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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유년 시절 추억 어린 한국 60~70년대 묘사 … 미국서도 주목받아

중앙일보 2015.08.22 00:49 종합 18면 지면보기
한국계 미국 작가 하인즈 인수 펭클. 미국 최고의 문예지 ‘뉴요커’에 한국에서의 유년 시절을 다룬 단편을 최근 발표했다. [사진 On Location Studios]


미국의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는 미국 내 최고의 종합문학잡지로 꼽힌다. 90년 역사(1925년 창간), 매주 100만 부 넘게 찍는 발행부수 때문만이 아니다. 201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캐나다 소설가 앨리스 먼로, ‘롤리타 신드롬(소녀에 대한 성적 집착)’을 불러일으킨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밀란 쿤데라와 JD 샐린저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뉴요커에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아무나 작품을 실을 수 있는 잡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역으로 뉴요커에 작품이 실리면 그만큼 인정받는다는 뜻도 된다.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것도 뉴요커에 작품이 실리면서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사람 속으로] ‘뉴요커’에 단편 실린 한국계 작가 펭클
100만 부 발행 미 최고 문예지 ‘뉴요커’
밀란 쿤데라·무라카미도 소설 발표
한국 작가는 이문열·이창래 소개
작품 실리자 출판사서 즉각 연락



 최근 이 잡지에 한국계 미국인 작가 하인즈 인수 펭클(54)이 단편을 발표했다. 한국 소설 번역자, 하버드대의 한국 문학 전문 문예지 ‘Azalea(진달래꽃)’의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하는 그는 1960년 인천광역시 부평에서 태어났다. 주한미군이었던 독일계 미국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다. 부평과 어머니 고향인 북한강변 삼봉리, 아버지의 부대 이동에 따라 미국·독일을 오가며 유년을 보냈다. 지난 3일자 잡지에 실린 단편 ‘Five Arrows(다섯 개의 화살)’는 한국에서 보낸 유년 시절이 소재다. 2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소년 인수가 피부 썩는 병에 걸려 혼자 동굴에 사는 큰아버지를 강을 건너 만나러 가는 얘기다. 자전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지금까지 뉴요커가 주목한 한국 작가는 이문열과 재미동포 이창래 정도다. 펭클이 번역한 이문열의 단편 ‘익명의 섬’이 2011년 뉴요커에 실렸다. 이창래는 99년 뉴요커가 선정한 21세기 미국 소설가 20인에 포함됐다.



 펭클은 뉴욕주립대에서 ‘creative writing(문예 창작)’을 가르친다. 그를 e메일과 전화로 만났다.



 - 뉴요커에 작품이 실린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



 “작가의 경력을 바꾸는(career-changing)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형 베스트셀러 소설 못지않은 노출 효과가 있다. 뉴요커 독자들은 지난 호 잡지들을 보관해 두고 다시 읽은 이가 많다고 한다. 병원 진료실에 흔히 비치되는 잡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실제 잡지를 읽는 독자 수는 발행부수의 2∼3배는 된다고 한다.”



 - 작품 발표 이후 그런 영향력을 실감하나.



 “온라인에는 지난 7월 27일에 작품이 실렸다. 즉각 출판사 편집자, 문학 에이전트, 번역자, 문학 연구자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9학년(한국의 고1) 때인 75년 영어를 가르쳤던 선생님, 대학원 시절 러시아 문학 교수님이 e메일을 보내왔다. ‘Five Arrows’는 지금 쓰고 있는 장편 『Skull Water(해골물)』의 일부분이다. 잡지 출간 직후 내 에이전트가 비중 있는 독립출판사인 그레이 울프와 장편 출판 계약을 맺었다.”



 - 뉴요커가 그렇게 영향력 있는 이유는.



 “작품 선정 기준이 워낙 엄격하다. 한 해 3만 편의 단편이 투고된다고 한다. 그중 50편 정도만 실린다. 잡지에 실리면 문학상을 받거나 문학 선집에 실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출판계 사람들이 모두 주목한다.”



 - 어떻게 해서 작품이 실렸다고 생각하나.



 “내 작품 속 유년의 모험 장면들이 옛날 미국의 여름 휴가철 풍경과 비슷한 점이 있다. 미국 독자들을 추억에 잠기게 하는 것 같다. 소설에 나오는 한국의 60∼70년대를 신기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과거 이문열 선생의 단편을 번역한 것도 도움이 된 것 같다. 까다로운 편집 과정을 견뎌낼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 96년 첫 장편 『Memories of My Ghost Brother』에 이어 이번에도 기억, 과거에 대해 썼다.



 “현대 미국 얘기는 이창래 같은 다른 한국계 작가들이 많이 쓴다. 나는 한국에서 보낸 유년에 대해 쓰는 게 훨씬 재미있다. 자기 성찰도 되고 심리학적 치유 효과도 있다. 과거를 돌아보며 불교식 명상도 하게 된다. 60∼70년대는 한국 현대사에서 무척 중요한 시기다. 소설을 통해 기억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 쓰고 있는 장편의 제목 ‘Skull Water’는 해골물을 마신 원효 대사의 일화와 관계 있나.



 “맞다. 부평에 살 때 ‘약사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 절의 스님으로부터 원효 대사 얘기를 들었다. 도교, 샤머니즘, 불교가 뒤섞여 있던 내 유년 시절 한국의 종교 상황에 대한 얘기가 장편에 나온다.”



 - 뉴욕에서 한국 문학의 위상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이후 적절하게 마케팅 하면 한국 문학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생각한다. 번역이 가장 큰 관건인데, 번역은 하나의 예술 장르라는 생각으로 오랜 시간 꾸준히 정성을 쏟아야 한다.”



 - 신경숙 표절 의혹이 뉴욕타임스에도 보도됐는데.



 “미국 출판계는 표절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여긴다. 다행스럽게도 미국은 재기의 기회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지리라고 생각한다.”



 - 계획은.



 “번역과 집필이다. 김만중의 『구운몽』, 오현 스님의 시조를 번역 중이다. 내년에 『Skull Water』 집필이 끝나면 어머니의 일생, 아버지의 베트남전 참전 경험을 장편으로 쓸 생각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S BOX] 시 같은 아름다운 문장 … 헤밍웨이 ‘하드보일드’ 문체 닮아



‘Five Arrows’의 핵심 에피소드는 병을 앓는 큰아버지가 용기 있는 조카 인수에게 들려준 귀신 이야기다. 아리따운 여자 귀신에게 양기를 빼앗긴 대가로 그만 병을 얻었다는 사연이다. 민속적인(ethnic) 내용의 소설에 관대한 미국 독자들에게 먹힐 만한 대목이다.



 그런 내용도 내용이지만 소설은 무엇보다 문장이 아름답다. 시 같다는 느낌을 곳곳에서 받게 된다. 헤밍웨이의 군더더기 없는 ‘하드보일드(hard-boiled)’ 문체를 연상시킨다.



 아니나 다를까. 펭클은 “10대 중반 처음 단편소설을 끄적거릴 때 헤밍웨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특히 그의 ‘빙산 이론(iceberg theory)’에 끌렸단다. 꼭 필요한 말만 써서, 가령 전체의 15%만 보여주고도 나머지 물속에 잠긴 85%의 풍성함은 독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즐기도록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펭클은 “과거와 달리 요즘 독자들은 TV나 영화에서 실감 나는 장면들은 얼마든지 접하기 때문에 소설 문장으로 모든 걸 다 묘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언어를 경제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좋아하고 영향받은 한국 작가로 김승옥과 이창동·황순원을 꼽았다. 특히 김승옥의 단편 ‘서울, 1964년 겨울’이 인상깊었다고 했다. 이문열의 장편 『황제를 위하여』는 20세기 한국 소설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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