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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뒷광대’의 파란만장 분투기

중앙선데이 2015.08.29 03:45 442호 32면 지면보기

구술: 이병복 출판사: 청현문화재단 가격: 3만3000원



이병복(89)이라는 이름은 연극계에서는 ‘전설’로 통한다. 1947년 이화여전 영문과 졸업연극에서 시작된 무대와의 인연은 48년 여인 소극장 창단 멤버, 66년 연출가 김정옥(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과 함께 한 ‘극단 자유’ 창단, 68년 국내 최초의 카페형 소극장 ‘까페 떼아뜨르’ 개관, 87년 한국무대미술가협회 발족으로 이어졌다. 뿐이랴, 조부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경북 영천 만석꾼 집안의 큰애기씨에서 서양화가 권옥연(1923~2011)의 아내로, 홀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이자 세 아이의 엄마로, 파리 유학생으로, 네오 의상실의 디자이너로, 그리고 무대 의상 및 미술가로 걸어온 길은 구구절절 파란만장하다. 그는 어떻게 이 같은 1인 다역을 충실하게 수행해낼 수 있었을까. 그가 들려주는 삶의 태도에 실마리가 있을 법하다. “사소하든 중요하든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무조건 필사적인 지성을 드리면, 그래도 그 대가가 어느 날인가는 나타나지요(…)내가 가지고 있는 거를 다 쏟아서 덤벼드는 거예요. 그러면 오뚝이처럼 용수철처럼 다시 설 기운이 생겨요(…)그 마음만 있으면 이 세상에 못 이룰 일이 없어요.” 실제로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면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받았다. 걸핏하면 학교도 못 가고 어머니로부터 살림을 배우고 손님 주안상을 차려내야 했지만, 덕분에 극단 대표가 되어서도 무대를 직접 제작하며 극단 살림살이까지 챙기는 일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남편을 ‘한국의 피카소’로 만들겠다며 둘이서만 떠난 파리 유학도 마찬가지였다. 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공부한 프랑스어 수업과 의상 디자인 실습을 통해 그는 파리 패션의 정수를 몸으로 익혔고 이는 귀국해서 그에게 제 2의 인생을 열어주었다. 덕분에 이병복의 무대 의상은 남달랐다. ‘무대 의상도 나름의 영혼을 품은 한 명의 연기자’라는 평소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됐기 때문이다. 옷을 함부로 대하다가 그에게 치도곤을 당한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청사초롱 병풍과 삼베 천 인형으로 장식한 ‘피의 결혼’(1982)을 비롯해 수많은 한지 옷으로 신비스러움의 극치를 구현한 ‘수탉이 안 울면 암탉이라도’(1988), 볼록한 장독을 본뜬 의상을 선보여 프랑스 관객들의 환호를 이끌어낸 ‘노을을 나르는 새들’(1992)은 한국 연극무대사의 여러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작품들이다. 경기도 남양주 금곡에 남편 권 화백의 호를 딴 ‘무의자(無衣者) 박물관’을 비롯한 전통 한옥마을을 조성한 그는 지난 3월 자식같이 아끼던 소장품 2470여 점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에 내놨다. 이 책은 청현문화재단(이사장 이수형)이 ‘삶을 진솔하고 향기롭게 엮어 오신 여성 원로’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여성 생애사 구술채록 총서’의 제 1권이다. 지난해 총 열일곱 번을 만나 29시간 40분 동안 들은 이야기를 400쪽으로 풀어냈다. 25일 낮 서울 성수동 ‘카페 성수’에서 열린 출간기념회에는 김정옥(연출가), 진태옥(패션디자이너), 오현경(배우), 김종규(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강부자(배우), 윤석화(배우) 등 문화계 거물들이 대거 참석해 연극인 박정자와 손숙의 낭독을 들으며, 스스로를 ‘뒷광대’라 부르며 삶을 추스려온 한 여인의 웅숭깊은 삶을 함께 반추하고 축하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일이 좋아 일을 만들어 했을 뿐입니다. 연극은 평생 무대 뒤에서, 그 밖의 일은 그림쟁이 권옥연 그늘에서, 하늘을 등에 지고 땅에 엎드려서 흙과 더불어 지냈죠. 그 많은 일이 제게는 축복이었어요.”


『우리가 이래서 사는가 보다』

글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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