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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혁명은 박정희ㆍ박태준의 신뢰관계가 만들었다

중앙일보 2015.08.29 16:42
『대한민국의 위대한 만남- 박정희와 박태준』
1992년 10월 2일. 박태준 당시 포항제철(현 포스코) 회장은 광양제철소에서 1만2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포항제철 4 반세기 준공식’을 가졌다. 광양 4기 설비 완공식이자 25년 만에 포철이 한 해 2100만t의 생산능력을 갖추는 자리였다. 다음날 박태준은 하얀 셔츠에 검은 넥타이, 검은 양복 차림으로 서울 동작동 고 박정희 대통령 묘 앞에 섰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만남- 박정희와 박태준』출간
두 거인의 운명적 만남과 성공 신화
작가, 박태준과 15년간 매주 대화
그 역사적 기록을 책으로 엮어

“각하, 불초 박태준, 각하의 명을 받든지 25년 만에 포철 건설의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삼가 각하의 영전에 보고드립니다.”

박 대통령에게 "철강 2000만t 시대를 열 때까지 고로의 불꽃을 지고 가겠다"고 약속했던 박태준은 이렇게 임무 완수를 알렸다. 박정희와 박태준. 한국 근대화의 두 주인공이다. 포스코의 성공은 산업화의 견인차다. 미 스탠퍼드대학 비즈니스스쿨은 포스코의 성공요인으로 ‘박정희의 강력한 의지와 박태준의 탁월한 리더십’을 꼽았다.



1948년 남조선 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강의실에서 스승과 제자로 처음 만난 박정희와 박태준은 이후 5ㆍ16을 꿈꾸는 사령관과 인사참모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상공담당 최고위원으로 만남을 이어갔다.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박태준에게 종합제철소 건설을 맡겼고 박태준은 이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이 신화를 기록한 책이 『대한민국의 위대한 만남- 박정희와 박태준』(이대환 지음, 아시아)이다. 저자는 두 사람의 만남을 제철혁명이라는 '위대한 일'을 이룬 ‘위대한 만남’이라고 부른다. 박정희와 박태준의 완전한 신뢰에 바탕을 둔 인간관계가 없었다면 제철혁명에 성공할 수 없었다고 단언한다. 1961년 5월 거사 명단에 박태준의 이름을 빼놓고, 실패할 경우 자신의 가족을 부탁하려 했던 박정희. 제철소 건설과정에서 정치적 외풍을 철저히 막아준 ‘종이마패’는 두 사람간 진정한 신뢰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1997년 5월 포항에서 당시 70세의 박태준과 처음 만났던 작가 이대환은 그때부터 박 회장이 세상을 떠난 2011년 12월까지 15년간 거의 매주 한두 차례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를 바탕으로 2004년 12월 평전『박태준』을 썼고, 이번에 박정희에 대한 회고를 바탕으로『대한민국의 위대한 만남- 박정희와 박태준』을 내놨다. 포항제철의 건설과정이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박태준이 녹초가 되도록 취하게 하라’는‘술자리 테스트’를 비롯, 두 인물의 관계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당시 정치적 상황이 녹아있지만 박정희의 모습은 공과(功過)가 아닌, 박태준의 관계 속에서 그려진다.



박정희 대통령을 향한 박태준의 공개되지 않았던 원고도 담겨 있다. 박태준은 2011년 11월 14일 경북 구미의 박정희 생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동상 제막식에 참석해 내빈 인사를 하기로 했으나 당일 큰 수술을 받아 인사말을 하지 못했다. 그 원고가 이번에 공개됐다. 박태준이 준비했던 인사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덧 저의 인생은 황혼에 와 있습니다. 아직도 사무치게 그리운 얼굴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63년전 저 태릉 골짜기의 초라한 육사 강의실에서 저는 처음으로 박정희라는 특출한 분의 눈에 띄었고, 결국 그것은 저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아무 소리 말고 맡아"라는 한마디 말씀에 따라 저는 제철에 목숨을 걸고 삶을 바쳐야 했습니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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