온라인 중앙일보 2015.08.30 00:01
계열사 74개, 자산총액 100조4583억원의 재계 5위, 전근대적인 ‘유통공룡’… 제2롯데월드·면세점 특혜 등 비리 의혹 재점화, 사정당국 압박 가능성도


5천만 국민에게 상영된 코미디물 ‘삼부자(신격호·동주·동빈)’

아버지인 신격호(93·일본명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 롯데그룹 총괄회장을 앞세운 장남 신동주(61·일본명 시게미쓰 히로유키·重光宏之)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지난 7월 27일이었다. 이에 이튿날 차남인 신동빈(60·일본명 시게미쓰 아키오·重光昭夫) 롯데그룹 회장은 아버지를 퇴진시키는 초강수를 두었다. 신 전 부회장이 부친이 자필 서명한 신 회장(일본 롯데홀딩스 대표) 해임지시서를 공개하자 한국롯데 측은 “적법절차가 없는 무효”라고 반박했다. 계열사 74개를 거느린, 자산총액만 100조4583억원인 재계 5위 롯데 삼부자의 막장드라마에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8월 1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게 항상 함께해주시고 사랑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최근 불미스러운 사태로 많은 심려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7월 27~28일 양일간에 걸쳐 벌어진 롯데그룹 ‘제1차 형제의 난’의 전모(全貌)는 아직도 베일 속에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27일 신격호 총괄회장을 전세기를 이용해 일본으로 데려가 일본 롯데홀딩스 주요 이사들을 구두 해임했으나, 신동빈 회장이 다음날 정식 이사회를 열어 이를 뒤집었다는 게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의 얼개다.



그러나 그 후 신 전 부회장이 밝힌 스토리는 조금 달랐다.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에게 직접 “일본 롯데그룹 직책에서 물러나라”고 지시했으나 신 회장은 사퇴를 거부했다. 그러자 신 총괄회장이 “내가 직접 가서 명령하겠다”며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게 신 전 부회장의 설명이다. 지시서 공개 역시 신 총괄회장의 뜻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카드로 해석된다.



반면 신 회장 측은 “판단이 어려운 아버지를 형이 부추겼다”고 주장한다. 신 전 부회장 측이 고령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부친까지 형제간의 다툼에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100세가 머지않은 신 총괄회장의 판단력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졌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의 판단이 흐려진 상태임에도 신 전 부회장 측이 총괄회장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 지시서 역시 정식 이사회의 의견을 거치지 않은 만큼 무효다”라고 주장했다.



삼부자의 이전투구(泥田鬪狗)는 가족간 대결 양상으로 확전(擴戰)됐다. 신 회장에게 반기를 든 인사들이 신 전 부회장 측에 가세한 것이다. 신 총괄회장의 셋째 동생인 신선호 일본 산사스 사장, 신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신 총괄회장의 조카인 신동인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 직무대행 등이 신 회장과 맞서고 있다.





재주는 한국이 넘고, 돈은 일본이 벌고



롯데는 1948년 일본에서 설립돼 오늘에 이르렀다. 국내에서는 1967년부터 롯데제과로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사업을 벌이고 있는 회사 중 롯데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2013년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계열사 수는 74개, 임직원 23만 명, 자산총액은 100조4583억원으로 재계순위 5위에 올랐다. 한·일 양국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한 신격호 총괄회장은 껌 하나로 시작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재벌 기업을 일군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신 총괄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역시 사업수완이 좋아 경영전면에 나선 2004년 이후 롯데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롯데의 성장 이면에는 ‘국가의 도움’도 한몫 거들었다. 면세점은 국가 입장에서 보면 물품에 매기는 관세 등 조세수입을 포기해야 하는 분야다. 대신 정부는 면세점으로부터 특허 수수료를 받아 조세손실을 보충한다. 단일매장 규모로 국내 최대인 롯데면세점 서울 소공동 본점은 2012년 1조원의 수입을 올리고도 사업특허료 명목으로 고작 90만원만 납부했다가 국정감사에서 곤욕을 치렀다.



논란 이후 제도가 바뀌어 매출액의 0.05%를 매출수수료로 내도록 했다. 롯데면세점은 약 30억원의 매출수수료를 냈다. 30억원은 제도 변경 전에 비하면 거액이라 할 수 있지만 공항면세점과 비교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공항면세점의 경우 경매를 통해 임대수수료를 높게 적는 사업자에게 사업권이 주어지는 만큼 임대수수료를 높게 써낼 수밖에 없다. 롯데가 시내면세점에서 30억원을 내는 동안 공항면세점에서는 8천억원을 냈다. 시내면세점은 국가적 차원에서 기업에 대해 크나큰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엄청난 ‘특혜’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롯데는 늘 국적(國籍) 논란에 시달려왔다. ‘재주는 한국이 넘고 돈은 일본이 번다’는 비아냥도 뒤따랐다. 순환형 출자와 지배구조 등을 통해 국내의 자금이 일본으로 빠져나간다는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최근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 간의 경영권 승계 싸움이 불거지면서 지배구조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호텔롯데는 국내 롯데계열사의 지배 정점에 있다. 호텔롯데는 일본 롯데홀딩스와 정체가 모호한 일본의 비상장기업이 주식을 대부분 보유하고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가 호텔롯데의 지분 19.07%를 보유하고, ‘L투자회사’가 72.65%의 지분을 갖고 있다. 즉 호텔롯데가 운영하는 면세점의 막대한 이윤이 일본으로 흘러 들어가는 셈이다.



호텔롯데의 최대주주는 일본계 기업이지만 그룹 총수가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인 까닭에 국민적 거부감은 크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왕자의 난’을 통해 연간 83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한국롯데가 고작 5조7천억원(이상 2013년 기준)에 그친 일본롯데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롯데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롯데의 순환출자구조는 국내 대기업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총괄회장은 무려 416개에 이르는 순환출자고리 덕분에 단 0.05%의 지분만으로도 계열사를 장악해왔다. 다른 대기업들은 순환출자구조를 단순화하거나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고 있지만 롯데만은 총수 일가 소유 회사가 수백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순환출자고리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계열사는 롯데쇼핑·호텔롯데·롯데제과·롯데케미칼 등이다. 가령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이 지분을 갖고 있는 롯데쇼핑을 중심으로 롯데쇼핑은 롯데카드를, 롯데카드는 롯데칠성음료를, 롯데칠성음료는 다시 롯데쇼핑의 지분을 보유하는 식의 환상(環狀)형 순환출자구조다.





창업주가 자초한 일, 누구를 탓하겠나?



1. 8월 7일 오후 서울 김포국제공항 출국장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는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 2.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롯데그룹 사태와 관련해 국내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수원수구(誰怨誰咎)리오?” 모든 것이 신 총괄회장이 자초한 일인데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하고(誰怨), 누구를 탓하겠냐(誰咎)는 것이다.



한국롯데와 일본롯데는 ‘동근이엽(同根異葉·같은 뿌리 다른 가지)’이었다. 운영방식이나 기업문화도 달랐고 교류도 거의 없었다. 신 총괄회장이 후계자 자리를 놓고 두 아들을 경쟁시켰던 데 원인이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일본롯데를, 신동빈 회장은 한국롯데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서 신 총괄회장이 한·일 양국의 롯데를 총괄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신 전 부회장이 주요 보직에서 잇따라 밀려났다. 그러자 지난 7월 15일 일본롯데홀딩스는 신 회장을 3인 공동대표 가운데 한 명으로 선임했다. 그 자리는 신 전 부회장이 맡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날 롯데그룹 역사상 최초로 한국롯데와 일본롯데를 아우르는 연결재무제표가 발표됐다. 그동안 한국롯데와 일본롯데는 별도 회계로 운영돼왔었다.



7월 15일은 ‘신동빈 체제’의 출범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롯데가 그토록 강조하는 ‘원 롯데, 원 리더(One Lotte, One Leader)’ 시대의 수장은 신동빈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극적인 반전이 생겼다. 12일 뒤인 7월 27일 신 총괄회장이 기습적으로 일본을 방문해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들에게 해임을 통보한 것이다. 신 회장에게 머리를 조아렸던 스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도 해임통보를 피하지 못했다.



신 총괄회장과 함께 일본을 방문했던 신 전 부회장은 7월 30일자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스쿠다 사장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아버지의 옛 측근이 이제 와서 동생 편에 섰고, 그가 동생과 함께 아버지에게 신 전 부회장을 모함했다는 것이다. 또 신 전 부회장은 스쿠다 사장이 오랫동안 근무한 임원들을 내보낸 데 대해 신 총괄회장이 진노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결국 신 총괄회장이 스쿠다 사장을 7월 3일 해임시켰지만 스쿠다 사장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출근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또 인터뷰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이 ‘7월 15일 결정’을 안 것은 언론 보도 이후라고 한다. 사흘 뒤인 7월 18일 신 총괄회장은 신 회장에게 일본롯데그룹 관련 직책 해임을 통보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스쿠다 사장과 마찬가지로 신 총괄회장의 지시를 거부했다. 결국 신 총괄회장은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신 회장을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신 회장은 방에 틀어박힌 채 지팡이 짚고 온 아버지를 만나주지 않았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은 “신동주 부회장과 일부 친족이 고령으로 거동과 판단이 어려운 신 총괄회장을 임의로 일본으로 모시고 가서 해임 발표를 유도한 것”이라며 신 전 부회장의 인터뷰 내용을 반박했다.





‘니홍고(日本語)’ 동주, ‘이방원’ 동빈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7월 31일 공개한 임명장. 그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서명했다고 주장했다.




롯데사태를 통해 드러난 롯데가(家)의 치부(恥部) 가운데 하나가 서툰 한국말이다. 한국 재계순위 5위 기업의 총수 일가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를 사용한 경우는 사실상 처음이다.



신 전 부회장은 7월 31일 공개된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과의 대화 녹취록에서 일본어로 대화를 나눴다. 이 대화에서 신 회장은 일본이름인 ‘아키오’로, 신 총괄회장은 ‘오또상(おとうさん)’이라고 지칭했다.



신 전 부회장은 한국어가 몹시 서툴다. 울산에서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국내에서 지낸 신 총괄회장은 한국어에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환갑을 넘긴 지금까지 일본에서 살아온 신 전 부회장은 한국어를 알아듣기는 하지만 말은 거의 못한다고 한다.



신 전 부회장이 지난 7월 30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어를 사용한 데 대해 비난이 빗발쳤다. “언어를 잊어버린 한국인이 한국인이냐”, “국적은 한국인이지만 정신은 일본인이다”, “돈은 한국에서 버는데 말은 니홍고(日本語)네” 등의 지적과 비아냥이 인터넷 게시판 등을 도배했다. 신 전 부회장은 KBS와 인터뷰를 하면서 일본어로 답했고 화면 아래쪽에는 한국어로 자막이 나왔다.



한국어에 서툰 형과 달리 신 회장은 한국어에 비교적 능통하다. 일본인 시게미쓰 마나미(重光眞奈美) 씨와 결혼했지만, 1990년부터 한국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회장은 이번 사태의 최종결과를 떠나 패륜(悖倫)이라는 낙인을 지우기 어렵게 됐다.



신 회장은 형에 이어 아버지마저 롯데홀딩스 대표에서 밀어내고 일본롯데를 장악했다. 또 경영권 다툼 와중에 아버지 몰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L투자회사의 대표이사로도 등재하며 한국롯데까지 장악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그럼에도 신 회장이 지속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부호를 갖는 시각이 많다. 창업주의 인정과 신뢰를 받지 못한 리더십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를 대표하는 기업 총수들 가운데 신 회장의 방식으로 권력을 승계한 경우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또 신 회장의 아들인 유열(29) 씨는 신 회장과 마찬가지로 일본국적(신 회장은 40대 이후 한국국적 회복)을 가진 데다 지난 3월에는 미국 하와이에서 일본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다. 일본국적인 만큼 과거 신 회장과 마찬가지로 병역의무가 없다.



신 회장을 조선 3대 왕인 태종 이방원에 비유하는 이도 적지 않다. 신 회장이 형인 신 전 부회장에 이어 아버지인 신 총괄회장까지 밀어낸 것이 이방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방원은 제1차 왕자의 난을 통해 이복동생들과 아버지의 오른팔과도 같았던 정도전을 제거한 데 이어 제2차 왕자의 난에서는 동복형인 방간마저 축출했다. 두 차례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태조 이성계는 급속히 쇠했으며 범부(凡夫)보다 못한 비참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재계 관계자는 “한마디로 신 총괄회장 입장에서는 멀쩡히 살아 있는데 갑자기 고려장을 당한 셈”이라며 “100세를 바라보는 고령이라고는 하지만 신 총괄회장과 관련해 갑작스레 건강 이상설, 치매설이 나오는 것이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는 까닭을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고개 숙인 회장님, 신뢰회복은 요원(遙遠)







신동빈 회장이 경영권 분쟁에 대한 대국민사과와 함께, 호텔롯데를 상장하고 그룹의 복잡한 순환출자를 연내 80% 이상 해소하는 등의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8월 11일 발표했다.



신 회장의 발표는 7월 27일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신 회장을 포함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해임한 지 15일 만의 일이다. 신 회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은 형제간 이전투구로 기업 이미지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데다 롯데그룹의 정체성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발표는 그동안 언론 등에서 지적한 내용에 대해 나름대로 해법과 방안을 정리한 것이다. 그룹의 핵심이자 지주회사 격인 롯데호텔에 대해 일본 계열회사들의 지분 비율을 축소하고 주주 구성이 다양해질 수 있도록 기업 공개를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동안 롯데호텔에 대한 기업공개 논의는 수 차례 있었지만, 신 총괄회장의 반대로 불발됐다.



1998년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고향인 울산 둔기리에서 가족들과 찍은 사진. 왼쪽부터 시게미쓰 하쓰고, 신 총괄회장,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아들 정훈, 맏딸 신영자 롯데장학 복지재단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큰 며느리 조은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 회장의 장녀 규미, 둘째 며느리 시게미쓰 마나미, 신회장 아들 유열, 차녀 승은. 신 전 부회장 부부와 신 회장 부부 사이의 틈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이와 함께 416개에 이르는 롯데그룹의 순환출자 고리 80% 이상을 연말까지 해소하고 중장기적으로 그룹을 지주회사로 전환해 순환출자를 완전히 해소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신 회장은 롯데가 한국기업이라는 점을 수 차례 강조했다. 세간의 논란이 되는 일본의 L투자회사들에 대해서는 “일본롯데 계열기업이 공동으로 투자에 참여하면서 생긴 것”이라며 “롯데호텔은 국부유출 창구가 아니라 일본롯데의 투자 창구”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신 회장의 발표가 막연한 계획 뿐인데다 실현 가능성도 낮아 보이기 때문이다. 순환출자 고리 80%를 해소한다 해도 여전히 80여 개의 고리가 남게 된다. 이는 10개 이내로 형성돼 있는 삼성이나 현대자동차그룹에 비해 10배에 가깝다. 또 신 회장이 밝힌 대로 지주회사 전환에는 7조원의 재원이 필요한데 이는 그룹 순수익의 2~3년치에 해당하는 규모다. 실천 여부에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다.



롯데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일본 투자회사의 지분율을 낮추는 것도 롯데호텔 기업공개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번 돈을 일본으로 빼돌린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아버지와 형의 동의를 얻지 못한 상황이라 이 같은 방안이 이사회나 총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 사정의 칼 겨눌까



8월 4일 제2롯데월드 홍보관에서 열린 롯데그룹 긴급 사장단회의에 참석한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왼쪽)가 계열사 사장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정체성 논란까지 확산되자 롯데그룹과 신 회장으로서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날 발표는 경영권 확보를 위한 여론조성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했다.







이번 사태가 롯데그룹에 대한 고강도 사정(査正)으로 이어질 거라는 관측도 있다. 역대 정권마다 롯데를 둘러싼 특혜 시비가 불거졌지만, 신 총괄회장 삼부자는 매번 칼날을 피했다. 정권 교체기마다 신 총괄회장의 마당발 인맥이 늘 화제가 됐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 총괄회장은 1995년에 불법대선자금 문제로 다른 총수들과 함께 한 차례 조사를 받은 것이 전부이고, 신 회장은 2012년 국회국정감사와 청문회 불출석으로 1천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게 사정당국과의 유일한 ‘인연’이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도 롯데의 ‘칼날 피하기’는 계속됐다. 이재현 회장이 구속까지 당한 CJ그룹, 연임에 성공한 정준양 회장이 임기를 1년 이상 남겨둔 상황에서 군말 없이 물러나야 했던 포스코와 달리 롯데는 모든 게 순조롭기만 했다.



하지만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롯데왕국’이 어이없게도 내부 분란에 의해 발가벗겨지면서 “이번에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파동, 국정원 해킹사태 등으로 지지율 하락을 겪은 만큼 집권 후반기 동력 강화 차원에서도 고강도 사정 드라이브를 걸 수도 있으리란 얘기다.



특히 롯데의 내분사태는 외교적으로 민감한 한·일 관계와 맞물려 국민여론도 들끓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불투명한 지배구조는 물론이고 자금 흐름까지 엄밀히 살펴보겠다”고 공언했고, 친박 좌장(座長) 격인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국민에 대한 역겨운 배신 행위”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롯데가 “전 정권 시절 가장 재미를 본 기업”이라는 의혹도 재점화되었다. 실제로 전 정권 때 롯데는 무한질주를 이어갔다. 공군 서울기지인 서울공항의 활주로까지 틀어가며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를 받았고, 또 하나의 숙원사업이었던 맥주 사업에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특히 제2롯데월드와 관련해 공군은 성남공군기지의 비행 안전성 문제로 강하게 반대했지만, MB(이명박 전 대통령)는 김은기 공군참모총장을 경질하면서까지 제2롯데월드 건설을 허락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면세점사업과 관련해서도 특혜 논란이 일고 있다. 롯데호텔은 2010년 또 다른 면세사업자 AK글로벌의 지분 81%를 인수하면서 전체 시장 점유율의 절반을 넘는 독과점적 지위를 갖게 됐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인수 승인을 롯데호텔에 내줬고, 관세청은 면세사업권 승계를 허가했다. 공정위가 독과점으로 인한 경쟁 제한을 이유로 신라호텔의 파라다이스 면세점 인수를 승인하지 않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롯데는 MB 정부 시절에 46개였던 계열사가 79개로 늘어났다. 49조2천억원이던 자산총액도 두 배로 증가했다. MB 정권 최대의 수혜기업이란 말이 결코 과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검찰 관계자는 “2013년 국세청에서 직원 150명을 동원해 롯데쇼핑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이고도 정작 검찰고 발은 없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고강도 사정 드라이브를 걸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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