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aturday] 첫 방송은 피하라 … 히트 상품은 늦게 살수록 유리

중앙일보 2015.08.22 00:53 종합 17면 지면보기
“매진 임박! 고객님께 드리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세상 속으로] 출범 20년 TV홈쇼핑
유통 혁명, 안 파는 게 없는 홈쇼핑
자동차·아파트 분양 상품까지 등장
“매진 임박! 들으면 주문” 중독자도

 직장인 양지은(41·가명)씨의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어느새 TV 앞으로 달려간 그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자동주문 전화번호를 누른다. 양씨는 “처음엔 재미로 TV홈쇼핑을 보다가 하나둘 주문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구입 물건이 수십 개가 됐다”며 “배송이 빠르고 반품이나 교환을 잘 해줘 홈쇼핑을 자주 이용한다”고 했다. 워킹맘 김지선(35)씨도 홈쇼핑 매니어다. 그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 늘 시간에 쫓긴다”며 “집에 앉아 주문하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필요한 상품을 배달해줘 편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에 제품이 쌓이면 이젠 멈춰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지상파 채널 사이에 끼어 있는 홈쇼핑 채널을 외면하기 힘들다”고 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홈쇼핑은 유통산업의 ‘혁명’으로 불린다. 백화점이나 마트 중심의 소비 패턴을 집에서 리모컨 하나로 가능케 해서다. 올해는 국내 TV홈쇼핑이 첫 방송을 한 지 20년째 되는 해다.



 1995년 8월 1일. 홈쇼핑텔레비전(HSTV·현 CJ오쇼핑)의 첫 방송이 시작됐다. 판매한 제품은 7만8000원짜리 뻐꾸기시계. 단 7개만 팔렸다. 그마저도 주문자 중 4명은 HSTV 직원이었다. 같은 시간 하이쇼핑(현 GS숍)은 TV와 비디오 등 여러 가전제품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만능 리모컨’을 팔았다. 주문량이 10개를 넘지 못했고 구매자도 사내 직원이 대부분이었다.



 이젠 홈쇼핑에서 안 파는 게 없다. 홈쇼핑 업체 관계자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거의 모든 구색을 갖췄다”고 했다. 최근엔 자동차 리스나 아파트 분양 같은 부동산 상품까지 등장했다. 외국에서 유행하는 제품도 며칠만 지나면 홈쇼핑에 등장한다.



 홈쇼핑에선 제품과 소비자를 잇는 연결 고리가 있다. 홈쇼핑의 꽃으로 불리는 쇼호스트(쇼핑호스트)다. 그들은 시청자와의 공감대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놓고 제품을 선전하기보다는 친한 사람이 추천한다는 느낌을 주려고 한다. T커머스(데이터홈쇼핑)의 한 쇼호스트는 “호스트의 표정을 살피면 어떤 제품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쇼호스트가 ‘제품이 진심으로 좋다’고 느끼면 티가 난다”며 “그랬을 때 시청자가 관심 있게 봐준다”고 했다. 그는 또 “안 좋은 제품을 소개해야 할 때가 제일 난감하다”며 “협력사 관계자에게 ‘나를 먼저 설득하라’고 한다. 이해가 되면 제품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경력 15년차의 베테랑 쇼호스트인 하은지(CJ오쇼핑)씨는 홈쇼핑의 산증인이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홈쇼핑 방송의 특성상 그는 숱한 위기를 겪었다. 하씨는 “생방송 중 머리 위에 있는 조명이 터져 화재가 난 적도 있다”며 “순간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방송을 이어갔다”고 했다. 그는 또 “갈치나 고등어와 같은 식품을 방송할 땐 파리가 최대 적”이라며 “제품을 클로즈업했는데 파리가 잡혀 난감한 적도 있었고 굴비를 먹다 가시가 목에 걸려 울면서 방송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그는 후배 호스트를 양성하고 있다. 하씨는 “설명에 급급하기보다는 영혼을 담아 전달해야 한다”며 “홈쇼핑은 심리전이다. 하지만 ‘매진 임박’이나 ‘마지막 기회’와 같은 코멘트조차도 진심으로 전해야만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TV홈쇼핑은 짧은 역사에도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편리함을 원하는 현대인의 요구와 기술 발전이 맞물린 결과다. 유통업계는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성향과 맞벌이 부부, 1인 가구 등 기존 유통업체 영업 시간에 쇼핑하기 어려운 사람의 증가를 원인으로 꼽는다. 이 때문에 TV홈쇼핑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분류됐다.



 성년을 맞은 홈쇼핑 업계는 요즘 활로를 찾고 있다. 성장 둔화 때문이다. 2009년 20%였던 성장률은 지난해 11%로 떨어졌다. 올해는 한 자릿수 성장률에 그칠 전망이다. 해외 직접구매(직구) 확대, 온라인 쇼핑몰과의 경쟁 심화 등이 주요 원인이다. 모바일 채널과의 경쟁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1조1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쿠팡은 로켓 배송을 강점으로 생필품 판매를 강화하고 있고 티켓몬스터도 생필품의 온라인 최저가에 도전하고 있다.



 특히 T커머스의 도전이 거세다. T커머스는 TV 방송을 통해 상품 설명을 보고 리모컨으로 상품을 주문할 수 있는 양방향 쇼핑 서비스다. 신세계 등 10개 사업자가 경쟁에 뛰어들었다. T커머스의 지난해 매출은 800억원에 불과했지만 내년엔 7000억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무려 17개에 달하는 쇼핑 채널이 시청자들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TV홈쇼핑과 데이터홈쇼핑 차이를 분명히 하면서 두 산업 모두 발전시킬 수 있는 정책을 찾고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유료 방송별 채널 수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홈쇼핑 업체들은 신성장동력을 찾아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주요 업체들은 중국과 대만, 베트남 등 아시아권을 넘어 미국과 터키 시장까지 공략하고 있다. 홈쇼핑 업체 관계자는 “해외시장 진출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했다.



 ◆홈쇼핑 100% 활용 가이드=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신상품 홍수 속에서 소비자가 홈쇼핑에서 뭘 사는 게 가장 유리할까. 홈쇼핑 MD들은 화장품과 같은 이·미용품을 꼽았다. 가장 큰 장점은 가격경쟁력이다. 또 추가 구성이나 사은품이 다양하다. A홈쇼핑 업체의 MD는 “화장품의 경우 바르면서 효과가 나타나는 모습을 시청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어 홈쇼핑 마케팅에 가장 잘 맞는 상품”이라며 “많이 팔리는 만큼 홈쇼핑이 싸고 덤도 후하다”고 했다.



 홈쇼핑 업체들이 공을 들이는 의류 제품도 경쟁력이 있다. 고급 브랜드 제품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중에게 더 가까이 가려는 디자이너들의 전략과 고급 제품을 유치하려는 홈쇼핑 업체의 수요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가 홈쇼핑 제품 구매의 최적기일까.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첫 방송은 무조건 피하라”고 조언했다. 잘 팔리는 제품이면 계속 방송을 하기 때문에 늦게 살수록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가격이 안 좋고 소비자에게 외면당하는 제품들은 첫 방송 후 대부분 판매가 중단된다. 이 관계자는 “계속 방송에 나오는 제품은 시장에서 검증받았다는 증거”라며 “‘론칭’ ‘첫 방송’이라고 하면 일단 지켜보는 게 정답”이라고 했다.



 홈쇼핑 업체들은 각각 대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고정 진행자가 있는 대표 프로그램’과 ‘주말 프로모션’을 활용하라고 했다. 타이틀이 정해져 있는 주력 프로그램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하나라도 더 주고 조금이라도 더 싸게 팔기 때문이다. 이런 프로그램은 주로 주말에 몰려 있으며 상품권이나 사은품 행사도 이때 집중된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S BOX] 유난희씨 등 ‘3대 완판녀’ 유명 … 최근엔 ‘완판남’도 등장



왼족부터 유난희, 정윤정, 동지현.


1995년 대한민국엔 새로운 직업이 생겼다. 쇼호스트. 초창기 단순하게 제품을 설명하는 수준이었지만 요즘은 직접 맛보고 써보고 피부에 바르면서 시청자의 구매욕구를 북돋는다.



 보통 ARS 자동주문회선에 동시전화가 1000통을 넘으면 대박으로 친다. 쇼호스트가 대박보다 더 듣고 싶은 말은 ‘완판’이다. 완전판매의 줄임말이며, 준비한 물량이 매진됐다는 뜻이다. 홈쇼핑업계에선 ‘3대 완판녀’가 유명하다.



 CJ오쇼핑의 유난희(49)씨는 국내 쇼호스트 1호로 데뷔했다. 2001년 쇼호스트 첫 연봉 1억원과 2003년 첫 프리랜서 쇼호스트도 그가 끊었다. 원래 지상파 아나운서가 꿈이었지만 결혼해 자식까지 둔 그를 찾는 방송사가 없어 홈쇼핑으로 눈을 돌렸다.



 롯데홈쇼핑의 정윤정(39)씨는 옆집 언니처럼 편안하게 방송을 하는 게 특징이다. 지난해 임원급 대우를 약속 받고 GS숍에서 롯데홈쇼핑으로 옮겼다. 단순한 쇼호스트가 아니라 상품 기획과 제조·관리 등 마케팅 전반을 관장한다.



 GS숍의 동지현(43)씨는 대한항공 승무원 출신이다. 패션·속옷·화장품 등이 주력이며, 2013년 분당 최고 주문금액 1억원을 넘겼다. 친구와 수다를 떨면서 쇼핑하는 것처럼 진행한다. 입담도 세 라디오와 TV 프로그램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했다.



 최근 ‘완판녀 삼두체제’가 위협받고 있다. 이민웅(CJ오쇼핑)씨 등 남성 쇼호스트 ‘완판남’들과 최유라(롯데홈쇼핑), 왕영은(CJ오쇼핑) 등 연예인 쇼호스트들이 무섭게 떠오르고 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