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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첫 강간 혐의 '무죄'

중앙일보 2015.08.22 04:09








여성으로는 처음 강간 혐의로 기소된 전모(45ㆍ여)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부장 이동근)는 22일 불륜 관계인 유부남 A(51)씨에게 수면유도제를 먹인 뒤 손발을 묶고 성관계를 시도한 혐의(강간미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씨에 대해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고 피고인의 범죄를 입증하기에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잠에서 깨어난 A씨를 둔기로 내리친 혐의(흉기 등 상해)에 대해서도 무죄가 인정됐다. 앞서 남성 5명, 여성 4명으로 구성된 배심원 9명은 전원 만장일치로 전씨에 대해 무죄라고 평결했다. 재판부는 “배심원단의 의견이 무죄로 전원 일치된 점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번 재판의 최대 쟁점은 강간의 고의성 여부였다. 둔기로 A씨의 머리를 가격한 것이 정당방위에 해당하는지도 쟁점이었다.



재판부와 배심원단은 “강간의 고의가 없었다는 전씨의 진술과 결과적으로 강간행위가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들어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변호인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헤어지자’는 A씨를 전씨가 집으로 불러들인 뒤 미리 준비한 수면유도제 졸피뎀을 탄 홍삼액을 먹이고 노끈으로 결박까지 했다는 A씨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는 전씨와 불륜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면서도 먼저 연락해 전씨 집을 찾아갔다”며 “이전에도 전씨가 준 포도주를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면서도 사건 당일 전씨가 ‘뼈에 잘 붙는 약’이라며 건넨 홍삼액을 아무런 의심없이 마셨다”고 했다. 이어 “졸피뎀 때문에 사실상 의식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는 게 상식적인데 새벽 3시쯤 깨어나 전씨가 자신의 몸 위에 있는 걸 본 뒤 성관계를 피하고, 다시 3시간이 지난 뒤 전씨가 둔기로 내리친 상황을 상세히 기억하는 A씨의 말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수면유도제 복용과 노끈 결박이 키 151㎝, 44㎏의 왜소한 체구의 전씨가 건장한 체격의 A씨를 성폭행하기 위해 한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와 배심원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전씨로부터 둔기로 맞았다는 진술도 미심쩍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전씨가 둔기로 자신의 머리를 때려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꼈다고 진술했지만 전씨의 얼굴에서도 피가 나자 대일밴드를 붙여주기도 했다”고 했다. 또 “A씨가 병원에서 특정 둔기로 맞았다고 말하지 않았고, 둔기에선 A씨의 혈흔도 나오지 않았다”며 “A씨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된다”고 제시했다.



대신 ▶평소 A씨의 가학적인 성관계를 두려워한 전씨가 ▶이를 피하기 위해 수면유도제를 함께 마셨고 ▶그럼에도 A씨의 요구가 계속되자 그의 동의를 얻어 손과 발을 묶은 뒤 잠이 든 사이 ▶전씨가 A씨 부인과 전화통화했다는 말에 격분해 전씨 목을 조르자 정당방위 차원에서 둔기로 내리친 것이라는 변호인 측 주장이 더 신빙성 있다고 판단했다.



전씨 사건은 2013년 6월 강간죄의 피해자를 ‘부녀(婦女)’에서 ‘사람’으로 확대하는 개정 형법이 시행된 뒤 여성에게 강간죄를 처음 적용한 사례여서 판결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재판부는 수면유도제 복용과 노끈 결박이 A씨와 강제로 성관계를 갖기 위해 A씨 의사에 반해 이뤄졌다는 검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형법상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강제로 성관계를 갖는 것이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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