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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반도 긴장 완화와 중국 전승절 행사

중앙일보 2015.08.27 00:07 종합 33면 지면보기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
비행기에서 바라본 베이징의 하늘은 예상외로 청명했다. 중국 정부가 전승절 행사를 준비하느라 공장 가동까지 중단한 결과다. 한·중 수교 23주년(8월 24일)을 맞아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인 상태에서 21세기한·중교류협회(회장 김한규) 대표단을 면담한 중국 고위층은 이렇게 말했다.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많은 노력을 했다. 실무진이 움직이고 있다.” 중국이 북한의 도발을 강력하게 억제해줄 것을 요청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과 뉴욕 채널이 움직이고 있다고 슬쩍 흘리기도 했다. 아마 북한의 도발 이후 선양(瀋陽) 군사령부의 탱크 병력이 옌볜(延邊)에서 대낮에 이동한 것도 무언의 대북 압박이었을 것이다.



 과거 중국 지도자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중국이 이번 사태에 유소작위(有所作爲)로 입장을 변경한 것은 ‘9·3전승절’ 행사 때문이다. 베이징 거리 곳곳에는 ‘중화대단결만세’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중국은 천안문광장에서 세계 30여 개국 정상을 모신 성대한 잔치를 준비 중이다. 축제를 준비하는데 이웃집에서 소동이 벌어지는 것은 절대 불가한 일이다. 한반도의 포격 소리는 1년간 준비한 열병식 행사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과거 6자회담에서 중국 대표단은 “성안에 불이 나면 성 밖 연못의 물고기가 위험해진다”고 북한 입장을 두둔했다. 하지만 이제는 한반도의 긴장이 자금성으로 전이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이 친중파인 장성택을 처형한 것은 중국엔 악몽 같은 일이었다. 특히 1000㎞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의 비정상적 상황은 지정학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 결국 3대 세습 지도자에게 자제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중국은 어떤 긴장 조성 행위에도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 맞춰 물밑 외교 압력이 시작됐을 것이다.



 북한은 중국에 대해 “이제 와서 무슨 자제 타령이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결국 5번째로 유감을 표명했다. 이웃집 잔치를 고려하지 않은 김정은의 도발은 타이밍을 잘못 골랐다. 회담이 타결된 아침 공개 세미나에서 1992년 한·중 수교의 당사자인 탕자쉬안(唐家璇) 전 외교부장은 “아주 잘된 일”이라며 매우 만족했다. 하지만 중국 발제자로 나선 양시위(楊希雨)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이번 합의로 긴장이 종식된 게 아니라 잠시 감추어진 것이라며 낙관적인 결론을 유보했다. 중국은 여전히 한반도에서 ‘두 개의 한국’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이 평양발 급변사태로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절대 불가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현상 유지가 최우선 정책이다.



 중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석에 열렬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한국의 어려운 결정을 고려해 의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한·미 동맹의 기조하에서 중국의 첨단무기가 선보이는 행사에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오랜 친구의 심신지려(心信之旅)로 이해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기존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은 전승절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열병식에 박 대통령이 참석해줄 것을 요망했다. 독일을 제외한 많은 지도자가 열병식에 참석한다. 독일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에 중국과 공동으로 일본에 대응했다.



 전승절의 역사적 시점은 6·25전쟁이 터진 1950년이 아니라 일본이 항복한 45년이다. 2013년 박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에 합의된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에서 정치·안보 분야의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기로 했다. 같은 시기 한·중 정상회담의 선결조건으로 열린 정승조 합참의장과 팡펑후이(房峰輝) 중국군 총참모장의 군사 부문 전략적 협력 선언으로 그간의 적대적 군사관계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은 영화 ‘암살’에서 당위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은 경성을 떠나 상하이·난징 등 중국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대일 무장투쟁에서 한·중 간의 협력은 중요한 토대였다. 중국은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재단장하는 등 성의를 보이고 있다. 25일 중국은 열병식 참석 지도자를 밝히며 박 대통령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보다 먼저 언급했다. 중국은 고심 끝에 결정된 박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석이 정냉경열(政冷經熱)의 한·중 관계가 정열경열(政熱經熱)로 전환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최용해 비서가 참석하는 북한은 이제 대중 외교의 과녁을 정확히 겨냥하지 못하면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했을 것이다. 여전히 베이징-평양 간 거리가 베이징-서울 간 거리보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점차 심리적 거리는 좁혀지고 있다. 모처럼 극적인 남북한 합의를 이룬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임기 후반기에 국정 추진 동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전 민주평통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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