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남은 왜 새정치민주연합에 등돌렸나

온라인 중앙일보 2015.08.30 00:01
압도적 지지에도 불구 친노 패권주의와 ‘오발탄 공천’ 등으로 반발 자초… “이대론 안 된다” 위기감 속에서 당 안팎에서 신당 결성 움직임 가속화해


“친노? 그만큼 속았으면 됐지!”

호남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심장부다. 그런 호남이 달라졌다. 지난해 7·30 재·보선 때는 순천·곡성에서 ‘노무현의 남자’라는 서갑원 새정연 후보 대신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지난 4·29 재·보선 때는 광주 서을에서 조영택 새정연 후보(29.8%) 대신 천정배 무소속 후보(37%)에게 표를 몰아줬다. 호남에서 새정연 후보가 30% 이하의 득표율에 그친 것은 조 후보가 처음이었다. 새정연에 대한 지역민심의 이반(離反)이 그만큼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방증(傍證)이다. 야권발(發) 신당 창당은 변수가 아닌 상수(常數)가 돼가는 듯하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오른쪽)와 문 대표의 인선에 강하게 반발했던 이종걸 원내대표가 지난 7월 2일 시내 한 호텔에서 ‘심야 담판’을 끝낸 뒤 무거운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새정연은 4·29 재·보선 참패 후 혁신을 부르짖고 있으나 계파갈등 등 바람 잘 날이 없다.




지난 4·29 재·보선을 코앞에 둔 주말, 기자는 광주 종합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탔다. 서울에서 광주에 막 도착한 상황이었다. 선거 분위기가 궁금해 택시기사에게 “보궐 선거에서 누가 이길까요”라고 물어보았다.



40대로 보이는 기사는 “아마 천정배 장관(후보)이 압도적으로 이길 것이요”라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답했다. 평소 선거취재 때 택시기사를 상대로 질문을 많이 해봤지만 이번처럼 확신에 찬 대답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의 텃밭에서 무소속 후보의 압승을 확신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새정연에 불만은 있겠지만 그래도 2번을 찍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 이에 기사는 “몰라서 하는 소리요. 야당에 대한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아요. 특히 문재인이 (광주에) 오면 표가 떨어질 것이요”라고 말했다. 기자는 “갑자기 왜 그런답니까”라고 또 물었다. 그러자 기사는 “갑자기가 아니고…. 10년 동안 당하고 있는데…. 기대할 게 없어요. 새정치인지 뭔지 그 당에 희망이 없어요”라고 잘라 말했다.



그로부터 4일 후인 4월 29일. 광주 서을 보궐선거 결과는 그 기사의 확신대로 천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천 후보는 2만6256표(52.4%)를 얻은 반면 새정연 조영택 후보는 29.8%(1만4939표)를 얻는 데 그쳤다. 압도적인 표차였다. 천 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생각한 선거 결과로는 의외였다. 광주 민심이 새정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 선거였다.



이후 광주를 비롯한 호남지역에서는 야권의 정치지형을 바꿔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야권에 새로운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새정연으로는 총선은 물론 대선 승리도 요원(遙遠)하다고 판단한 세력들에 의한 움직임이다.



천정배 의원이 그 중심에 있다. 무소속인 만큼 행보가 자유로운 까닭도 있지만 천 의원은 전국의 참신한 인재를 구하면서 신당 창당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 뒤에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염동연 전 의원이 있다. 염 전 의원은 조직의 대가답게 신당 창당 실무를 진두 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도 분당(分黨) 후 신당을 꿈꾸는 세력이 꿈틀거리고 있다. 광주 동구의 박주선 의원이 대표적 인사다. 박 의원은 활발하게 당 안팎의 인사들을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박준영 전 전남도지사의 탈당도 이 같은 신당 움직임의 한 부류다. 물론 아직까지 여러 신당 추진 세력이 힘을 모으지 않고 있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는 합종연횡(合從連橫)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 전망이다.





악화되는 호남민심, 동력 떨어지는 지도부



4·29 재·보선 광주 서을에서 승리한 천정배 후보가 부인 서의숙 씨를 비롯한 지지자들과 함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야권에 분당론과 신당론이 비등(沸騰)해진 데는 새정연에서 멀어진 호남민심에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4·29 재·보선 후에도 호남의 새정연에 대한 감정은 호전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는 분위기다. 탕평인사를 한다고 하고 혁신위원회를 꾸려 변화를 시도하는데도 호남민심은 새정연으로 되돌아갈 기색이 별로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여론은 새정연 소속 광주 현역의원들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광주 광산갑을 지역구로 둔 김동철 의원은 7월 24일 문재인 대표와 독대했다. 이 자리에서 김 의원은 “나를 비롯한 광주의 대부분 의원은 우리 당이 잘되길 바라지만 현재 광주의 민심은 문 대표와 결별하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같은 달 29일 박혜자 광주시당위원장 등 광주지역 국회의원 4명이 문 대표와 만찬을 했다. 이 자리에서도 의원들은 당과 문 대표에 대해 좋지 않은 광주민심을 전했다. 문 대표도 보궐 선거 이후 호남민심에 민감해진 까닭인지 호남지역 언론보도 내용을 대변인실로부터 따로 보고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새정연에 대해 악화일로를 걷는 민심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로 입증되고 있다. 호남지역 유력일간지인 <광주일보>가 보궐선거 보름 후인 지난 5월 15일 여론조사전문기관인 한백 리서치연구소에 의뢰, 광주·전남지역 성인남녀 5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면접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4.2%포인트, 응답률 15.9%) 결과에 따르면 신당 창당 및 야권 재편론과 관련, ‘신당 창당보다는 새정연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응답이 39.1%로 가장 높았다. ‘신당 창당을 통한 야권재편’은 35.6%였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25.3%였다.



정당 지지도에서는 ‘지지정당 없음’이라고 답한 무당파층이 45.0%로 가장 높았다. 이어 새정연이 42.1%, 새누리당 7.3% 순이었다. 또 내년 총선 시 정당후보 지지의향에 대해서도 응답자 45.5%가 ‘잘 모르겠다’고 답한 반면, ‘새정연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률은 26.3%에 불과했다.



신당의 움직임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더욱이 총선이 10여 개월 남은 상황에서 ‘지지정당 없음’이나 ‘잘 모르겠다’는 응답률이 높은 것은 새정연에 대한 지지가 극도로 약해진 때문으로 분석됐다.



지난 6월 중순 새정치연합 전북도당이 전북도내 11개 선거구별로 500명씩 모두 5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새정연은 전주지역 한 곳을 뺀 나머지 10개 지역에서 ‘호남신당’의 지지도보다도 낮게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11개 지역구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의 정당 지지율을 총집계한 결과도 새정연은 호남신당에 12%포인트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새정연 전남도당이 지난 7월 10~12일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남의 유권자 1만1천 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새정연의 지지율은 29.5%, ‘야권 성향 새 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44.2%였다. 14.7%포인트 차로 신당이 앞선 것이다. 유선전화 ARS 방식으로 진행된 이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표본오차는 ±3.09%포인트였다.



이 두 가지 여론조사와 관련, 질문 방식 등에 비판이 제기 되기도 했지만 새정연이 전통적 ‘텃밭’인 양 지역에서 아직 실체도 없는 신당에 지지율이 밀린다는 조사 결과는 호남민심의 현주소를 제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친노 일각에는 호남민심 이반을 여전히 부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언론이 과장하고 있고 여론조사 결과도 새정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갖도록 질문하고 있어 정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지역에서 정치를 해온 광주지역의 한 광역의원은 “친노 인사들은 자기들이 편한 사람을 만나서 들은 얘기를 민심으로 생각하니까 심각성을 모른다”며 “정치권에 20년 정도 있었지만 정통야당을 지금처럼 신뢰하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호남에서 새정연에 대해 민심 이반이 일어난 데는 복합적 요인이 있지만 그동안 영남지역 친노의 행보에서 원인을 찾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어떻게 만들어준 대통령인데



2002년 3월 16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광주에서 승리한 노무현 후보가 지지자들의 등에 올라 환호하고 있다.




광주지역의 또 다른 광역의원은 “문재인 대표를 위시한 영남 친노의 배신과 2년 후 대선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새정연에 대한 호남인의 기대를 버리게 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배신에 대해 대북송금 특검 수용과 열린우리당 창당, 대연정(大聯政) 제안 등을 거론했다.



이같이 생각하는 호남인들은 현재 새정연이 문 대표를 비롯한 영남 친노가 장악하고 있고 호남 정치세력은 곁가지라고 인식하는 한편 이런 상황에서 정권을 창출하더라도 호남과는 거리가 먼 남의 얘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이들은 배신을 당하더라도 정권 탈환을 희망하고 있으나, 현재 친노의 행태로 볼 때는 대선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호남민심이 당으로부터 떠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새정연에 대한 불만은 대부분 친노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새정연에 대한 불신은 호남지역 중진 국회의원에 대한 불만도 작용하고 있다. 10년 이상씩 국회의원을 하면서 호남인들에 대해 정치적 기대와 희망을 전혀 만들어주지 못 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새정연 입장에서 상황이 이처럼 악화된 데는 역사적 뿌리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었던 광주의 자긍심이 상처를 입으면서 호남이 친노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분석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잠시 시계를 13년 전의 상황으로 되돌려보자. 지난 2002년 3월 16일, 당시 많은 국민의 관심은 광주로 향하고 있었다.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광주 경선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원(50%)과 국민(50%)이 직접 투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경선투표가 끝나고 김영배 선거관리위원장이 단상에 나타나 마이크를 잡는 순간, 염주체육관 장내에는 팽팽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선거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총 선거인단 1941명, 총 투표수… (중략), 기호 2번 노무현 후보, 득표수 595표.”



김 위원장의 발표가 나오자 당시 노무현 후보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김 위원장의 “기호 4번 이인제 후보, 491표 …(중략), 이로써 노무현 후보가 1위로 확정됐습니다”라는 말이 나오자 장내는 감격의 도가니가 됐다. 일부는 서로 끌어안고 바닥에서 뒹굴었고 또 일부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광주 경선에서 만들어졌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광주시민들은 ‘이인제 대세론’은 물론 호남 대표주자인 한화갑 후보의 지역정서에 대한 호소마저 물리치고 야당의 이회창 후보를 이길 후보로 노무현을 택했다. 노 후보는 당시 연단에 서서 “광주시민 여러분의 위대한 승리, 민주당의 승리, 한국 민주주의 승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고 이어진 다른 지역 경선은 통과의례에 불과했다. 그는 그해 4월 26일, 서울 경선에서 새천년민주당의 제16대 대통령선거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12월 대선에서 대세론으로 무장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이 됐다.





대북송금 특검과 우리당 창당으로 호남주류 도태돼



2003년 11월 11월 서울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개최된 열린우리당 창당대회에서 김원기 의원(가운데) 등 참석자들이 당기를 흔들고 있다.




이렇게 시작했던 친노와 호남의 인연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법’을 수용하면서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의 주인은 됐으나 국회 권력은 한나라당에 있었다. 노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날인 2003년 2월 26일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새천년민주당이 불참한 가운데 자민련과 함께 대북송금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당시 노 대통령은 이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때문에 특별검사팀은 70일간 수사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임동원·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과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구속했다.



이 사건으로 호남민심은 들끓었다. 동교동계는 ‘배신행위’라고 반발했다. 새정연 박지원 의원은 “특검 때문에 DJ가 투석을 시작했고, 나도 감옥에서 13번 수술을 받았다. 내 눈이 이렇게 된 것도 특검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노 대통령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대표적 호남 친노인사였던 염동연 전 의원은 “여소야대인 상황에서 취임하자마자 정국이 막히는 것을 막기 위해 하는 수 없이 특검법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호남민심을 자극한 결정적 사건은 열린우리당 창당이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의회 내 우호세력이었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은 17대 총선 5개월을 앞둔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창당에 반대했다는 증언이 많았으나 적어도 영남 친노와 한나라당 탈당파 등은 이를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염 전 의원은 “(나는) 2003년 4월 나라종금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10월 보석으로 나왔는데 이미 47명이 탈당해 있었다. 빼지도 박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며 “천·신·정을 비판하면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유시민과 독수리 5형제(이부영·김부겸·김영춘·이우재·안영근 등 한나라당 탈당파)는 대통령의 뜻을 팔아서 신당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후로는 영남 친노가 권력을 장악했다”며 “열린우리당 창당이야말로 친노와 호남을 멀어지게 한 결정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또 “영남 친노는 정권 창출에 별로 기여하지 않고 권력만 누렸다”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창당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호남 주류정치권을 도태시킨 사건으로 평가된다. 정치평론가인 민영삼 포커스컴퍼니 전략연구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신당 찬성 여부를 떠나 노 대통령과 영남 친노는 민주당의 주류인 호남 정치권은 구태·구악이며 새로운 정치를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대상, 또 지역주의 정치의 본산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며 “이런 인식에 대해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호남정치권의 비주류 인사들과 수도권의 호남출신 정치인들은 암묵적으로 동의했고 일부는 신당 창당을 주도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지만 이들도 결국은 영남 친노에 밀려 도태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에 재야와 학생운동권 출신 세력이 동참했으며 호남에서는 당시 비주류 정치인사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 때 활동했던 주류정치인들을 대체했고 시민사회계 인사들이 청와대와 정계에 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호남과의 괴리를 가져왔다.



민 전략연구원장은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등장한 호남의 대체세력이 제 역할을 못하고 영남 친노에 기생(寄生)하면서 호남에는 정치권의 차세대 주자가 사라졌다”며 “열린우리당 창당은 배신을 넘어 호남 정치권을 말살시킨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친노 측이 당시 호남 주류 정치권을 경원(敬遠)시했던 것은 2002년 대선 전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의 ‘노무현 흔들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당시 노무현 대선후보의 지지율이 15%대로 주저앉자 정권교체에 불안을 느낀 비노 의원들은 ‘대선후보 교체론’을 대놓고 얘기했고 후단협을 만들어 노무현 후보를 흔들었다.





반성 없는 친노에 또 한 번 배신감 느껴



18대 대선패배 한 달 후인 2013년 1월 서울국립현충원에서 참회의 삼배를 하고 있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민주당 관계자들.




하지만 원인을 떠나 열린우리당 창당은 ‘노무현’과 호남의 균열로 이어졌다. 염 전 의원은 “참여정부가 시작될 때는 호남 친노가 권력의 우위에 있었는데 (안)희정이와 (이)광재, 내가 감옥 가거나 검찰 수사대상이 되면서 제 역할을 못하자 그 자리를 문재인·이호철을 비롯한 영남 친노가 꿰찼다”며 “그때부터 호남 배제가 시작됐다. 그러니 호남에서 민심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호남에 애정을 가진 희정이와 광재만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 그 친구들이 물러나면서 영남 친노가 힘을 쓰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이후 2005년 7월 28일에는 당시 노 대통령이 “지역주의 극복은 내 필생의 과업”이라며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선거제도 개편을 전제로 총리지명권, 내각구성권 등을 한나라당이 행사하도록 하겠다는 제안이었다. 물론 한나라당의 거부로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이는 호남에서 민심을 잃은 치명타가 됐다. 이는 “호남 사람들이 나 예뻐서 찍어줬습니까? 이회창 싫어서 찍어줬지”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과 교차하면서 호남 유권자들에게 배신감을 확고히 심어줬다.



영원할 것 같은 정권은 끝났고 노 대통령도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러고 대신 들어선 이명박 정권은 노 전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까지 이어졌다. 이 사건은 그동안 호남인들이 가졌던 노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과 서운함을 한 번에 털어냈다. 그리워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친노 특히 영남 친노도 부활했다.



그러나 친노는 패권주의로 호남에 다시 실망을 안겼다. 김철근 동국대 겸임교수는 “참여정부의 영남 친노들이 호남을 배제시킨 것이 친노 패권주의의 모태였다면 ‘폐족’을 선언한 친노가 ‘혁신과 통합’을 결성해 통합 후 야당의 점령군이 되면서 친노 패권주의가 부활했다”며 “이후 2012년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친노가 독식하고 지역에서도 정체성을 내세워 비노와 중도 그룹을 다 쳐냈다”고 분석했다.



이 친노 패권주의는 또다시 야권에서 호남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며 정치적 상실감을 가져다 줬다. 거기에 이명박 정부의 실패에도 불구, 총선과 대선의 잇단 패배는 호남의 희망에 가장 큰 상처를 줬다.



김 교수는 “호남인은 친노가 달갑지는 않았지만 대선 승리를 기대하고 온 마음으로 밀어줬지만 결국은 친노 패권주의 탓으로 패배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에 친노들이 반성조차 하지 않는 데서 호남인은 더욱 실망감을 갖게 됐고 새정연으로부터 멀어졌다”고 말했다. 민영삼 포커스컴퍼니 전략연구원장은 “물론 친노가 당의 주도권을 잠시 내어준 김한길·안철수 체제의 실수도 새정연에 대한 기대를 버리게 하는 원인이 됐지만 이는 친노와의 악연이라는 큰 흐름에서는 사소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호남민심은 야권신당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특히 호남을 중심으로 신당론이 확산되고 있다.



4·29 재·보선 직후만 해도 신당론에 반신반의했던 정가에서도 이제는 신당 출현에 대해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박지원 전 새정연 원내대표는 “어떤 분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신당은 창당된다고 본다. 신당 창당은 상수”라고 말하고 있다.



8월 현재 신당을 준비 중인 그룹은 ▷무소속 천정배 의원 ▷새정연 박주선 의원 ▷새정연 정대철 상임고문 ▷김민석 전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새정연을 탈당한 박준영 전 전남지사 등이 있다.





이르면 8월말 신당 가시화될 수도



이들 그룹 외에도 새정연 내 탈당 가능 세력은 박지원·조경태·김한길·안철수 의원과 김동철 의원을 비롯한 민집모(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 등이 있다. 이들은 문재인 대표의 당이 제대로 혁신을 하는지, 비전을 제시하는지 등을 주시하면서 정국을 관망하고 있다. 조경태 의원은 “19대 국회에 실망한 많은 국민이 여야를 불문한 ‘헤쳐 모여 식 정계개편’을 요구하고 있다”며 “안철수 의원 등에게 신당 합류 의사를 물었다”고 말한 바 있다.



8월 19일 복권된 김민석 전 의원의 행보도 신당 움직임에 변수가 될 수 있다. 과거 새천년민주당 창당작업을 담당했던 김 전 의원과 정균환 전 의원 등이 신당파와 행보를 함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 전 의원은 ‘민주당’이란 상표권을 갖고 있는 상황이어서 신당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호남에서는 정동영 전 의원의 신당 참여 여부도 관심거리다. 전북에서는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어 내년 총선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신당 창당은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10월 재·보선이 축소됐을 뿐 아니라 메르스 사태 등으로 신당론 확산이 여의치 않았다. 더욱이 신당파 중에는 신인들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측이 있는 반면 기성 정치인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측도 있는 등 인재에 대한 이견이 있다. 이와 함께 중도 또는 진보 등에 대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놓고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그렇다고 신당론이 소멸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물밑에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르면 8월말 또는 9월에는 신당 선언 정도는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천정배 의원의 신당작업을 돕고 있는 한 인사는 “이르면 8월 말에는 신당 창당선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리고 공식적 신당 출범은 내년 초에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9월이 신당 움직임과 관련 주목받는 것은 새정연의 혁신위원회가 혁신안을 최종적으로 내놓고 활동을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정가에서는 이 혁신안으로 새정연이 갈등을 겪으면서 신당론이 급부상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때 일부 탈당 의원도 있으리란 전망도 있다.



물론 신당이 만들어진다고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재가 나와서 신선감을 줘야 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력한 대선후보가 있어야 하지만 아직 그런 인물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약점이다.



이에 대해 한 신당 추진세력 관계자는 “당장은 대선주자급 인물이 없지만 신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면서 부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신당의 성공 여부는 새정연 문재인 대표에게 달렸다. ‘친노 패권주의’라는 당 내외의 비판을 넘어서는 리더십으로 야권 지지층에게 희망을 준다면 신당 동력이 약화하겠지만 현재처럼 친노 수장으로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내년 총선 전 탄생할 신당이 연착륙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정치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전망이다.



- 박지경 광주일보 정치전문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