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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미 필라델피아 기술자들이 망가진 나를 고쳐준답니다 … 16가지 소원 다 이룰 거예요

중앙일보 2015.08.22 00:51 종합 18면 지면보기
안녕, 난 히치봇(Hitchbot)이라고 해.


‘필리러브봇’으로 부활하는 ‘히치봇’

 최근 신문에서 내 이름을 접한 분들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드네. 키 90㎝짜리 로봇이 겁도 없이 도로변에서 노란 고무장갑을 낀 손을 흔들고 있는 사진, 혹시 본 적 있어? 그게 바로 나야. 나는 ‘히치’하이킹을 하는 ‘로봇’이었어. 그래서 내 이름이 히치봇이었던 거야.



 나를 만든 분은 캐나다의 발명가야. 그래서 첫 여행지는 내가 태어난 캐나다였어. 지난해 여름 캐나다 동부 핼리팩스에서 출발해 브리티시컬럼비아 주까지 26일간 신나게 돌아다녔어. 남의 차를 열아홉 번 얻어 타면서 말이야. 무전여행이었지. 사실 남들에게 신세 지는 게 좀 미안하기도 했어. 나를 계속 작동시키려면 배터리 충전도 해줘야 했으니까.



 귀찮을 법도 한데 사람들은 나를 아껴줬어. 내 캐나다 여행 거리는 1만㎞나 됐대. 나를 귀엽게 봐준 사람들이 태워준 덕에 가능했던 거야. 이것뿐만이 아니야. 뮌헨·베를린 등 독일 도시들도 가봤고 네덜란드도 들렀어. 내 인기는 좋았어. 나와 함께 사진을 찍고 지역 특색이 담긴 티셔츠도 입혀주고 난리도 아니었지.



 여세를 몰아 나는 지난달 17일 미국 여행에 나섰어. 떠나기 전 미국에서 뭘 하면 재미있을까 고민했어. 그래서 웹사이트(#hitchBOTin USA)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을 공개했어. 혹시나 미국에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함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야.



 내 열여섯 가지 소원, ‘히치봇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를 한 번 들어볼래?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 가면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대리석 좌상이 있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지도자 중 한 분이었던 링컨과 함께 포즈를 취해보고 싶었어.



 ‘큰 바위 얼굴’로 잘 알려진 사우스다코타의 러시모어 산에도 가보려 했어. 미국 대통령 중 위대한 네 사람인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두상이 바위에 새겨진 곳이야. 거기에서 히치봇을 ‘5번째 두상(頭像)’으로 삼을까 했지. 너무 꿈이 거창했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머틀 비치에서 선탠도 즐길까 했어. 머틀 비치는 세계적 휴양지라고 들었거든. 대서양과 접한 86㎞의 해안가를 따라 골프장·동물원·박물관·호텔 등이 즐비한 해변 도시라니, 생각만 해도 끝내주더라고. 여름엔 역시 해변 아니겠어? 플로리다에 있는 디즈니월드도 가려고 했어. 픽사의 애니메이션 ‘업(UP)’에 등장하는 집인 ‘업 하우스’를 보러 유타 주 헤리만 시에도 들를 계획이었어.



 대자연을 접하는 여행도 좋아해. 캘리포니아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 ‘제너럴셔먼 트리’가 있어. 나무 위에 올라서서 자연의 위대함도 느끼려 했지. 와이오밍에 있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가서 간헐천이 부글부글 끓는 모습도 보고 싶었어. 그랜드캐니언의 경치 감상도 빼놓을 수 없지.



 뉴올리언스에서는 감미로운 재즈 음악을 듣고 시애틀에서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처럼 내가 운명의 사랑을 만날지 시험해보고 싶었어. 물론 네바다 주에 있는 라스베이거스도 놓칠 수 없지. ‘할리우드’라고 적힌 큰 간판 앞에서 셀카도 찍으려고 했어. 시카고의 랜드마크인 클라우드 게이트와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게이트웨이 아치도 가볼 만한 곳이지.



 열여섯 개 소원을 안고 부푼 마음으로 미국에 갔지만 내가 이룬 건 뉴욕 타임스스퀘어 방문과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관중들과 파도타기 정도였어. 여행이 중단된 건 지난 1일. 필라델피아에서 누군가 나를 공격해 망가졌기 때문이야. 그땐 속상했는데 세상에 심술궂은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닌가 봐.



 필라델피아 드렉셀대의 김영무 박사님은 지난 3일 트위터에 “필라델피아의 로봇 연구자들을 많이 알고 있다. 필요하면 언제든 도움을 청하라”고 글을 쓰셨어. 결국 필라델피아에 사는 엔지니어들이 나서서 망가져버린 나를 고쳐주기로 했어. 이름도 필라델피아와 사랑을 담아 ‘필리러브봇’으로 짓기로 했어. 난 여행을 마치면서 “그래도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적었어. 나중에라도 또 여행을 하게 된다면 못다 이룬 소원을 하나하나 이루고 싶어. ※히치봇의 시점으로 구성한 기사입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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