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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70㎝ 옮겨 앉았을 뿐인데 …

중앙일보 2015.08.27 00:07 종합 35면 지면보기
고정애
런던특파원
오른손잡이로서 오른손의 전능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젓가락질로 세포는 아니어도 참깨까진 옮길 수 있었다. 공깃돌 5개를 손등에 올렸다가 2단 꺾기로 잡곤 했다. 약간의 과장을 섞어 말하면 공기놀이계에선 김연아의 3회전-3회전 점프, ‘뜀틀의 신’ 양학선의 양2 기술쯤 됐다. 팔씨름도 남부럽지 않았다.



 그런 신화가 깨졌다. 운전석이 차량의 오른쪽에 있는 이른바 ‘왼쪽 운전’-영어식 표현(drive on the left side of the road)에서 유래했다-을 시작하면서다. 오른손만으론 핸들을 돌리기 어려웠다. 고속주행에서의 미세조종은 언감생심이었다. 오른손의 세기(細技)와 힘은 핸들 앞에선 무력했다. 운전용 근육이 따로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낭패감은 또 있었다. 차폭감(車幅感)을 잃었다. 도로 턱에, 가드레일에 부딪히고 나서야 거기가 차 끝이구나 했다. 범퍼는 상해갔지만 범퍼에 고마움을 느끼는 날은 늘어갔다. 사이드미러에 감사해하는 사람도 봤다.



 조수석이라고 낫지 않았다. 핸들의 부재에 따른 이질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공포감까지 얻어지곤 했다. 운전자들이 대개 자신 쪽 차선으로부터 떨어져 운행하는 경향 때문이다. 골목에선 특히 조수석 쪽이 담장이나 울타리, 주차해 놓은 차들을 털끝 차이로 스칠 때가 많았다. 운전자들은 몰랐다. 알려 하지도 않았다. 예의상 내색하진 않았지만 예의를 무시하고 싶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모든 차이가 70㎝에서 비롯됐다. 그저 차 안에서 자리를 옮겨 앉았을 뿐인데 세상의 다른 면이 보였다. 말 그대로 관점(觀點)만 바꿔도 이토록 달랐다. 이러니 서울에서부터 70㎝의 1만2000배쯤 떨어진 거리에선 어떨지 짐작할 수 있을 게다.



 이번 남북 대치와 협상 과정을 보며 다시금 느꼈다. 과거라면 “유연한 원칙론이 통했다”는 상찬에 그러려니 했을 수 있다. “동그란 네모”란 기이한 주장이지만 우리가 이겼다는데 대수겠는가.



 여기에선 남과 북은 라이벌이다. 북한을 괴이한 나라로 알고 있는데도 그렇다. “둘이 일촉즉발의 상황인 듯하다가도 대화의 돌파구를 마련한다. 또 한동안 조용하다 싶으면 다시 대치한다”는 게 바탕인식이다. 이번엔 “남한도 벼랑끝 전술을 쓰네” 정도가 차이일까.



 매번 협상을 잘했다는데 결국 그 자리인 걸 보면 이네들이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다. 대북 접근법에서 우리는 어쩌면 지나치게 오래 오른손을 과신해 온 오른손잡이인지 모르겠다.



고정애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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