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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자동차 경적·추월 공포감” “자전거 떼빙·역주행 아찔” 두 바퀴와 네 바퀴의 전쟁

중앙일보 2015.08.22 00:47 종합 19면 지면보기



[뉴스 속으로] 심해지는 도로 위 갈등
자전거족의 말
갓길로 다니지 왜 차도로 다니냐고?
유리·돌조각투성이라 더 위험해
자동차족의 말
몰려서 달리고 무작정 튀어나오고
도로 위 ‘무법자’ 때문에 사고 날 뻔





#1 ‘빵!’ 경적 소리가 박정훈(35)씨의 귀를 찔렀다. 자전거를 타고 있던 박씨는 잠시 휘청대더니 순식간에 차로 옆으로 고꾸라졌다. 안전 장비 덕분에 많이 다치진 않았지만 박씨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늘 자전거로 출퇴근하던 그는 그날 이후 한동안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2 지방 출장차 국도를 운전 중이던 윤상진(30)씨. 한참을 달리다 속도를 급격히 줄일 수밖에 없었다. 수십 대의 자전거가 윤씨의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자전거족들은 차로 전체를 장악한 채 유유히 나아갔다. 창문을 열고 항의를 해봤지만 그들은 들은 체 만 체였다. 윤씨는 짜증이 밀려왔다.



 매일 전쟁이다. 전장은 도로 위. 자동차와 자전거 얘기다. 이 전쟁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기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교통수단 중 ‘신흥강자’로 떠오른 자전거의 기세가 등등하다. 국내 자전거 인구 1200만 명 시대. 한국 국민의 4명당 1명이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 관련 시장은 연 5000억~6000억원 규모다. 종류는 단순 출근용부터 전문가용까지 각양각색에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덩치가 커진 자전거가 거리에 완전히 ‘연착륙’하진 못한 형국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유튜브 등을 조금만 검색해봐도 자동차와 자전거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사고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상에는 여러 대의 자전거가 도로를 점유한 채 달리는 일명 ‘떼빙(떼+드라이빙)’, 자동차와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역주행’ 자전거, 자전거를 아슬아슬하게 추월하는 자동차 등 다양한 면면이 담겨 있다.



자동차와 자전거의 안전거리를 1.5m로 권장하고 있는 브라질의 캠페인 포스터. 안전거리를 ‘가깝게 하는 간격(A distacia que aproxima)’이라고 표현했다. 위 사진은 자전거 운전자 이동훈씨.
 얼마 전 가장 화제가 된 건 ‘속초 버스 위협’ 영상이었다. 한 고속버스가 지방도로 우측 차로를 달리던 자전거를 추월하는데 둘 사이 간격이 너무 가까워 자전거 운전자는 버스가 추월하는 순간 한쪽으로 휘청인다. 넘어지기라도 했다면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지난달 초부터 영상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해당 고속버스 회사는 기사에게 ‘승무 정지’ 징계를 내렸다. 그러자 버스 회사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기사에게 너무 심한 징계를 내린 것 아니냐’ ‘왜 자전거 운전자는 갓길을 놔두고 멀쩡한 차로를 이용하느냐’ 등 비난 글이 폭주했다. 자동차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들이었다. 하지만 ‘차로에서 자동차가 자전거와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달리는 건 당연한 상식’이라는 자전거 커뮤니티 회원들의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법적으로 자전거가 차로를 달리는 건 전혀 문제될 일이 아니다. 도로교통법은 ‘차(車)’에 대해 ▶자동차 ▶건설기계 ▶원동기장치자전거 ▶자전거 ▶사람 또는 가축의 힘이나 그 밖의 동력(動力)으로 도로에서 운전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자전거도 엄연한 ‘차’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도로 다니는 게 불법이다.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는 곳에서는 자전거 도로로 통행하고 설치돼 있지 않을 경우 도로 우측 가장자리에 붙어서 통행할 수 있다. 가장자리의 범위는 ‘오른쪽 끝 차로 폭의 절반을 기준으로 오른쪽 공간’이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자전거가 아예 우측 가장자리로 붙어버리면 자동차가 더 위험하게 추월을 시도할 수 있어 자전거의 자리를 오른쪽 끝 차로 절반으로 지정했다”며 “추월 시 자동차들이 차로를 변경하도록 유도해 안전거리를 지키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6년간 자전거를 타온 이동훈(33)씨는 “자전거는 인도에서는 사람을 위협하고 차로에선 자동차의 위협을 받는 ‘끼인 신세’”라고 털어놨다. 자전거 도로가 많이 확충되긴 했지만 시내를 달리다 보면 블록마다 끊어져 있거나 곳곳이 정차된 차들로 막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전거 주행 10년차인 이종헌(57)씨는 “자동차 운전자들은 ‘왜 갓길을 이용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갓길은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아 자전거 바퀴에 치명적인 유리·돌 조각 등이 제대로 치워져 있지 않다. 그래서 갓길이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자동차 운전자도 할 말은 있다. 회사원 최한별(30)씨는 얼마 전 운전을 하다 급하게 차선을 변경하려는 자전거 때문에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자전거가 버스 정류장에 정차하는 버스를 피해 왼쪽 차선으로 끼어든 것이었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느라 도리어 최씨가 뒤차와 작은 접촉사고가 났다. 그는 “인지할 틈도 주지 않고 자전거가 튀어나와 너무 놀랐다”며 “차로를 달리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도로를 점령한 채 ‘떼빙’을 하는 등 ‘막무가내’식 자전거를 보면 도로 위 ‘무법자’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운전자 박모(28)씨도 “역주행하는 자전거를 차로에서 마주칠 때마다 식겁한다”며 “이제 길에서 자전거를 만나면 거부감부터 든다”고 했다. ‘역주행’ ‘인도 및 횡단보도 주행’ ‘병렬식 떼빙’ 등 모두 도로교통법 위반 행위들이다.





 실제로 자전거 교통사고는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2010년 1만1259건이던 자전거 사고 건수는 지난해 1만6664건을 기록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10.3%의 증가세다. 이종헌씨는 “10년째 자전거를 타오며 지켜본 결과 자동차 운전자나 초보 자전거족 모두 자전거가 ‘차’라는 인식 자체가 부족한 것 같다”며 “국가 차원에서 자전거 교통법규 등에 관한 대국민 홍보 캠페인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인식 부족’이라는 거다. 아직 자전거 관련 도로법이 촘촘하지 않은 탓도 크다. 교통사고가 전문인 한문철 스스로닷컴 대표 변호사는 “자전거를 ‘차’라고 정의하면서도 이에 해당하는 자전거가 정확히 어떤 크기와 구조를 갖춰야 하는지 설명조차 없는 것이 현재 한국의 자전거 법”이라고 꼬집었다. 자동차와 자전거 간의 안전거리에 대해서도 법은 ‘자동차는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자전거 옆을 지날 때 자전거와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그 거리가 얼마나 돼야 하는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그나마 법이 마련돼 있어도 처벌 규정은 거의 없다. 유동배 경찰청 교통안전계장은 “자전거 관련 법규 대다수가 ‘조심히 타시라’는 계도 수준이라 보통 위반 행위를 잡아도 주의를 주는 정도에서 그친다”고 말했다. 국회에 ▶자전거 음주운전 단속 ▶안전 속도 규정 ▶인명보호장구 착용 ▶야간 전조등·미등 설치 ▶운행 중 휴대전화 사용 금지 등을 골자로 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처리되지 못하고 계류 중인 상태다.



 무엇보다 전제가 돼야 하는 건 자전거 운전자가 도로 위 ‘약자’라는 공감대 형성이다. 자전거 운전자 유종환(40)씨는 “큰 ‘갑옷’을 입고 있는 자동차와 달리 자전거는 자동차의 클랙슨 소리, 몸짓 하나에 흠칫 놀라곤 한다”고 털어놨다. 유동배 계장도 “도로교통법에는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규칙이 있다”며 “자동차는 차로에서 만나는 자전거가 그저 ‘성가신 존재’일지 모르지만 자전거에 자동차는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결국 강자는 약자를 배려하고 약자는 배려에 합당한 책임을 잊어선 안 된다는 것. 이미 차로에 자동차와 자전거가 함께 다니게 된 이상 이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일 터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S BOX] 네덜란드, 자전거 고속도로 200㎞ … 독일, 자전거 면허 따야 탈 수 있어



‘자전거의 천국’이라 불리는 자전거 선진국들은 대부분 ‘약자 보호 원칙’을 충실히 따른다. 자동차는 자전거가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양보한다. 자전거도 수신호를 이용해 차량이 원활하게 추월할 수 있도록 돕는다.



 덴마크·네덜란드·영국 등에는 자전거 고속도로가 있다. 자전거 고속도로는 목적지까지 신호를 거치지 않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고속도로처럼 분리형 전용도로 개념이다. 네덜란드는 현재까지 200㎞ 이상의 자전거 고속도로를 구축했다. 독일은 아우토반의 명성을 잇는 총 길이 101㎞의 자전거 고속도로를 2020년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자전거 선진국들은 관련 법규도 잘 정비돼 있다. 일본은 음주운전과 신호위반 등 자전거 주행 규칙을 3년간 두 차례 위반하면 의무적으로 안전강습을 받아야 한다. 3개월 안에 강습을 받지 않으면 약 45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독일도 자전거 음주운전 시 1500유로(약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독일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자전거 면허를 딴다. 1학년 때부터 자전거 교육을 받고 이론과 실기시험에 합격해야 자전거를 탈 수 있다. 도로에 나갔을 때 ▶자전거로 일정 거리 이상 인도를 주행한다거나 ▶야간에 전·후방등을 켜지 않고 ▶수신호를 하지 않으며 ▶자전거 신호등을 무시하는 행동 등을 할 경우 엄격히 벌금을 물린다.



 ‘자동차와 자전거 간 안전거리’ 문제에 대해서도 명확히 규정한 곳이 있다. 캘리포니아·워싱턴 등 미국의 많은 주는 자동차 운전자가 자전거를 추월할 때 안전을 위해 최소 0.9m의 거리를 두도록 법령으로 정하고 있다. 워싱턴주는 해당 내용이 담긴 한국어판 운전자 가이드북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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