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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범죄자, 핏줄은 못 속인다고?

중앙일보 2015.08.22 00:38 종합 22면 지면보기
톰 크루즈가 주연한 SF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에는 범죄 발생 전에 범죄자를 예측해 단죄하는 미래 사회가 그려진다. 기계장치 안에 감금된 쌍둥이들의 예지력을 통해서다. 신경범죄학자 에이드리언 레인은 범죄자의 뇌 검사 같은 방법이 범죄 예방에 쓰일 지도 모른다고 내다본다. [중앙포토]


폭력의 해부

“범죄는 유전에 뿌리 두고 있다”
누가 범죄 저지를지 예측 가능 주장
암처럼 공공보건 차원서 접근해야
인간의 자유의지 부정 논란 불러

에이드리언 레인 지음

이윤호 옮김, 흐름출판

639쪽, 2만5000원




뇌과학의 시대다. 어쩌면 ‘사람이 곧 뇌다’라고 말해도 큰 반발을 사지 않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조차 ‘죄는 미워하되 뇌는 미워하지 말라’로 바뀌게 될지 모른다.



 범죄자들과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들은 무엇이 다를까. 『폭력의 해부』의 저자인 에이드리언 레인 펜실베이니아대 석좌교수에 따르면 이 두 그룹은 뇌가 생물학적으로 다르다. 많은 경우 그 차이는 유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범죄학의 아버지’인 이탈리아의 체사레 롬브로소(1835~1909)는 범죄자는 얼굴 생김새, 우리말로 하면 ‘관상’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롬브로소의 주장은 궁극적으로 우생학·인종주의, 나아가 파시즘과 연계됐기 때문에 거센 비판 속에 학문적으로 사장됐다. 에이드리언은 롬브로소의 전통을 ‘용감하게’ 복원한다. 그는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기도 전에 추려내 체포·격리하는 프로그램이 미래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프로그램에 ‘롬브로소’라는 이름을 붙였다.



 롬브로소와 에이드리언의 공통점은 둘 다 ‘누가 범죄를 저지를지 예측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에이드리언에 따르면 유전학·신경학·생리학에서 논의되는 변수들을 살펴보면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큰지 알 수 있다. 그의 결론을 압축해서 말한다면 “어떤 사람은 범죄자로 태어난다!”가 된다.



왼쪽은 살인범 돈타 페이지의 뇌 단층 촬영 사진. 오른쪽은 일반인. [사진 흐름출판]
 하지만 생물학은 운명은 아니다. 환경도 중요하다. 그렇다해도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은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게 에이드리언의 지적이다. 범죄에 대한 사회과학적인 설명이 현재로서는 너무 세다는 것이다. 레인은 과학자들, 특히 사회과학자들이 좀더 솔직해질 것을 요구한다. 사회적인 요인만으로는 폭력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균형이 필요하다. 사회과학자들은 출산합병증, 임신 중 흡연과 음주, 중금속 중독, 영양실조 같은 생물학적인 요인들에게 별다른 비중을 두지 않고 있다. 특히 사회과학자들은 뇌를 빠트리고 있다. 레인에 따르면 살인과 같은 폭력적인 범죄는 일종의 암이다. 암도 폭력 범죄도 모두 유전자와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발생하며 둘 다 치료가 가능하다. “범죄는 공공보건 문제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은 소용이 없다. 범죄가 일어난 이후 범죄자들을 체포하고 가두고 이들의 사회 복귀를 위해 노력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 예방이 나아갈 길이다. 범죄 예방에 필요한 신경과학적 팩트를 확인하고, 방법론 마련하고, 통제 방법이 확립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게 레인의 주장이다. 2034년까지는 자신이 창시하다시피 한 신경범죄학이 범죄 예방의 기초가 되리라는 게 레인의 예측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연상되는 독자 분들도 있으리라. ‘빅브라더’가 생각날 수도 있다. 레인에 따르면 미래사회에서 18세 이상의 남성은 모두 뇌를 촬영하고 DNA 검사를 받아야 한다. 대부분의 끔찍한 범죄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저지르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 범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돼야 한다. 또 아이를 키우려면 국가의 면허를 받아야 한다. 민주적인 사회에서 그게 가능할까. 레인은 관타나모 수용소를 예로 들며 우리가 이미 격리를 실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자유의지를 둘러싼 논쟁과도 밀접하다. 저자에 따르면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오로지 뇌가 있을 뿐이다. 자유의지는 결국 통제의 문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선택을 완벽히 통제한다. 전혀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두 양극단 사이에 모든 사람들이 존재한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 생물학적인 작용의 문제다.



 『폭력의 해부』는 거센 비난을 부르기도 한다. 과학과 픽션과 정치를 묘하게 섞어 재미있기는 하지만 문제가 많은 의사(疑事)과학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나친 비난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실증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레인의 문체는 경쾌하다. 이 책은 대중 과학 서적이지만 학술서 성격도 짙다. 유전학·신경해부학 등의 성과를 범죄를 설명하는 데 십분 활용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례가 중간중간 삽입돼 읽는 게 지루하지 않고 수월하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S BOX] 살인자의 뇌 이미지 찍고 연구 … 신경범죄학 개척



인류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다. 폭력 특히 살인이 존재하지 않는 문화나 사회는 없다. 왜 그럴까. 에이드리언 레인은 이 문제와 씨름했다. 35년동안 범죄학을 연구했다.



 레인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범죄학·정신의학·심리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실험심리학으로 학사학위(1977)를, 요크대학에서 심리학 박사학위(1982)를 받았다. 그는 신경범죄학(neurocriminology)을 개척한 학자다. 범죄 분석과 예방을 목표로 신경과학의 원리와 뇌 촬영 기술을 응용하는 분야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통해 어른뿐만 아니라 어린이의 반사회적·폭력적 행태를 설명한다.



  레인 교수는 고등학교 졸업 후 항공사 회계원으로 근무했다. 그는 “왜 어떤 사람은 범죄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히게 됐다. 연구를 위해 교도소에서 4년간 근무했다. 연쇄살인자, 사이코패스, 비행 청소년 등 범죄자들을 수백 명 인터뷰했다. 또 심리학·범죄학·생물학·사회생리학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했다. 20여 년 전부터 인류는 스스로의 뇌를 찍기 시작했다. 저자 에이드리언 레인은 살인자의 뇌 이미지를 찍고 연구에 착수한 최초의 학자다.



 레인 교수는 난산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비타민결핍증으로 고생했다. 그 결과 자기 통제가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자신의 뇌를 찍어보니 범죄자의 뇌의 구조와 유사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범죄자가 아니라 범죄학 분야의 석학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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