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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한 자에게는 채찍이 … 일본은 진실 외면 말아야”

중앙일보 2015.08.27 00:55 종합 16면 지면보기
이옥선 할머니는 나눔의 집에서 가장 학구열이 높다. 공부를 하지 못했던 아쉬움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를 앞두고서도 구약성서(아래)를 읽고 있었다. [김성룡 기자]


“내가 이제 벌써 구십이 가까워 왔디요. 그동안 많은 할마이들이 떠나갔습네다. 하지만 이거는 똑똑히 기억해야 하오. 우리가 다 죽더라도 일본은 진실을 해명해야 됩네다.”

위안부 할머니 13명의 증언 <6> 88세 이옥선 할머니의 성경
식당으로 팔려간 6남매 둘째 딸
심부름 나갔다 낯선 남자에 끌려가



 지난달 22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에서 만난 이옥선(88) 할머니는 연변 말씨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부산에서 6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난 이 할머니는 열다섯 살이었던 1942년 중국의 한 위안소로 끌려갔다.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공부가 하고 싶어 부모님을 졸랐던 기억부터 떠올렸다.



 “어릴 때부터 공부 욕심이 많았어. 어느 날 ‘수양딸을 삼고 공부도 시켜준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부모님이 나를 보냈는데…근처 어디 식당집이었어.”



 하지만 막상 도착하자 식당집 부부는 할머니를 박대했다. 공부를 시켜주기는커녕 온갖 허드렛일을 시켰다. ‘어린 식모’였다. 할머니에게 손님들 술시중까지 들게 했다.



 그러다 울산의 한 여관집으로 팔려갔다. 여관집에서도 하루종일 궂은 일에 시달렸다. 심부름을 나간 어느 여름 날 할머니는 낯선 남자들에 의해 위안소로 끌려갔다.



 “ 까만 옷을 입은 남자 2명이 갑자기 내 손목을 잡고 ‘가자’고 했어. 하나는 조선 사람이었고 하나는 일본 사람이었어. ‘어디로 가냐’고 해도 막무가내로 끌고 가더라고. 아무리 소리 지르고 반항을 해도 주변에 사람 하나 없었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끌려갔는데 도착한 곳이 중국의 도문이라는 곳이었지.”



 할머니는 1942년 7월의 중국 도문역을 ‘캄캄했다’고 기억했다. 그곳에는 함께 끌려온 한국인 여성 다섯 명이 있었다. 얼마 후 현지 위안소를 관리하던 일본인 부부가 그를 찾아왔다. 일본인 부부는 할머니를 ‘도미코’라는 일본 이름으로 불렀다. 그때부터 생지옥이 펼쳐졌다.



 제대로 먹지 못한 채 풀죽으로 버티는 와중에도 매일같이 군인들이 찾아왔다. 열여섯 살 때 초경을 경험했다. 군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강제로 관계를 맺었다. 피임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 반항을 하기도 했지만 주먹질과 발길질만 돌아왔다. 주말에는 수십명이 줄지어 찾아왔다. 그렇게 만 3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해방이 된 거를 몰랐어. 아무도 해방을 말해주지 않았어. 관리하던 일본인들은 이미 도망질을 해서 무슨 변고가 생겼는갑다 했지. 그곳에 있던 조선인 농부가 ‘이제 가도 된다’고 얘기를 해주더라고.”



 할머니는 만주 용정의 팔도진이란 곳에서 첫 번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곧이어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남편이 북한군에 입대했다. 나흘 만에 생이별을 해야 했다. 시아버지의 주선으로 두 번째 남편을 만나 재혼을 했다. 결국 만주 땅에서 반세기를 살았다. 할머니가 다시 한국을 찾은 건 그가 조국을 떠난 지 54년이 지난 96년이었다.



 “남조선(한국)에 살아 있는 오빠하고 남동생 찾으러 갔디요. 그런데 난 이미 죽은 사람이었소. 나는 이래 멀쩡히 살아 있는데 그 새 죽은 사람이 돼 있던 거요. 나중에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내가 위안소로 끌려가고 나서 부모님이 나를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다고 합디다. 그런데 끝내 둘째 딸을 못 찾고 사망 신고를 한 거라 얘기를 들었소.”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약하게 떨렸다. 할머니는 자신을 ‘사망자’에서 ‘생존자’로 돌려놓기 위해 주민등록증 발급을 신청했지만 영구 귀국 다음해인 2001년에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이옥선 할머니는 공부 못한 한을 달래기 위해 수시로 책을 읽는다. 나눔의 집에 머무는 할머니들 가운데서도 가장 학구열이 높다고 소문나 있다. 이 할머니는 특히 구약성서를 즐겨 읽는다고 한다. 기자와 만날 때도 그는 침대 위 작은 탁자에 구약성서를 올려놓고 낮은 목소리로 읽고 있었다.



 “거만한 자에게는 채찍이 떨어지고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매가 내린다….” 잠언의 한 구절이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내가 학생들 만나면 대학은 ‘호미대학’(※학교를 다니지 못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을 나왔다고 우스개로 얘기하고 하디요. 그런데 내가 책을 읽을수록 드는 생각이 뭔지 아오? (성경책을 가리키며) 이게 옛날 역사책인데 그때 일본 사람들이 옛날 역사책대로만 살았더라면 열다섯 꽃 필 나이에 부모도 모르게 끌려가진 않았을거요. 일본은 대체 언제까지 외면할 거요?”



글=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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