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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살짝 만진 지폐, 잠깐 찬 시계 … 지문 없애도 범인 DNA 검출

중앙일보 2015.08.22 00:45 종합 20면 지면보기
20일 대검 DNA 감정실에서 이한철 연구원이 분석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증거물에 시약을 묻히고 특수장비인 ‘크라임 라이트’를 비추면 혈흔이 나타난다. [신인섭 기자]


5만원권 지폐, 운동화, 알루미늄 자, 시계….

[뉴스 속으로] ‘미세 증거물’ 찾는 대검 포렌식센터
땀 속 상피세포, 침 속 구강세포
스쳐간 곳 어디나 남을 수 있어
국과수 업무 보완, 때론 동시에 조사
살인·강도 등 범인 검거 결정적 역할
‘가짜 백수오’ 이엽우피소 함량 분석
“3%로 고의성 없다” 무혐의 처분도



 범죄의 현장에는 평범한 사물들만 보인다. 사물은 말이 없다.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도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다. 목격자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남아 있다. 범인의 손이 스쳐간 모든 곳에서다. 바로 범인의 유전자 정보(DNA)다.



 올해 2월 경북 안동 지역 축협 조합장 선거에서 A후보의 선거운동원 권모(73)씨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한 조합원에게 투표를 부탁하며 현금 20만원을 건넨 혐의다. 대구지검 안동지청에 출두한 권씨는 “돈을 건넨 적이 없다”고 버텼다. 검찰은 조합원이 권씨로부터 받았다는 5만원권 4장을 수거해 대검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에 분석을 의뢰했다.



DNA 분석 결과 지폐 4장 중 3장의 앞면 숫자 부분 등 9곳에서 권씨의 DNA가 검출됐다. 정욱희 포렌식센터 연구원은 “증거물을 헝겊으로 닦아 지문을 지워도 미세한 DNA는 남는다”고 설명했다. 대검 포렌식센터 DNA감정실의 생물학·생명과학·의과학 석·박사급 연구원 12명의 주 업무는 이처럼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미세 증거물’을 찾는 것이다.



 생물의 세포 6개를 나타내는 50pg(피코그램·5X10-11g)까지 분석이 가능하다. 오혜현 책임연구원은 “땀에 묻어나는 상피세포, 침에 포함된 구강세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신체 조직이 벽면·휴대전화 등 어디에나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 분석은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 올해 상반기 수원지검 전담수사팀이 맡았던 ‘가짜 백수오’ 의혹 사건에서는 백수오와 이엽우피소의 유전자형을 비교했다. 대검 포렌식센터는 14개 기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한국법생물연구회의 조언으로 최신 분석 기법인 ‘차세대 염기서열분석법(NGS)’을 도입했다. 백수오와 이엽우피소의 엽록소 내 DNA 염기서열 차이를 구별하고 각각의 함유 비율까지 알 수 있는 방법이다. N사의 백수오 표본 6㎏가량을 수거, 대형 분쇄기로 원재료를 빻고 건조시켜 분석하기를 11차례 반복했다. 꼬박 한 달이 걸려 평균치를 낸 결과 N사 제품에 함유된 이엽우피소 양이 3%가량임을 밝혀냈다. 검찰은 이를 바탕으로 “전체 백수오 양에 비해 극히 적은 양이어서 N사가 고의로 이엽우피소를 섞은 것이 아니다”고 결론 내렸다. N사 대표는 건강기능식품법 위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DNA 감정은 살인·강도·마약 등 강력사건 수사에 쓰이는 전통적인 방식이다. 지난 5월 의정부지검이 마약사범 이모(57)씨와 공범 2명을 마약류 관리법 위반으로 기소할 때도 활용됐다. 이씨는 “투약한 일이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이씨 집에서 발견된 일회용 주사기 42개 중 19개의 겉 표면에서 이씨의 DNA가 나왔다. 13개에서는 함께 마약을 투약한 2명의 DNA가 검출됐다.



 2012년 인천에서 40대 여성이 내연남의 외손녀(사건 당시 5세)를 학대 치사한 사건에선 알루미늄 자가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가해자 김모(46)씨는 “대소변을 못 가린다”며 아이를 자로 때린 후 한겨울에 속옷 차림으로 베란다에서 벌을 세워 숨지게 했다. 수사 기관에선 “아이가 혼자 넘어져 죽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알루미늄 자에서 김씨와 아이의 DNA 및 혈흔이 발견돼 학대 사실이 입증됐다. 2011년 서울 강남의 주택가에 물건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운동화 한 짝을 떨어뜨리고 간 ‘신데렐라 도둑’ 사건에서는 남기고 간 운동화에서 범인의 DNA가 검출됐다. 대검 신원정보 데이터베이스에 DNA가 등록돼 있었다.



2010년 이후로는 특수·공안 분야로도 DNA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뇌물로 건넨 지폐와 물건 등에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명품시계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2011년 SLS 이국철 회장의 고위층 로비 사건 때 브로커 역할을 한 대영로직스 대표 문환철씨는 이 회장으로부터 7억8000만원과 시가 1000만원짜리 한정판 오메가 시계를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구속 기소됐다.



 오메가 시계의 가죽 부분 안쪽에서 문씨의 DNA가 다량 검출돼 수사에 활용됐다고 한다. 문씨는 2012년 징역 3년형이 확정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는 최근 박기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분양대행업체 대표 김모(44·구속 기소)씨에게서 받은 명품시계에 대해 DNA 분석을 의뢰했다. 실제 시계에서 남성의 DNA가 검출됐다. 하지만 박 의원이 시계를 받았다고 인정해 DNA 대조까지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검 포렌식센터는 경찰 수사를 보완하거나 검찰의 인지수사 영역에 주로 투입된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1차 조사를 한다. 포렌식센터 연구원들은 혈흔이나 DNA가 남아 있는 사건 현장에도 자주 파견된다. 대검 포렌식팀은 지난해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 범인 박춘풍의 원룸 화장실에서 루미놀 반응 시험으로 피해자의 인혈(人血)을 찾아냈다. 경찰 단계에서 찾지 못한 혈흔이었다. 이한철 연구원은 “수원 여대생 살인범 오원춘 사건 때는 화장실에서 루미놀 반응을 보기 위해 불을 끄자마자 푸른 형광빛(혈흔을 의미)이 가득해 소름이 끼쳤다”고 말했다.



글=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 BOX] DNA 정보로 5년간 장기 미제 4474건 해결 … 인권 침해 논란도



유전자 분석을 활용한 과학 수사는 2010년 7월 ‘DNA 신원 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이 시행되면서 활기를 띠게 됐다. 2010년부터 검경이 보유하고 있는 신원 확인 DNA는 14만222건. 범죄 현장에서 확보한 미확인 DNA 8만 건을 합하면 22만여 건이 축적됐다.



 하지만 국가가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관리한다는 점에서 인권 침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법 시행 이후로 10건의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청구인들은 “강제로 개인의 DNA를 채취할 수 있도록 한 DNA법은 신체의 자유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범죄 수사 및 예방이란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DNA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했다. 수사기관들은 DNA 신원정보를 축적한 이후 범인 검거가 용이해졌고 수사의 정확도도 높아졌다는 입장이다. 지난 5년간 검경은 DNA 신원 정보를 활용해 장기 미제 사건 4474건을 해결했다. 이진수 대검 과학수사2과장은 “그간의 활용 사례를 보면 오히려 무고한 피의자를 수사 선상에서 배제하는 등 인권 보호 기능이 더 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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