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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지사 평가 1위 김관용 경북지사의 20년 지방행정 실험

온라인 중앙일보 2015.08.30 00:01
■ 주권재민의 자세로 일하니 도민들이 여섯 번 뽑아줘 ■ 행정은 송곳으로 찌르듯 구체적이고 정확해야 성과 낸다 ■ 표 잃을 각오로 추진한 안동 도청 이전이 재선의 원동력 됐다 ■ 수도권 규제완화에 앞서 지방발전 대책 마련이 우선돼야 ■ 통일시대를 대비하자면 분권 이념 명시하는 개헌 서둘러야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구멍가게를 하는 사람도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게 행정의 본령”이라고 말한다.




김관용 경북도지사(73)를 빼놓고 한국의 지방자치를 논하는 건 공허하다. 그는 1995년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시대가 부활한 이래 지방자치 20년의 산증인이다. 20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자체장의 직분을 수행했다. 1995년 구미시장 선거에서 당선된 후 내리 재선에 성공했다. 3연임 제한 규정에 걸려 방향을 튼 2006년 경북도지사 선거에서도 낙승하더니 2010년, 2014년에도 연이어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대한민국 유일의 현직 6선 지자체장이다. ‘지방행정의 달인’, ‘야전 사령관’, ‘Mr. 새마을’, ‘DRD(들이대)’까지 별명도 여럿 따라붙었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랄까? 그는 JTBC와 리얼미터가 2014년 8월부터 2015년 6월까지 총 11회 실시한 ‘월간 정례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장 평가 조사’의 최종 집계에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11개월 평균 65.5%의 ‘잘한다’는 긍정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8월과 9월 처음 두 번의 조사에서 1위에 올랐고, 지난해 11월 조사부터 올 5월 조사까지 7회 연속 수위를 차지했다. 김 지사에 대한 경북도민의 긍정 평가는 전국 평균(51.1%)에 비해 14.4%p 높다. JTBC는 김 지사 평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요인과 관련해 “일자리 창출과 산업 및 투자유치를 위한 각종 활동, 대규모 보육 예산 편성, ‘할매할배의 날’ 행사 등과 같은 소통 도정 등이 꼽힌다”고 밝혔다.



8월 5일 월간중앙 회의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 지사는 “현장에 답이 있다”며 현장 중심의 행정을 강조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대면, 전화 등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JTBC 전국 시·도지사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긴장이 많이 되더라. 단체장을 오래해서 그런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올 수 있고, 또 여론이라는 게 수시로 바뀌다 보니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도 들고…. 지금도 간부회의를 하면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 더 잘해야 한다며 다그치기도 한다. 어쨌든 도민에게는 자랑스러운 일이고, 경북도 공무원들에게는 큰 자극제가 되는 조사결과다.”





‘취직 좀 하자’는 슬로건에 모두 웃어



2012년 대구시 북구 산격동에 위치한 경북도청 정문 위에 ‘취직 좀 하자!’는 이색 구호가 적힌 조형물이 설치됐다. 경북도는 일자리 창출을 도정의 주요 목표로 삼는다.




열한 번 진행된 조사에서 항상 60~70%대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그 동력이 뭐라고 보나?



“경북도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상황이 주어지면 나는 아주 강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오죽하면 나를 ‘DRD(들이대)’로 부르겠나. ‘들이대’는 경상도 사투리로,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을 말한다. 경북도 공무원들은 개성과 주관이 강하다. 이들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니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했다. 또 내가 결정한 방향대로 직원들이 잘 따라줬고 상하간 소통이 잘된 덕도 있다.”



경상북도가 지난 5월 ‘2015 전국 지방자치단체 일자리 대상’에서 최우수기관 표창을 받았다. 일자리 창출이 말처럼 쉬운 건 아닌데….



“지사에 당선되고 나서 도청 정문에 ‘취직 좀 하자’는 슬로건을 내걸자고 했더니 처음엔 모두가 웃더라. 뭐 ‘위대한 경북’과 같은 구호가 보통인데 좀 난데없다는 반응들이었다. 내 딴에는 며칠을 고민한 결과물이었다. 행정은 송곳으로 찌르듯 구체적이고 정확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밀어붙였다. 그 뒤로 일자리 만들기를 모든 업무의 맨 앞에 뒀다. 일자리 창출은 지자체의 핵심 정책일 수밖에 없다.”



민선 6기 임기 동안 20조원 투자 유치를 목표로 한다고 들었다.



“예전에는 한 해 5조원 정도 투자를 유치했는데 지난해 4조 5천억원에 그쳤다. 대기업 투자를 받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지방이 갖는 한계에다 물류비용 등을 따지다 보면 선뜻 투자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지방이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한다. 지방에도 사람이 산다.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자식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 이는 국가적 재앙이자 시장의 실패로 귀결된다.”





지역 갈등의 해법은 균형과 분권



김관용 지사는 “지방의 쇠퇴는 궁극적으로 국가적 재앙을 부른다”며 지역 균형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행정의 책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꼽는다면?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5가지 덕목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중에서도 나는 인(仁)을 첫째로 꼽는다. 포용하고 신뢰관계가 구축되면 그 다음 문제는 다 풀린다.”



자신은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도지사인 것 같나?



“사람을 편하게 대해주려고 한다. 직원들을 호되게 나무라기도 하지만 금세 기분을 풀어준다. 직원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모든 의사결정의 책임은 내가 진다는 자세로 도정을 이끈다.”



경북도청은 리더를 잘 만난 것인가?



“경북도의 여러 강점의 하나로 드넓은 면적을 들 수 있다. 17개 시·도 중 덩치가 가장 큰 광역자치단체다. 면적이 남한의 5분의 1(국토의 19.1%)에 달한다. 하나의 작은 나라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청정 동해안의 해안선은 천리에 달하며, 남쪽으로 쭉 뻗은 백두대간을 끼고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유역에는 광활한 평야가 펼쳐진다. 원전, 포스코와 같은 산업 시설이 자리한 근대화의 주역이자, 찬란한 신라 천년의 불교문화와 신비의 가야문화 그리고 선비정신의 유교문화 등 민족 문화의 본산지이기도 하다. 이런 자연·역사·산업 요소를 두루 갖춘 광역자치단체는 찾아보기 어렵다.”



도(道)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보인다.



“경북도는 산지가 많고 고도가 높은 편이다 보니 지세가 강하고 인물도 많다. 일본제국주의나 명나라가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한반도 주요 명산에 쇠말뚝을 박았다는데 상당수가 경북도에 몰려있다는 얘기도 있지 않나.”



도지사 3선을 끝으로 지방에서는 더 이상 오를 자리가 없다. 이런 경우 행정의 책임자들은 흔히 어떤 각오를 다지게 되나?



“한결같이 최선의 자세로 일하자는 마음을 다잡게 된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목표를 향해 그대로 밀고 나가고자 한다. 옳다고 한번 뛰어들면 인정사정이 없어야 한다. 그게 나를 선출해준 300만 도민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또 도민이 어렵고 힘들 때 전화 한 통 할 수 있는 따뜻한 도지사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마음에 늘 아로새긴 경구가 있다면?



“올해로 단체장만 20년인데 해를 거듭할수록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참뜻이 깊이 와 닿더라. 모든 권력은 백성으로부터 나온다는 얘기다. 책으로 수도 없이 접했지만 행정을 할수록 몸으로 더 체감하게 됐다. 국민은 하늘과 같은 존재이므로 지자체장은 늘 겸손해야 한다. 시골 아저씨마냥 주민들이 대하기가 편안한 도지사가 돼야 한다.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얘기하고 용서를 구하는 도지사가 돼야 한다. 격식에 물들거나 허례허식에 빠지지 않고 현장에서 실사구시를 추구하면 도민이 편해진다. 일의 중심에는 항상 도민이 있다. 도정 구호도 ‘사람중심! 경북세상!’으로 잡았다.”



그 교훈을 절감한 때가 있었나?



“올해 안으로 대구에 있는 경북도청이 안동으로 옮겨갈 예정이다. 지난 120년간 그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한 도청 이전문제를 초임 도지사 시절인 2008년 확정지었다. 도청 이전으로 덕을 보는 안동의 인구는 20만 명에도 못 미친다. 반면, 도청 유치 실패에 실망한 포항·구미는 인구가 상대적으로 엄청나다. 다음 지방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내심 우려도 했는데 막상 두껑을 열어보니 안동 이전 결정이 되레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아닌가. 많은 분이 어려운 결단을 했다며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셨다. 그때 ‘백성이 참 현명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쳤다.”



동서화합, 국가통합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1999년인가 광주 MBC에서 경북을 대표해 특강을 한 적이 있다. 시험공부를 하듯 3개월 동안 열심히 자료도 챙기고 원고를 준비하면서 느낀 게 있다. 이 나라는 어느 특출한 지도자 한 사람이 아니라 만백성이 일구고 지켜냈다는 사실 말이다. 지역갈등은 정치인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중앙과 지방의 균형·분권·인적 물적 자원의 효율적 분배가 도민들의 삶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 사건이 삶의 궤적을 바꿀 때



2013년 1월 열린 전국 광역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인과 대화하는 김관용 지사.




공직에 입문하기 전에는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대구사범학교에 진학했다. 다들 어려웠던 그 시절, 우선 취직이 되고 희망이라도 가져볼 수 있는 직장이 교사였다. 한 5년간 교편을 잡았다.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잇기 어려운 아이들은 봉급을 털어서 도와주기도 하고,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함께 울고 웃던 시절로 기억된다. 지금도 스승의 날이면 제자들이 찾아준다. 지자체장이 되고 강연이나 연설을 잘하는 것도 다 그 시절 아이들을 가르친 덕분이다. 당시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영남대 야간대학을 다녔다. 잠 한 번 실컷 자는 게 소원이던 시절이지만 뭔가를 지향해서 노력하는 것과 그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의 차이를 확연히 깨닫는 시기이기도 했다.”



젊었을 때의 꿈은 뭐였나?



“사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돈이 있어야 미대를 가지.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라 초·중학교를 겨우 마쳤는데. 대학도 못 가고 나중에는 행정고시에 매달리다 보니 내겐 젊은 시절의 낭만 같은 게 없다.”



1971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공직생활은 순탄했나?



“관료생활은 불행했다. 잘 안 풀리는 공무원이랄까? 늦깎이로 공직에 입문하면서 인사에서도 밀리고 삶도 쪼들렸다. 경험처럼 훌륭한 스승은 없다고 했던가? 공직 생활 내내 나처럼 억울한 사람, 부당한 인사 불이익을 받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것도 공직이 준 아픔에서 비롯됐다.”



1991년 대통령 민정비서실 행정관으로 발탁된다. 이때는 노태우 대통령 임기 말인데 TK(대구·경북) 출신이라는 점이 작용했나?



“지역 연고 덕을 본 게 아니고 행시 동기들이 끌어줘서 된 일이다. 내가 승진과 인사에서 뒤쳐지니까 추천해 준 것이겠지…. 살아오면서 느끼는 건데 인생이란 꼭 ‘기브 앤드 테이크(Give & Take)’가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 사건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묘한 상황들도 삶의 궤적을 바꾸기도 하니까. 어쨌거나 청와대 생활은 정치적 식견을 키우고 민선 구미시장 도전의 밑거름이 됐다.”



1942년 구미(당시 선산군)에서 태어난 김 지사는 1961년 대구사범학교 졸업 후 구미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출생지(선산)와 출신교(대구사범학교)가 겹친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주창한 새마을운동의 ‘전도사’로 불리기도 한다.



고향과 학교가 같은 박 전 대통령과 직접 만나거나 일로 엮인 적이 있나?



“이웃 동네에 살았고 사범학교 후배인 내가 교사로서 첫 부임한 곳이 그분이 나온 초등학교(구미초등학교)였으니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는 악수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그저 먼발치에서 본 기억은 있다. 1961년인가 혁명에 성공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구미를 방문했다. 환영대회에서 사회자가 귀빈 소개를 장황하게 늘어놓을 기미를 보이자 마이크를 가져간 박 의장이 ‘제 고향이 이곳인데 어르신들 다 아시지요? 저 상모리의 박정희입니다’라고 뚝딱 인사를 하더라. 그걸 보면서 ‘아! 저분은 대통령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대한 분을 고향, 학교 대선배로 두게 돼 영광이다.”



1995년부터 11년 동안 구미시장으로 일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교분도 두텁다고 하던데.



“박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1998년) 전부터 구미시 상모리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 자주 들렀다. 구미시장 시절 박정희 대통령 생가 기념사업을 하면서 교감을 나눴으니 나중에는 눈빛만으로 마음을 읽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박 대통령은 국민과 나라만 생각할 뿐 사심이 없다. 유·불리를 떠나 원칙과 기본을 지키는 분이다.”





중앙정부, 지방정부를 국정 동반자로 인식하지 않아



김관용 지사는 지난 4월 14일 대구에서 물라투 테쇼메 에티오피아 대통령과 만나 새마을운동의 세계화 방안을 설명했다. 그가 도지사로 재임 중에 가장 관심을 쏟았던 사업 중의 하나가 새마을운동의 세계화다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많았겠다.



“1995년 구미시장에 취임해서 보니 매년 10월 마을 주민들이 돈을 추렴해 박 전 대통령의 제사를 모시더라. 김영삼 정부 시절이고 해서 중앙정부가 예산을 지원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구미시 차원에서 지원하자는 마음을 먹고 시의원들에게 그런 방향으로 시정질문을 해달라고 주문을 넣어 여론을 환기시켰다. 주문생산을 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구미시 예산을 지원한 게 이제 20년이 돼간다. 또 1978년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가 바로 구미시 금오산에 있다. 그 발상지를 찾아 기념식을 거행할 때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모두 외면하던 장면, 2001년 개관한 구미실내체육관을 2002년 박정희 체육관으로 명칭을 바꿀 때도 찬반 여론이 극명하게 갈리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그는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공동회장(1999년), 전국 시·도지사 협의회장(2012~2013년) 등 기초·광역단체장 관련 기구의 장을 두루 섭렵했다. 한국의 지방자치제도의 성과와 한계, 과제를 진단할 만한 위치에 있다. 그는 지방자치제가 “관선의 높은 문턱을 낮추고 주민의 행정참여의 길을 텄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면서도 “그럼에도 실질적인 성과는 기대에는 못 미친다”고 아쉬움을 피력했다.



어떤 점이 실망스러운가?



“아직도 중앙 중심의 사고관, 가치관이 지배하다 보니 중앙 정부가 지방정부를 국가운영의 동반자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방의 의견은 뒷전이고 중앙에서 일방적으로 의사를 결정해 내려주는 관행이 여전하다. 지방자치가 부활한지 20년이나 됐건만 재정은 ‘2할 자치’, 사무는 ‘3할 자치’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나는 항상 분권, 재정, 균형이라는 3대 의제를 중앙과 지방이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치조직권, 자치입법권을 강화해서 분권에 더 힘써야 한다. 또 지방재정을 확충하고 재정자주권을 보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수도권 규제완화를 말하기에 앞서 지방발전대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 같다.



“수도권 1극주의, 수도권 비만을 극복하려는 중앙정부 차원의 각성과 결단이 요구된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국토 12%의 면적에 인구의 50% 이상이 집중돼 있다. 대기업 본사의 88%, 금융위 67%가 중앙에 몰려 있다. 지방분권형 개헌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때다.”



분권형 개헌에는 어떤 의제가 포함돼야 하나?



“1991년 지방의회, 1995년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이 부활했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이 나중의 지방자치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헌법 상의 지방자치 관련 규정도 117조(법령 범위 안 자치 관련 규정 제정), 118조(자치단체 조직과 운영 법률 위임) 등 2개 조항이 고작이다. 헌법상의 자치가 아니라 법률에 위임된 자치일 뿐이다. 자치단체 종류까지 법률에 위임함으로써 법률로 얼마든지 없앨 수도 있는 게 한국의 지방자치제도다. 따라서 지방자치의 취지를 살려 ‘분권 이념’을 헌법에 명시하고 자치입법권, 자치조직권, 자치재정권도 헌법에 명문화해야 한다. 지방 분권이 안되면 수도권 집중도 막을 수 없고 통일도 요원하다.”



오는 10월이면 문경시를 비롯해 경북도내 8개 시·군에서 제6회 세계군인체육대회가 분산 개최된다. 준비에 차질은 없나?



“8월 1일 현재 72개국 5440명이 참가 신청을 마쳤고, 37개국이 참가 접수 예정이다. 직전 대회인 2011년 브라질대회에 113개국이 참가했는데 문경 대회에는 역대 최다국의 참여가 예상된다. 이 대회는 문경시 등 경북 관광산업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북한이 불참을 통보해왔는데.



“참 아쉽다. 세계 유일 분단국가에서 열리는 뜻 깊은 군인체육대회라서 더욱 그렇다. 8월 31일까지는 추가 접수가 가능하므로 더 지켜보는 중이다.“





경북도 미래 먹거리 탄소산업, 3D 프린팅



김관용 지사(가운데)와 경북도, 경주시 간부들이 8월 7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경주시 통일전을 참배하고 있다.




경북도 내 최대 도시인 포항은 철강산업 위축, 구미는 산업구조의 변화와 기반시설 노후화 등으로 정체기를 맞고 있다. 주력 산업 재편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구상은?



“그래서 철강과 전자를 뛰어넘는 신산업 육성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북도는 탄소산업, 3D 프린팅을 2대 신산업으로, 또 ICT융복합·로봇·항공·바이오·에너지 산업을 5대 주력산업으로 선정했다. 탄소산업은 기획재정부의 2015년 상반기 예비타당성 조사대상 사업으로 선정됐다. 3D 프린팅 기반 구축 사업도 지난해 포항과 구미에서 각각 착공에 들어간 상태다.”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인 경북도는 1973년 이후 40년 넘게 ‘새마을과’를 운영하는 등 국내외 새마을운동을 주도해왔다. 2005년부터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 확산 활동에도 나섰다. 김 지사는 “경북도는 새마을운동을 통해 지구촌 빈곤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한국의 품격과 위상을 높이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의 새마을운동이 본격 추진되던 시기에 공직에 입문했다. 혹시 관련 부서에서 일한 적은 있나?



“새마을운동과 직접 관련된 부서에서 근무한 경험은 없지만 새마을운동의 성공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새마을운동 세계화 사업이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한다. 그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새마을운동은 가난 극복의 경험 공유를 통해 지구촌 빈곤을 퇴치하는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9개국 27개 지역에 새마을시범마을이 조성돼 있고 410여 명의 새마을해외봉사단이 현지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새마을운동을 배우고자 해마다 200명에 달하는 외국 지도자가 한국을 방문하는 등 새마을운동 세계화 사업은 한국형 ODA(공적대외원조)의 한 전형으로 각광을 받는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새마을운동의 세계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던데.



“그렇다. 반 총장은 2007년 아프리카연합(AU) 회의, 2008년 유엔본부에서 빈곤퇴치 모델로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소개했다. 이 운동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계기를 이뤘다. 반 총장과는 2009년 이후 거의 매년 만나 새마을운동 세계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경북도는 8월부터 10월까지 실크로드상의 국가들을 경주로 초청, ‘실크로드 경주 2015’ 행사를 개최한다. 어떤 행사인가?



“8월 21일부터 10월 18일까지 열리는 실크로드 축전은 문화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가 후원하는 국제행사로 ▷문명의 만남 ▷황금의 나라 신라 ▷어울림 마당 ▷연계행사 등 4개 분야에서 총 30개의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59일 동안 40여개국에서 1만 명이 참여하고, 관람객만 12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경주와 실크로드는 어떤 연결고리를 갖나?



“1천 년 전 신라인들도 서역인들과 교류했다. 신라 경주에서 출발해 고구려의 평양, 당나라의 장안을 거쳐 페르시아와 동로마 제국의 수도까지 진출했다. 장장 2만1천㎞, 5만리 대장정이다. 그냥 갔을까? 아니다. 신라의 화려한 문화를 낙타에 싣고 갔을 것이다. 혜초 스님이 구도의 길을 떠나고 최치원이 풍운의 꿈을 안고 나섰던 길이다. 신라의 음식·도자기·복식과 같은 풍물과 문화가 이 길을 따라 전파됐다. 한민족의 문화 수출 1호라고 볼 수 있고, 문화발신국으로서의 역할을 했다고도 하겠다. 그 문화 정체성, 문화 주권의 정신을 되살려 세계와 호흡해보자는 취지다.”



문화의 길 따라 평양이 경주로 와주길





‘실크로드 경주 2015’ 행사장엔 ‘북한관’이 설치된다고 들었다.



“북한에도 초청장을 보냈지만 참여 여부는 미지수다. 당시 신라의 수도는 경주, 고구려 수도는 평양 아닌가? 정치를 떠나 역사와 문화로 소통할 수 있다. 이념이나 사상과는 무관한 문화의 길을 따라 평양이 경주로 올 수 있다고 본다. 북한 관을 통해 북한 문화를 세계에 알리겠다.”



폭염이 쏟아지던 8월 7일 김 지사와 도청 간부들은 삼국 통일의 염원이 서려있는 경주 남산동 통일전을 찾아 참배했다. 경주 통일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1977년 개관했다. 신라 삼국통일 위업을 기리고 통일의 염원을 담은 곳이다. 이곳에선 매년 10월 7일 경주시 주관으로 통일서원제도 열린다. 참배를 마친 김 지사는 이른바 ‘3+3 통일공감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남북교류협력 강화를 위한 3대 전략으로 ▷남북교류협력 기금 확대 ▷남북교류협력 100인 네트워크 구축 ▷남북 독도·실크로드 파트너십을 제시했다. 또 통일공감대 확산을 위한 3대 과제로 ▷통일서원제 국가행사격상 ▷통일공감 포럼 운영 ▷통일공감 아카데미 개설 등을 내세웠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통일 관련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건 이례적이다. 경북을 남북통일 성지로 만들겠다고도 했는데 어떤 배경에서인가?



“올해로 광복 70년을 맞는 남북은 통일의 주체이자 대상임에도 통일의 경험을 갖고 있지 않다. 한반도 최초의 통일인 삼국통일을 되새겨 통일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의 하나라고 믿는다. 통일의 현대화, 자기화를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라 여기고 실천 가능한 일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그랬다.”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해 러시아산 석탄이 북한 나진항을 출발해 경북 포항 앞바다에 도착하기도 했다.



“러시아 극동의 하산과 북한 나진항을 잇는 54㎞ 구간의 철로를 통해 양국이 복합 물류사업 등 다양한 협력을 꾀하는 사업이 바로 ‘나진-하산 프로젝트’다. 하산에서 나진으로 운반된 러시아산 석탄 4만5천t이 지난해 11월 포항에 들어옴으로써 남·북·러 협력사업도 결실을 봤다. 북한의 나진항과 포항 영일만항을 연결하는 ‘환동해권 국제물류 거점항만’ 구축에도 힘을 쏟을 참이다. 통일시대를 대비해 동해안을 북방진출의 전진기지로 육성하자는 게 경북도가 추진하는 ‘환동해-북방 이니셔티브’정책이기도 하다.”



중앙정치에 참여할 의향은 없나?



“지금은 도지사 직분에 전념할 때다. 전국 유일의 6선 지자체장으로 지방 목소리의 대변자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겠다. 영호남, 수도권·비수도권 간의 갈등 조정에도 역할이 있을 것이다.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관되게 헌신하고자 한다. 지방이 잘되면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다.”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자질을 하나 든다면 무엇을 꼽겠나?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도자는 위기상황에서 적시에 결정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교통정리하는 게 리더의 역할이다.”



인터뷰 내내 어떤 질문에도 주저하거나 막히는 일이 없었다. 답변도 겉돌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통계와 인과관계를 제시하는 등 충실했다. 행정 수장 20년의 세월이 느껴졌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동네 구멍가게를 하는 사람도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게 행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 사진 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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