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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완화로 오른 채권값 … 거품 꺼지면 금융 도미노 우려

중앙일보 2015.08.27 00:06 경제 2면 지면보기
주식시장은 빙산의 일각이다. 수면 아래엔 거대 채권시장이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채권시장이 대조정을 겪을 전망이다. 25일(현지시간) 뉴욕거래소에서 중개인이 주가 움직임을 살펴보고 있다. [뉴욕 AP=뉴시스]


미국 월가 사람들은 온갖 거품을 겪었다. 그런데도 낯선 게 하나 있다. 바로 ‘채권 거품’이다. 채권은 가격과 금리가 정해져 있다. 값이 뛰어봐야 액면가 이상 오르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원조 ‘닥터 둠’인 마크 파버 글룸붐&둠 발행인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거품은 기본적으로 채권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역사적으로 채권투자 붐은 흔했어도 가격 자체가 거품인 경우는 내가 아는 한 없었다”고 설명했다.

중앙은행이 돈 찍어 채권 사들여
현금 부자 애플마저 회사채 팔아
15년 새 시총 30조서 100조 달러로
미 금리 인상, 유가 하락, 중국 …
정크본드부터 거품 터질 조짐
채권값 떨어지면 주가·집값 하락



 실제 그랬다. 1820년대 남미 국가들이 줄줄이 독립할 때였다. 당시 글로벌 금융의 중심인 영국 런던엔 남미 채권투자 붐이 일었다. 그런데도 그때 남미 채권 값은 크게 뛰지 않았다.



 요즘 글로벌 채권시장에선 다르다.“버블이다”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글로벌 채권 가격이 과대 평가돼 있다”고 최근 말했다. ‘채권왕’ 빌 그로스 야뉴스캐피털 회장은 “현재 채권 가격은 거품”이라고 말했다. 금융시장에서 직접 투자를 하는 플레이어만 거품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채권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다”고 진단했다.



 가격이 얼마나 부풀어 올랐기에 그럴까. 블룸버그 통신은 “글로벌 채권의 시가총액은 100조 달러(약 23경8000조원) 정도”라고 25일 전했다. 국채·지방채·회사채 등 모든 채권 시세를 합한 금액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00년엔 30조 달러 안팎이었다. 15년 새에 3배 정도 불어났다. 채권 값 자체가 가파르게 올랐다(금리 하락). 여기에다 톰슨로이터는 “채권 발행 자체가 최근 급증했다”고 전했다. BIS에 따르면 정부·기업 등이 자국 채권시장이 아니라 국제 채권시장에서 발행한 채권 규모가 2000년 이이후 4배 정도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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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버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등 중앙은행의 연금술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금술은 양적 완화(QE)다. 그는 “중앙은행들이 돈을 찍어 금융회사들한테서 장기 국채 등을 사들이는 바람에 채권 값이 고공행진했다”고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초유의 일이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채권을 사들였다. 그러자 각국 정부뿐 아니라 기업 등이 경쟁적으로 채권을 찍어냈다. 1000억 달러 정도 현금을 쥐고 있는 미국 애플마저 회사채를 발행해 돈을 빌릴 정도였다.



 실러 교수는“과거 채권투자 붐처럼 대중이 광적으로 채권을 사들이지도 않았는데 채권 값이 고공행진하며 발행이 급증했다”며 “내가 아는 일반적인 자산버블과 다른 모습”이라고 촌평하기도 했다.



 버블의 이유가 무엇이든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은 이달 10일 “현재 글로벌 채권시장이 아주 불안한 상태(extraordinarily unstable position)”라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채권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얼마 남지 않았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재닛 옐런 Fed 의장은 올 9월이나 올 연말에 기준금리를 올릴 전망이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채권 값이 떨어진다. 또 기준금리 인상으로 ‘달러 분수대’의 물줄기(통화공급)가 약해진다. 채권 시장 버블이 터지는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 주가보다 훨씬 큰 ‘금융 도미노 게임’이 시작된다. 채권 가격 하락→파생상품 요동→주가·집값 하락이 예상된다. 게다가 가계 대출 금리도 오를 수밖에 없다. 한국 가계 부채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CNN머니는 “채권 가격 하락(금리 상승)은 주식보다 개인의 노후에 큰 타격을 준다”고 경고했다. 연기금 등이 주로 투자한 상품이 채권이어서다.



 시장은 미리 움직이곤 한다. 옐런이 기준금리를 올리기도 전에 일부 채권시장에서는 가격 하락이 나타날 수 있다. 바로 정크본드(비우량 채권 또는 투기 등급 채권)시장에서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주가와 국제 유가가 떨어지면서 정크본드 시장의 자금이 말라 정크본드 지수가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크본드는 글로벌 채권시장의 변두리다. 거품 붕괴가 시작되는 곳이다.



 월가 전문가들은 채권시장을 ‘빙산의 몸통(Body of Iceberg)’으로 비유하곤 한다. ‘빙산의 일각’인 주식시장과 대비해서다. 실제 100조 달러 채권시장 위에 550조 달러 정도 채권관련 파생상품 시장이 얹혀져 있는 모양새다. 일반 시민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수면 아래에서 약 650조 달러(77경3500조원)가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파버는 “채권 가격이 움직이면 글로벌 자산시장 전체가 대조정(Great Correction)을 겪는다”고 말했다. 채권시장 대조정도 차이나 리스크와 밀접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경기가 둔화하면서 유가가 가파르게 떨어지는 바람에 미국 셰일 가스와 원유 회사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고 최근 전했다. 셰일 에너지 기업들이 바로 최근 정크본드를 많이 발행했다. 중국 경기 둔화가 미국에서 자금 경색을 일으킬 수 있고,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채권 가격이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하는 순간 글로벌 자산시장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다”며 “개인의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삶에 대한 설계까지 바꿔야 할 수 있다”고 했다. 한 개인 인생을 대조정해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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