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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이제 언니와 겨뤄볼 만” 언니 “난 이겨봐야 본전”

중앙일보 2015.08.27 00:33 종합 23면 지면보기
국내 첫 자매 프로기사가 나왔다. 김성래 5단의 둘째 딸인 김다영이 최근 입단대회를 통과하면서다. 언니인 김채영 2단(위쪽)은 “동생과 함께 바둑 연구를 하고 시합에도 나가고 싶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44회 여자입단대회가 끝난 후 함께한 3부녀. 왼쪽부터 김채영 2단, 김성래 5단, 김다영 초단.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 25일 오전. 2015년도 하반기 프로 입단자 면장(免狀·면허증) 수여식이 서울 마장로 한국기원에서 열렸다. 영재입단대회와 지역영재입단대회, 여자입단대회 등 하반기 입단대회를 통과한 6명이 한국기원 프로기사로 임명되는 절차다.

김성래 5단과 ‘기사 3부녀’ 가족
어릴 땐 아버지가 직접 가르쳐
바둑 도장 옮길 때마다 집 이사
김 5단 “이제 정신 바짝 차려야”
언니 “프로 생활 재미 알려줘야죠”



면장을 받는 사람들 중에 제44회 여류 입단대회를 통과한 김다영(17)이 있었다. 축하객 속의 김채영(19) 2단이 시종일관 흐뭇한 얼굴로 동생 김다영을 지켜봤다. 이들은 김성래(52) 5단의 두 딸이다. 국내 최초로 프로기사 3부녀(父女)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입단 준비를 할 때 언니에게 힘든 점을 이야기하며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아요.”



 김다영 초단은 “입단대회 일주일 전부터 갑자기 성적이 좋지 않아져서 많이 불안했다”고 했다. “언니에게 그런 고민을 털어놓으니 과거 자신의 입단대회 경험을 들려줘 큰 힘이 됐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어 “프로기사 생활은 처음이라 모든 게 다 새로운데 언니가 옆에 있어 든든하다”고 했다.



 승부는 자매라고 비켜가지 않는다. 둘이 맞붙으면 결과가 어떨지 궁금했다. 다정해 보이던 자매는 의외로 팽팽한 승부욕을 드러냈다. 김다영 초단은 “예전에는 내가 실력이 약해 언니와 바둑 두기가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섯 판을 두면 세 판 정도는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채영 2단은 “다영이와 바둑을 둔 지 1년이 넘었는데 별로 두고 싶지는 않다. 내가 이겨야 본전인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2003년 각각 일곱·다섯 살이던 자매는 동네 바둑학원에서 처음 바둑을 배웠다. 본격적으로 바둑이 늘면서 아버지가 직접 자매를 가르쳤다. 하지만 훌륭한 선생도 자기 자식은 가르치지 못하는 법. 3부녀의 바둑 수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김채영 2단은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아버지에게 바둑을 배웠는데 실수를 하면 유난히 심하게 혼내셨다. 집에서도 아버지가 아닌 사범님으로 느껴질 정도였다”며 “우리가 너무 싫어하는 걸 아신 후로 아버지도 우리 바둑에 대한 질책을 그만두셨다”고 했다.



 이후 자매는 다른 프로기사가 운영하는 도장에서 바둑 수업을 받는다. 아버지는 직접 가르치는 대신 묵묵히 딸들의 공부를 지원했다. 김채영 2단은 “바둑 도장을 서너 번 옮겼는데 그때마다 아버지가 도장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며 “한 번도 집과 먼 거리에 있는 도장에 다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여류 입단대회 마지막 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김성래 5단은 모든 대국이 끝나 입단이 확정되자 한걸음에 달려가 연신 둘째 딸의 등을 두드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자매에게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자매는 기대가 크다. 김채영 2단은 “동생이 수험생 생활을 끝내고 대학에 붙은 것 아닌가. 힘든 시간을 보낸 다영이와 함께 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며 “우선 프로기사 생활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다영 초단은 “그동안 도장에서 쉴 틈 없이 바둑 공부만 했는데 이제는 여유 있는 시간을 좀 갖고 싶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아버지는 욕심이 많다. 김성래 5단은 “둘 다 지금까지 잘해왔지만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한 시기인 만큼 정신 바짝 차리고 정진해서 화려한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첫째는 작년에 여류국수까지 차지했지만 요즘 성적이 좋지 않다. 슬럼프를 극복해야 하고, 둘째는 늦게 입단해 준비한 기간이 긴 만큼 조만간 괜찮은 성적을 내면 좋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하고 싶은 것도 놀고 싶은 것도 많다던 두 딸은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각각 한국기원과 바둑 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글=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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