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 알토들의 존재감

중앙일보 2015.08.25 00:07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건용
작곡가·서울시오페라단 단장
합창에서 알토 파트의 존재감은 약하다. 다른 파트들에 비하면 확실히 그렇다. 소프라노의 존재감은 분명하다. 우선 합창의 네 파트 중에서 제일 높은 성부를 부른다. 잘 들린다. 또 소프라노는 거의 항상 주선율을 맡는다. 예컨대 ‘섬집 아이’을 합창으로 한다면 “엄마가 섬그늘에” 하는 선율은 보통 소프라노가 부른다. 소프라노는 음악을 리드하는 역할을 맡으며 그 음악의 표정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베이스는 합창에서 화음의 기초이자 기둥이다. 소프라노가 선율로서 합창을 리드한다면 베이스는 화성으로 음악의 틀을 만들어 준다. 다른 파트와는 움직이는 원리가 다소 다르다. 그래서인지 저음이지만 잘 들린다. 소프라노와 더불어 합창의 전체 윤곽을 만든다. 그래서 이 두 성부를 외성(外聲)이라고 부른다.



 그 윤곽의 내부를 채우는 역할을 테너와 알토가 한다. 내성(內聲)들이다. 그래도 테너는 남성의 고음이어서 비교적 잘 들린다. 오히려 작고 곱게 노래하기가 힘들다. 고음이어서 자연 소리가 커지지만 독창에서와는 달리 마음껏 내지를 수 없기 때문이다. 고음을 곱고 작게 내려다 보면 종종 음이 떨어지기도 한다. 합창의 전체 음정이 떨어질 때는 대체로 테너들이 그 범인이다.



 이들에 비하면 알토는 이도 저도 아니다. 선율을 책임지는 것도 아니고 화성 진행의 기둥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여성의 저음이어서 소리가 약하다. 다른 파트들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마추어 합창단에서는 여성들이 (목소리가 허락하는 한) 소프라노 파트로 가고 싶어 한다. 소프라노에 속해 있어야 존재감이 더 느껴지기 때문이다.



 알토는 이도 저도 아니지만 동시에 그 모든 것에 필요한 존재이다. 알토는 우선 합창에 볼륨감을 준다. 스스로의 소리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전체의 합창 소리를 풍부하게 만든다. 알토는 협력자다. 소프라노와 협력하여 이중의 선율선을 만들기도 하고 테너와 협력하여 화성을 완성한다. 만일 색채감이 많은 화성을 사용하고 싶다면 내성, 특히 알토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런 경우 알토는 미묘한 화성의 변화를 도맡아 부른다.



 무엇보다 알토는 균형을 맞추는 조정자이다. 작곡을 배울 때 처음 시작하는 과목이 화성법인데 이 기술을 합창 스타일로 배운다. 이때 교과서는 좋은 알토 파트를 쓰는 요령에 대해 이렇게 가르친다. “너무 많이 움직이지 않도록 할 것. 특히 소프라노와 베이스가 활발할 때는 조용히 움직이는 것이 좋다.” “소프라노와 베이스 사이에서 적당한 위치를 찾을 것. 소프라노에 너무 많이 붙거나 베이스에 너무 가까이 가서 소리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하라.” 말하자면 균형자의 역할을 맡기면서 다른 파트들을 잘 살피라는 임무를 준 것이다. 제 갈 길을 마음대로 가는 외성들에 비해 좀 안돼 보이긴 하지만 그것이 알토에게 주어진 미션이다. 조정자이며 ‘끼인’ 파트이고 야당 속의 여당, 여당 속의 야당인 셈이다.



 알토의 선율은 심심할 때가 많다. 두세 소절 동안 같은 음을 반복할 때도 있고 한 악구 전체가 두 음 혹은 세 음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경우도 흔하다. ‘섬집 아이’를 합창곡으로 만들 때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의 소프라노 선율은 계명창으로 “솔도레 미레도/ 레 - / 미-도 레도라/ 솔 - ”인 데 비해 알토의 그것은 (좀 성의 없이 만들 경우) “솔솔솔 솔솔솔/ 솔 - / 솔-솔 라-파/ 미 - ”가 된다. 단조롭다. 단조로운 것이 그 본성이다. 그러니 작곡가가 ‘멋진’ 알토 파트를 쓰는 일이 쉽지 않다. 소프라노에게처럼 화려한 선율을 줄 수도 없고 베이스에게 하듯 화음의 기둥 역할을 맡겨서 될 일도 아니다.



 그러나 합창음악의 대가들은 안다. 어떻게 쓰면 이 파트의 역할이 멋지게 되는지, 그래서 부르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는지, 그 아름다움이 청중에게까지 전달돼 그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지. 훌륭한 합창곡으로서 알토의 빛나는 장면이 마련돼 있지 않은 곡은 없다. 어쩌면 그것이 최고급의 합창음악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가늠자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 매력을 아는 이들은 (목소리가 허락하는 한) 알토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이건용 작곡가·서울시오페라단 단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