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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대학생에게 내 지식 모두 나눠줘요 … 창업정신 키우죠

중앙일보 2015.08.29 00:37 종합 16면 지면보기
이두희 대표는 “기본적인 코딩 실력에 비즈니스 감각까지 더해진다면 누구라도 세상이 놀랄 만한 멋진 IT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대학생들이 내가 만들고 싶은 정보기술(IT) 서비스를 직접 배워서 직접 만듭니다. 단 81일 만에’.

[사람 속으로] 해커 출신 무료 ‘코딩 강사’ 이두희씨
낮에는 스타트업 개발자로 일하고
밤에 문과생 위주 500명 12주 교육
수강생들 미국 페북 본사 등에 취업
직접 앱 만들어 시장에 내놓기도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코딩(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마치 개발자처럼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 수 있게끔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 서울대 공대 재학 시절부터 ‘컴퓨터 박사’로 이름을 알린 이두희(33)씨가 그 주인공이다. 더군다나 수강료를 전혀 받지 않는 공짜 강의다. 낮에는 신생 기업(스타트업) 개발자로 일하고, 밤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연합 동아리 ‘멋쟁이사자처럼’ 대표 강사로 활동하는 이씨를 27일 서울 대치동 구글캠퍼스에서 만났다.



 - 우선 이름이 독특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멋쟁이사자처럼’인가.



 “생각나는 대로 지었다. (웃음) 석사 시절 창업한 게임 회사에서 2012년 말 쫓겨났다. 개발자들과 함께 숙소에서 생활했는데 거기 비밀번호조차 바꿔놨더라. 교대역에서 이틀, 강남역에서 하루 노숙을 해야 했다. 솔직히 말하면 한강 다리에도 올라갔다. 그렇게 2013년을 맞았는데 정말 할 일 하나 없는 백수(白手)가 됐다. 불현듯 ‘백수(百獸)의 왕은 사자가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단순히 ‘사자’만으로는 심심했다. 그래서 택한 게 ‘멋쟁이 사자’다.”



 -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나.



 “작은 실험이었다. 딱히 무슨 의도를 갖고 시작한 건 아니고 집에서 보름 정도 놀다가 몸이 근질거리던 찰나였다. 처음엔 서울대생 30명을 대상으로 동아리실 하나를 빌려 코딩 강의를 했다. 그런데 컴퓨터 언어를 하나도 모르던 학생들이 석 달 만에 ‘총학생회 전자투표’ 앱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이전까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이때부터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코딩을 가르치면 어떤 놀라운 일이 발생할지 스스로도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무료 코딩 강의를 이어온 이유다.”



 올해 멋쟁이사자처럼에는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 157개 대학 3812명이 몰려 수강 인원을 지난해(140명)보다 세 배 이상 많은 501명으로 늘렸다. 구직을 목표로 한 취업준비생들의 코딩 열풍에 더해 이씨가 TV 예능 프로그램(tvN ‘더 지니어스’)에 출연하면서 유명해진 덕분이다. 지원자의 80%는 코딩 교육에서 소외받은 문과생이다.



 - 프로그래밍 과정을 수강한 학생들의 진로는 어떤가.



 “3기 참여자 가운데는 미국 페이스북 본사에 합격한 학생이 있다. 인문계 학생 가운데서도 코딩 기본 지식을 배워 이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던 삼성·LG에 취직한 학생도 있다. 요즘은 마케팅에서도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기술 영업 직군이 많다. 또 다음카카오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학생, 스마일게이트·옐로모바일 등 신흥 스타트업에 붙은 학생도 있다. 직접 만든 앱을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 내놓는 경우도 있다.”



 이씨가 대중에게 처음 알려진 건 2006년이다. 당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재학 중인 이씨가 학교 전산 시스템을 해킹해 배우 김태희(35)씨의 학교생활기록부 사진을 유출하면서다. 본래 그는 보안에 취약한 학교 전산 시스템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서울대 측으로부터 묵살당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서울대 담당 신문사 기자 한 명이 “이슈를 키우기 위해 김태희 사진을 해킹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10분 만에 전산망에 침입해 유유히 사진을 건네줬다. 2008년엔 서울대 강의를 평가하고 공유하는 사이트(snuev.com)를 제작했다. 국내 최초의 온라인 강의평가사이트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을 본래 컴퓨터를 좋아하는 ‘컴돌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나.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한 가지 있는데 나는 대학교 1~2학년 때까진 ‘코딩 열등생’이었다. 대학교 2학년까지 평점이 1.97밖에 안 됐다. 물리학을 선택하고 싶지 않아 컴공과를 지원한 건 분명 오판이었다.”



 - 그렇게 싫은 전공을 계속 붙들어 매고 하게 된 이유는.



 “전과를 시도해 보니 또 학점이 높아야 가능했다. 결국 그냥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으로 생각했다. 대신 3학년 때부터 매일 8시간 넘게 실습을 했다. 이 악물고 의지 하나로 공부하니 실제로 따라잡게 되더라.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한 코딩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스스로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 2018학년도부터 중학교 1학년은 주 1회 한 시간씩 총 34시간 SW 교육을 할 예정이다. 영국·미국 등 선진국과 같이 한국도 학교 코딩 교육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코딩을 배우면 분명 나갈 수 있는 길이 많다. 창업을 하든 취업을 하든 IT가 주도하는 경제에서 코딩은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딩 교육을 수행평가 점수 매기듯이 하면 안 된다. 40~50대 교사가 젊은 선생님처럼 SW 교육을 소화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금도 고등학생들이 하루에 12시간 정도씩 학교에 있는데 학교 수업만 일찍 끝내줘도 스스로 코딩에 흥미를 가질 학생이 많다.”



 출중한 컴퓨터 실력에 유머감각까지 갖춘 이씨를 좋아하는 팬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페이스북 친구는 이미 한도(5000명)를 꽉 채운 상태다. 이씨의 열성 팬들을 위해 TV 화면에선 볼 수 없는 그의 일상생활을 물었다.



 “24시간, 월화수목금토일 모두 코딩의 연속이다. 하지만 약간씩 다르다. 낮에는 회사 일, 밤에는 멋쟁이사자처럼 강의, 주말에는 내가 하고 싶은 코딩을 한다. 멋쟁이사자처럼과 주말 코딩은 취미다. 틈틈이 카레이싱 같은 취미를 즐긴다. 예능 출연도 스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취미의 일부다.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단순한 발상뿐이다.”



글=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 BOX] 수강생들 ‘메르스 맵’ 만들어 위험 지역 알려



지난 6월 3일, ‘멋쟁이사자처럼’ 출신 학생들은 ‘메르스 맵’이라는 정보기술(IT) 서비스를 출시했다. 전국 지도에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거나 격리 판정을 받은 환자가 있는 병원 위치를 표시해 시각적으로 메르스 위험 지역이 어딘지 알 수 있게끔 했다. 서비스 운영 일주일 만에 네티즌으로부터 받은 제보 340여 건을 처리했다. 불과 2주간 운영됐지만 페이지 순방문자 수는 5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화제였다.



 81일간 ‘멋쟁이사자처럼’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운 학생 가운데는 직접 창업에 나선 경우도 있다. 박수상(25·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학생회장 출신)씨는 지난해 8월 대학에 입학하려는 고등학생, 구직자의 자기소개서를 첨삭·지도해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박씨는 “동기생 25명 가운데 취업에 성공한 친구가 10명 정도밖에 없었다”며 “ 프로그래밍을 배워 창업하는 게 훨씬 낫다고 봤다”고 말했다.



 ‘비프로’ 강현욱(24) 대표는 로스쿨 준비생이었다가 이 교육을 수강하고 창업했다. 그가 만든 SW ‘비프로 11’은 아마추어도 마치 프로축구 구단처럼 컴퓨터 데이터베이스(DB)로 각종 경기 내용을 저장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팀별 골득실, 선수당 활동 거리 같은 정보를 수기(手記)로 쓸 필요가 없다. 그는 한국프로축구연맹과 공식 계약을 해 유소년 리그를 지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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