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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리더의 함정 ‘神 콤플렉스’

온라인 중앙일보 2015.08.30 00:01
미국의 비영리 재단인 새플링에서 운영하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는 ‘널리 퍼져야 할 아이디어’라는 모토로 경제·경영·사회·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저명 인사들의 동영상 강의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TED 웹사이트에 등록된 강의(1900여건)는 대부분 한국어 자막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시사성 있는 강의를 선별해 소개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설명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DJ나 VJ처럼 LJ(Lecture Jockey)로서 테드 강의를 돌아본다.


팀 하포드가 전하는 문제해결 비법 … 시행착오 통한 휴리스틱 접근 필요





몇 해 전, 포항에 출장을 갔다가 일을 마치고 저녁에 횟집에 갔다. 50년째 현역 어부(아들도 어부)가 재미 삼아 운영한다는 테이블 2개짜리 허름한 가게다. 일행 세 명이 테이블 하나에 앉아 ‘다른 데서는 구경도 못하는’ 잡어회를 놓고 소주잔을 기울였다. 어부는 옆 테이블에 앉아 우리 얘기를 노골적으로 정탐했다.



얼큰하게 취했을 무렵, 드디어 어부가 끼어 들었다. “설(서울) 서 온 젊은 양반들한테 쪼매 물어봅시더.” 예의를 갖춰 “아, 예. 그러세요”했다. “서부 그 짝에 모기쥐(서브프라임 모기지인 듯) 땜시 경기가 억시 엉망이라매, 언제쫌 괜찮아질려능교?” 일동 침묵. 필자가 용기를 냈다. “아, 그런 거는 저희는 잘 모릅니다.” ‘설마’와 ‘역시’가 뒤엉킨 표정으로 어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그 짝은 박사라매, 그것도 모르능교?”



필자? 박사 맞다. 하지만 세상 오만 가지 중에 한두 개 알까 말까 한 박사다. 동료들 앞에서 체면도 있고 해서 뭐라도 아는 척을 하고 싶었지만 끝내 말을 삼켰다. 진짜 잘 몰라서???. ‘차차 좋아질 겁니다’라든지 ‘당분간 어둡습니다’라는 영혼없는 대답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전지전능하다고 착각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누구나 남 앞에서는 ‘~척’을 하고 싶어한다. 아는 척, 많은 척, 잘난 척 등. 그래도 여기까지는 애교다. 정도가 심해지면 진짜 자기가 알고, 많고, 잘났다고 믿는다. 자동차 운전자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운전자의 약 80%가 자기 운전실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니 운전대만 잡으면 미친 존재감을 주체 못하는 거다. 펀드매니저의 74%는 자신의 능력이 중상위권이라고 응답한다. 개미들의 눈에는 최하위권만 보이는데도 말이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신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여긴다. 반박할 수 없는 증거에 부딪혀도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이나 생각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자신을 신(神)과 동급으로 받아들인다. 이름하여 ‘신 콤플렉스(God complex)’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이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팀 하포드(Tim Harford)의 얘기를 들어 보자.



2차 대전 때 독일군 수용소에 갇혀 있던 포로들은 몸이 퉁퉁 붓는 이름 모를 병에 시달렸다. 원인을 몰랐기 때문에 치료는 불가능한 것 같았다. 포로 중 전직 의사 아치 코크란(Archie Cochrane)은 뭐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간수들 몰래 수용소 바깥 마을에서 비타민 C와 마마이트를 들여왔다(마마이트는 영국인들이 빵에 발라 먹는 시커먼 잼으로 엄청 짜다). 중요한 것은 마마이트에 비타민 B가 무척 많이 들어 있다는 거였다. 아치는 포로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쪽에는 비타민 C를, 다른 쪽에는 마마이트를 먹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꼼꼼히 기록했다. 불과 몇 일이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유는 몰라도 하여튼 마마이트만 먹으면 회복된다는 사실이었다.



아치 코크란이 훌륭한 것은 수용소 내에 있던 독일군 의사들, 그리고 포로로 잡혀 있던 다른 의사들처럼 ‘신 콤플렉스’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매한 이론만 만지작거리며 원인 규명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손에 잡히는 수단을 가지고 일단 실험에 뛰어든 것이다. 그 덕분에 많은 포로를 고통과 죽음에서 구할 수 있었다.



‘신 콤플렉스’는 비즈니스 리더와 우리가 투표로 선출하는 정치가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신념에 차 있다. 사장만 되면 돈벼락을 부르고, 정권만 잡으면 나라를 구할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렇게 만만할까. 월마트에서 파는 물건 개수만 10만개가 넘는다. 하루 종일 세도 다 못 센다. 뉴욕에서 거래되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는 100억 개나 된다. 세는 데만도 300년이 걸린다. 우리가 부딪치는 경제·사회·정치 문제는 이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하다. 전지전능한 ‘신’을 대신할 새로운 문제해결 방식이 필요하다.



힌트는 진화에 있다. 진화란 수백 만년에 걸친 변화와 선택(variation and selection)이 쌓인 결과다. 수많은 시행착오(trial and error)를 통해 조금씩 정답에 접근하는 것이 지금처럼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세상에서는 가장 효과적이다. 생활용품을 만드는 유니레버(Unilever)의 사례를 보자. 빨래하는데 넣는 세제를 만들려면 우선 액상 세제를 만들고, 이것을 고압에서 노즐로 뿜어 스프레이 형태로 만든 후, 건조 과정을 거쳐 분말 세제를 만든다. 여기서 핵심은 노즐이다. 고성능 노즐을 만들기 위해 유니레버는 처음에는 액체역학에 대해 잘 아는 수학·물리학 분야의 ‘신’들에게 문제를 맡겼다. 그들은 노즐의 최적 디자인을 계산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문제가 너무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유니레버는 다른 무식한(?)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풀었다. 우선 노즐 하나를 놓고 이를 무작위로 변형한 노즐을 10개 만든다. 테스트를 통해 제일 잘되는 것만 놔두고 나머지는 다 버린다. 그리고 선택된 한가지 노즐을 놓고 또 10가지 변형을 만든다. 역시 제일 잘되는 것만 빼고 나머지는 다 버린다. 이런 식으로 45세대를 반복했더니 기가 막히게 좋은 노즐을 얻을 수 있었다. 노즐 모양은 체스 말 모양 비슷한데, 이 노즐의 성능이 왜 그렇게 우수한지는 아직도 이유를 모른다고 한다.



이처럼 ‘신 콤플렉스’를 잠시 버리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다 잘 되는 것만 체계적으로 골라내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이를 휴리스틱(Heuristic) 접근법이라고도 한다). 미국의 경제력이 세계 1위를 유지하는 비결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매년 전체 기업의 10%가 사라진다. 매년 미국인의 10%가 죽는 건 아니니까 미국인보다 훨씬 더 높은 실패율이다. 미국의 비즈니스가 미국인보다 더 빨리 진화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 경제의 엄청난 다양성과 지속적인 혁신의 원동력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법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흔히 ‘나는 신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안다. 그러니까 내 의견에 맞서지 말고 내 결론을 의심하지 말라’는 식으로 행동을 한다. 착각은 자유고 자부심은 옵션이지만, 지나치면 병이다. 점점 더 예측불가능하고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실패를 포용하고, 끊임없이 적응하며, 하향식(top down)보다는 상향식(bottom up)으로 접근해야만 살아남는다.



유교 전통 때문인지, 개발독재의 유산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매우 권위적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 여기저기에 ‘신’들이 넘쳐난다. 처음에는 안 그랬던 분들도 차차 자리에 익숙해지면 그렇게 된다. 사(士)자 돌림이나 장(長)자 돌림이신 분들은 명심하시라. 지금은 소수의 광신도들에 둘러 쌓인 ‘신’의 자리에서 내려와 이교도들이 북적거리는 속세에 투신하셔야 할 때다. 그래야 문제가 풀린다.



‘신 콤플렉스’는 우리 말로 하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쯤 될 것 같다. 그런데 궁금하다. 사람을 잡은 선무당이 나쁜 걸까, 선무당에게 잡힌 사람이 어리석은 걸까.



글=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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