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자냐 묻지 마라, 다시 뛰는 세메냐

중앙일보 2015.08.27 00:08 종합 30면 지면보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여자’ 육상선수 카스터 세메냐(24·사진). 그는 26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800m 예선 1조에서 조 3위(1분59초59)로 가까스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2009년 베를린 대회 우승 당시 기록(1분55초45)엔 한참 못 미쳤지만 세메냐에겐 뜻깊은 레이스였다. 2011년 대구 대회 이후 4년 만에 출전한 세계선수권. 세메냐에겐 재기의 무대이기도 했다.


2009년 세계선수권 800m 금 딴 뒤
큰 골격 '남성 아니냐' 의혹 불거져
2010년 검사서 여성 판정 받았지만
지난해 “동성과 결혼” 보도로 논란
마음고생, 부상 딛고 4년 만에 출전
올 개인 최고기록으로 준결승 진출

 400m 트랙 두 바퀴를 도는 경기에서 세메냐는 중반까지 중하위권에 처졌다. 그러나 반 바퀴를 남겨놓고 앞으로 치고 나갔다. 오랜만에 나선 메이저 대회여서 흥분할 만도 했지만 세메냐의 표정은 담담했다.



 세메냐는 성별 논란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선수다. 그는 18세였던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 여자 800m에서 우승하고도 ‘남성이 아니냐’는 의혹에 시달렸다. 힘있는 주법과 중저음의 목소리, 발달한 골격 때문이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당시 결승 직전 남아공육상연맹에 세메냐에 대한 성별 검사를 요청했다. 성별 논란은 어린 세메냐에겐 가혹한 일이었다. 영국·호주 등 서방 언론은 “세메냐는 자궁과 난소가 없고,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 수치가 일반 여성의 3배가량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육상계 일부에선 “여성이 아닌 선수가 경기에 나섰으니 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2011년 IAAF는 ‘여성 선수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남성보다 적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반면 남아공 측은 IAAF의 성별 검사 요청에 대해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 제소하며 맞섰다. 세메냐는 “모든 상황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세계챔피언이었다. 하지만 조롱하는 시선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성별 논란 때문에 11개월 동안 선수로 뛰지 못했다. 2010년 7월 IAAF와 남아공육상연맹은 “세메냐는 여성 선수”라고 발표했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반대로 세메냐는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는 ‘잘 뛰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여자 800m에서 2위로 들어왔지만 남자 허들 세계챔피언 출신 콜린 잭슨(영국)은 “세메냐가 고의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세메냐는 런던 올림픽 이후에는 무릎 부상 때문에 트랙에 서지 못했다.



 지난해 5월엔 훈련 파트너였던 바이올렛 라세보야(29)와 동성 결혼 논란도 불거졌다. 남아공 매체 데일리 선이 ‘세메냐가 라세보야와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메냐는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지만 성별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이와 관련해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지난달 의미 있는 결정을 내렸다. 스위스 로잔에 있는 CAS는 인도의 여자 육상선수 두티 찬드(19)가 제소한 사건과 관련해 “인간의 성이 둘로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성을 결정하는 확정적인 기준은 없다”며 “테스토스테론이 운동 능력에 도움을 준다는 IAAF의 주장은 신빙성이 작다”고 판결했다. IAAF가 2년 내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테스토스테론 수치 관련 규정을 폐기하도록 했다.



 세메냐는 이날 경기를 마친 뒤 “나는 떳떳하다. 모두 과거의 일이고, 지금은 미래를 위해 집중할 뿐”이라고 말했다. 세메냐가 예선에서 세운 기록은 올 시즌 개인 최고 기록이다. 세메냐는 “이번 대회 목표는 결선까지 오르는 것이다. 메달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다”며 “그 어떤 것도 내가 뛰는 걸 막을 수 없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는 순간까지 계속 뛰겠다”고 말했다.



 ◆ 김덕현, 세단뛰기 결선 진출 실패=남자 세단뛰기 예선에 출전한 김덕현(30·광주광역시청)은 16m72㎝를 뛰어 출전 선수 28명 중 14위로 상위 12명이 겨루는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12위 샌즈 리반(바하마·16m73㎝)과는 불과 1㎝ 차였다. 김덕현은 “이번엔 운이 따르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베이징=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