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통큰 제의’ 통한 ‘통큰 평화’ 찾을 때다

중앙일보 2015.08.29 19:43
남북 고위급 접촉으로 6개 합의 사항이 발표된 이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평상시 수준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국민의 단합된 힘, 정치권에서 모처럼 나온 ‘한 목소리’ 그리고 중국·미국의 외교적 지원에 힘입어 군사적 대결 국면은 일단 고비를 넘겼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지지율도 한 주 전보다 무려 15%포인트 급등한 49%를 기록했다(한국갤럽).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8·25 남북합의로 큰 성과를 얻었다고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 정부는 대통령의 국정지지율 회복에 취해 있어서도 안된다. 냉정히 따지면 북한도 크게 잃은 게 없다. 사과라는 것도 우리의 해석이지, 그들은 주어 없는 ‘유감’ 표명에 그쳤다. 대신 우리의 대북 확성기를 끄게 만들었다. 북한이 준전시 상태를 해제했지만, 그렇다고 도발을 포기한 건 아니다. 지난 경험에 비춰 북한은 언제든지 새로운 도발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게 사태의 끝은 결코 아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무엇보다 어렵사리 도달한 대화 국면을 지속가능하게,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일시적인 ‘작은 평화’에 안주할 게 아니라 차제에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확고한 대화의 틀을 다지자는 것이다.



남북대화 국면은 박근혜 정부로서는 천재일우의 기회일 수 있다. 북한에서도 긍정적인 신호가 나오고 있다. 김정은은 “고위급 접촉은 북남관계를 화해와 신뢰의 길로 돌려세운 중대한 전환적 계기”라며 “우리는 화(禍)를 복(福)으로 전환시킨 이번 합의를 소중히 여기고 풍성한 결실로 가꿔야 한다”고 했다. 판문점 고위급 접촉의 북한 대표였던 황병서와 김양건도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했다. 남북 적십자 실무 접촉 일정도 잡혔다.

정부는 이 모멘텀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이미 절반을 지났다. 헌법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명기돼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남한만이 아닌 한반도의 대통령이다. 따라서 임기 중 남북관계를 혁신적으로 이끌 방안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을 향한 ‘통큰 제의’도 과감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요즘 자주 거론되는 5·24조치 해제나 남북 정상회담 제의 같은 ‘한반도 이니셔티브’를 전향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없이는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전제조건을 내세운 추수(追隨)형 대응만으론 국면을 전환시키기 어렵다.



그렇다면 결단이 필요하다. 남북 당국 회담이나 이산가족 상봉은 매우 중요하지만, 제한적인 게 사실이다. 효과가 작다거나,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이대로 꾸준히 추진하되, 더 큰 평화와 화해 나아가 통일을 주도해 나갈 더 큰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첫 독일 통일을 이룩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신이 역사 속을 지나갈 때 그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임무”라고 했다. 지금은 남북이 대화로 유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통큰 제의’를 통한 ‘통큰 해법’은 역사에 남을 ‘통큰 지도자’만이 할 수 있다. '작은 협상'에 몰두하다가는 큰 목표가 미뤄지기 쉽다. 이젠 그 '큰 답'을 그려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 '신의 옷자락'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날 때 주저없이 붙잡을 수 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