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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연 기자의 ‘스칸디나비안 파워’ ⑪ 레고] 세계인을 사로잡은 블록 장난감의 대명사

온라인 중앙일보 2015.08.30 00:01
[이코노미스트]


가족경영→전문경영인 체제로 위기 극복 ... 게임·출판·영화로 무한 변신

‘헤이(Hej)’는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핀란드에서 모두 통하는 인사말이다. 철자는 차이가 있지만 뜻은 하나다. 북유럽 4개국은 비슷한 언어만큼이나 정치·경제·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 속에서 재빨리 침체를 벗어난 점도 닮았다. 위기 극복의 저력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서 나왔다. 각국 인구가 1000만명이 채 되지 않는 북유럽 국가들은 작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찍이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덕분에 우리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세계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북유럽 출신 ‘히든챔피언’이 적지 않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세계 시장을 휘젓는 북유럽의 숨은 강자들을 소개한다."



덴마크 빌룬트 레고그룹 본사.




1970~8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왕년에 레고(LEGO) 블록 한번 갖고 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알록달록한 블록을 연결하면 집과 자동차·배 등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레고는 오랜 시간 어린이에게 사랑 받고 있는 세계인의 장난감이다. 지난해까지 레고가 생산한 블록 수는 600억개에 이른다. 레고 측은 전 세계 사람 1인당 평균 102개의 레고 블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레고’라는 사명이 장난감 블록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지닌 이 회사의 고향은 덴마크다. 레고는 덴마크어로 ‘잘 놀다’라는 뜻의 ‘레그 고트(leg godt)’를 줄인 말이다.



덴마크 빌룬투의 작은 공방에서 출발



목수였던 올레 커크 크리스챤센은 1932년 덴마크 빌룬트 지역에 작은 공방을 열었다. 그는 이곳에서 손재주를 살려 자동차와 요요, 바퀴 달린 오리 등 나무 장난감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장난감이 인기를 끌자 크리스챤센은 2년 뒤 장난감 전문업체 레고를 설립,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초창기 레고가 생산한 장난감은 나무로 만들어져 무겁고 잘 부서지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크리스챤센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1947년 플라스틱으로 재질을 변경한다. 아무리 좋은 장난감이라도 아이가 몇 번 갖고 놀다 보면 금세 싫증을 내게 마련이다. 그는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블록 윗부분에 요철을 만들고, 아래는 빈 공간을 둬 여러 가지로 조립할 수 있는 블록 장난감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레고 사업의 핵심이 되는 ‘브릭(Brick·벽돌 모양 블록)’의 시초다.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은 2세 고트프레드 커크 크리스챤센은 1955년 제품간 호환성을 높이기 위해 블록 크기를 표준화했다. 이때 블록이 쉽게 분리될 수 있게 밑부분보다 윗부분을 가늘게 설계했는데,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미세한 차이다. 덕분에 어린 아이도 손쉽게 블록을 빼고 끼울 수 있다. 레고는 이 기술로 1958년 ‘끼워 맞추는 블록 특허’ 받았다. 이때부터 생산된 모든 레고 블록은 제품 디자인이나 종류에 관계 없이 자유롭게 호환이 가능하다.



목수였던 올레 커크 크리스챤센은 손수 제작한 바퀴 달린 오리 장난감의 인기에 힘입어 레고를 창업하기에 이른다.
레고 블록 2개가 있으면 24개, 3개가 있으면 1060개, 6개로 9억1500만개의 조합이 가능하다. 블록 수가 많을수록 이 조합은 무한하게 증가한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레고가 어린이 창의성 계발에 도움이 된다는 입소문을 타고 1970~8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1978년에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미소를 띤 노란색 얼굴에 팔다리가 움직이는 레고 피규어가 출시됐다. 당시 1억4200만 달러였던 매출은 피규어 출시 이후 꾸준히 증가해 1993년 12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때까지 레고는 창사 이래 66년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가며 승승장구했다.



블록 6개로 9억1500만개 조합 가능



1940년대 공장 직원들이 나무로 만든 장난감을 생산하는 모습.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장난감 왕국의 신화는 1990년대 들어 위기에 봉착한다. 주요 시장이던 선진국에서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진 것이다. 여기에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를 비롯해 각종 디지털 게임이 급부상하자 레고를 찾는 어린이가 줄었다. 결국 레고는 블록 특허 출원 후 40년 만인 1998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며 하락세에 접어든다. 이후 2000년 초반까지 부침을 겪으며 2004년에는 사상 최대 적자 규모인 18억 크로네(약 3083억원), 총 부채 50억 크로네(약 8564억원)를 떠안았다. 당시 업계에서는 위기를 맞은 레고가 세계 최대 장난감 회사인 미국의 마텔(바비인형 제작사)에 넘어갈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금융권 역시 적대적 인수·합병의 최대 먹잇감으로 레고를 지목하기도 했다.



창업주 3세가 주축이 된 당시 경영진은 사업영역과 제품군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위기극복의 해법이라고 판단했다. 레고는 블록과 피규어 이미지를 이용해 의류(1993년), 시계(1995년), 출판·미디어·게임(1990년대 중반) 등 장난감 외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테마파크인 레고랜드에 대한 투자도 확대해나갔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레고랜드는 본사가 자리한 덴마크 빌룬트에만 존재했다. 레고가 출발하고, 뿌리를 둔 지역을 기념하며 1968년 건설한 것이다. 그러나 경영진이 레고랜드를 확장하며 영국 윈저(1996년), 미국 캘리포니아 칼스배드(1999년), 독일 귄즈부르크(2002)에 연달아 들어섰다.



레고는 공격적인 확장을 계속해나가며 미국의 지능완구 업체를 인수하기도 했다. 뉴욕에 인터넷 비즈니스 부서를 설치하고, 이탈리아 밀라노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여는 등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레고 디자이너가 새로운 피규어 디자인을 놓고 회의 중이다.




확장 전략을 시도한 후 2001~2002년 매출이 잠시 늘었지만 2003년 다시 매출이 급감하며 반짝 효과에 그쳤다. 일시적인 매출 성장마저도 신설 사업군에서 온 것이 아니라 영화개봉에 앞서 출시한 스타워즈·해리포터·바이오니클 시리즈 등 3개 블록 제품군에서 비롯됐다. 무리한 사업 확장 속에 초심을 잃었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크리스챤센 가문은 경영 악화로 한때 기업 매각까지 고려했지만 이미 자리잡은 ‘레고=덴마크’라는 국가적 상징성은 다른 글로벌 기업에게 부담스러운 타이틀이었다. 매각이 난항을 겪자 경영진은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70여 년 간 가족경영을 고집해온 창업자 가문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전문경영인 체제를 택한 것이다.



출산율 하락, 디지털 게임에 밀려 매각 위기 겪기도



*2014년 LEGO 연간 보고서
레고의 구원투수로 나선 이는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의 외르겐비 크누드스토르프였다. 2004년 취임한 그가 위기에 빠진 레고를 구하기 위해 내세운 원칙은 ‘브릭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rick)’였다. 초창기 레고 정신을 살려 놀이 시스템 철학을 회복하는데 모든 사업의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블록 외 1만 2900여 가지에 달한 전체 부품 수를 절반 수준인 7000여 가지로 축소했다. 크누드스토르프는 유럽과 미국 등 세계 각국의 가정 방문을 자처했다. 이 과정에서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장난감에 대한 생각과 욕구를 조사하고, 장난감 소매업체를 찾아다니며 문제점을 파악했다. 본사 인력 8000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감원 조치도 이뤄졌다. 창업주 3세대가 벌여놓은 레고 브랜드를 활용한 콘텐트 사업과 의류 등 다각화 사업은 직영이 아닌 라이선스 방식으로 전환했다. 2007년에는 생산비 절감 차원에서 기존 미국과 스위스에 있던 생산 공장을 각각 멕시코와 체코로 이전했다. 원재료 발주 과정을 정비해 조달 업체를 기존 1만1000여개에서 2200여개로 대폭 줄이고, 그 비용도 절반 수준으로 감축했다. 수익이 저조했던 레고랜드의 지분 70%는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에 매각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크누드스토르프는 CEO자리에 앉은지 1년 만인 2005년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크리스챤센 가문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이후 연평균 15%가 넘는 안정적인 성장에 힘입어 10년 새 매출이 5배 늘었다. 레고의 2014년 순이익은 전년 대비 15% 증가한 70억3000만 크로네(약 1조2080억원)를 기록했다. 매출은 13% 증가한 285억7800만 크로네(약 4조9056억원)였다. 지난해에는 한때 인수될 뻔한 미국 마텔을 제치고, 매출과 수익 면에서 세계 최대 장난감 회사에 등극했다. 크누드스토로프는 “세계 곳곳에서 고품질 완구를 생산하고, 글로벌 공급망을 운영하면서도 제품 리콜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것이 그간 이룬 성과”라고 평가했다.



레고와 함께 유년기를 보낸 청소년과 어른을 공략하는 제품도 잇따라 출시했다. 레고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키덜트(Kidult)족의 향수를 자극하는 취미용 신제품을 선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성인용 아키텍처 시리즈로, 블록으로 고전 건축물 모형을 만드는 제품이다. 제품 종류에 따라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 대에 이르는 고가 제품임에도 인기가 사그라들 줄 모른다. 영국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4287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타워브릿지 아키텍처 시리즈를 구입해 조립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간의 타깃층이 주로 5~9세 남자 어린이였던 점에 착안해 2012년부터는 여자 어린이를 겨냥한 피규어 제품도 선보였다. 최근에는 블록에 스토리를 입히는 전략으로 플랫폼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방송·영화사 등 미디어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이미 성공한 콘텐트를 레고로 만든다. [스타워즈] [배트맨] [반지의 제왕] [겨울왕국] 등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이나 주인공을 레고로 재현해 히트를 쳤다. 이밖에 원소 스멀티유즈(우수한 기획을 통해 제작된 1차 콘텐트를 시장에 성공적으로 출시한 후 다양한 장르의 문화 콘텐트로 변용·판매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방식) 전략을 펼쳐 장난감을 넘어 다양한 콘텐트로 변신하고 있다. 2013년 출시한 ‘레전드 오브 키마’ 제품의 경우 블록 시리즈가 인기를 끌자 만화책과 온라인 게임, 비디오, TV 시리즈 등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영화제작사 워너브라더스와 함께 [레고무비]를 개봉해 6개월 만에 약 5억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과거 디지털 게임기에 밀려 위기를 맞은 바 있는 레고는 최근 디지털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2009년 모바일 전용 블록쌓기 게임을 출시한데 이어 2011년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이며 모바일 시장에 진출했다. ‘레고 디지털 디자이너’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객이 직접 제품 개발과 개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그 일환이다. 이때 좋은 평가를 받은 제품을 실제 완구로 출시하기도 한다. 레고 소속 디자이너는 180명에 불과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12만명에 달하는 잠재적인 디자이너를 확보한 셈이다. 또한 20만명 이상의 성인 레고 팬으로 구성된 소비자 커뮤니티 AFOL(Adult Fans of LEGO) 멤버 중 100여명을 레고 앰배서더로 지명해 이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환경 소재 블록 개발에 박차



2004년부터 현재까지 레고를 이끄는 외르겐 비 크누드스토르프 대표.


올해 창립 83주년을 맞은 레고의 변신은 현재진행형이다. 레고는 최근 블록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레고가 블록에 변화를 주는 것은 1963년 이후 처음이다. 변화의 핵심은 소재다. 기존 플라스틱 블록의 주원료로 쓰인 석유 대신 옥수숫대 등 농업 폐기물을 원료로 한 친환경 신소재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레고가 지난해 600억개의 블록을 생산하는데 소비한 석유는 약 7만7000t에 달한다. 레고가 오직 한 가지 제품을 생산하고, 그 제품의 재료가 플라스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결정은 환경은 물론 기업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레고의 환경·지속가능성 파트를 맡고 있는 팀 가이 브룩스 수석 이사는 “현재 플라스틱 대안으로 나와 있는 식물 원료 등은 레고가 원하는 블록의 느낌을 주기엔 역부족”이러며 “신소재를 개발해 제품을 완벽히 바꾸기까지는 15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블록을 수천 분의 4mm로 금형하는데, 이때 고도의 정확성이 요구된다”며 “소비자가 기존 제품과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신소재 블록을 제작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덧붙였다.



- 허정연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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