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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이쪽도 저쪽도 아닌 사람’이 절반인 시대에서 생존하기

중앙일보 2015.08.22 00:06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환영
논설위원
‘정치나 종교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게 삶의 지혜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날씨·음식·여행지 이야기만 해서는 진짜 가까운 사이는 될 수 없다. 종교나 정치에 대해 서로 입장이 다르더라도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진짜 친구가 아닐까.



 최근 종교와 정치라는 껄끄러운 양대 분야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렇다. 중립적·중도적인 사람들, 중간지대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사람들’의 증가는 뭔가 거대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지 모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종교다. 지난 4월 갤럽은 세계 65개국 6만3900명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이 물었다. “당신이 어떤 예배 장소에 가건 가지 않건 당신은 당신이 어떻다고 말하겠습니까? (1)나는 종교적인 사람이다 (2)나는 비(非)종교적인 사람이다 (3)나는 확고한 무신론자다 (4)모르겠다/무응답.” 여기서 ‘비종교적인 사람’에는 무교(無敎)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교회·성당·절·모스크·시너고그에 다니는 사람도 포함된다. 일요일마다 예배나 미사에 참석하고 있지만 ‘나는 비종교적인 사람이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이다.



 설문에 대해 한국인 응답자는 ‘나는 종교적인 사람이다’ 44%, ‘나는 비종교적인 사람이다’ 49%, ‘나는 확고한 무신론자다’ 6%, ‘모르겠다/무응답’ 1%로 대답했다. ‘비종교적’이거나 ‘확고한 무신론자’인 한국인을 합치면 한국은 세계 12위였다. 우리나라의 경제 관련 순위와 엇비슷하다.



 흥미로운 점은 불과 2년 동안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2012년에 실시한 같은 조사에서는 ‘나는 종교적인 사람이다’가 52%, ‘나는 비종교적인 사람이다’가 31%, ‘나는 확고한 무신론자다’가 15%, ‘모르겠다/무응답’이 2%였다. 즉 2년 사이에 종교적인 사람이 52%에서 44%로, 무신론자가 15%에서 6%로 확연히 줄었다. 반면 비종교적인 사람의 범주에 속하는 한국인은 31%에서 49%로 늘어났다.



 정치의 경우는 어떤가. 한 언론사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스스로 판단한 정치적 이념 성향은 중도가 47.4%, 보수 28.7%, 진보 20.5%였다. 보수와 진보를 합치면 49.2%다. 이전에 비해 보수·진보는 줄고 스스로 중도라고 평가하는 사람의 수는 늘었다.



 수많은 의문이 제기된다. 자신이 비종교적이라는 49%와 중도라는 47.4%는 얼마나 겹칠까. 어딘가에 가담하지 않는 사람들이 인구의 거의 반이다. 그들은 왜 중간의 길을 선택했을까. 기성 정당·종교에 대한 실망 때문일까. 그들은 ‘별생각 없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보수·진보, 종교인·무신론자 못지않은 ‘제3의 확신’이 있는 사람들일까.



 중간지대의 확산이 미치는 영향을 뭘까.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 같다. 어차피 불교 신자용 캠핑 장비나 정의당 지지자용 휴대전화는 따로 출시되지 않는다. 정당과 종교 단체들은 고민이 좀 깊을 수도 있겠다. 만약 그들이 정치나 종교에 별 관심이 없다면, 또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이 맞는다면 그들을 ‘포섭’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신문사나 방송사에 다니는 사람들도 새로운 사고가 필요할지 모른다. 보수적·진보적인 기사 선정과 논조가 아니라 중도 친화적 궤도 수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중간·중도·중립층의 증가가 ‘뉴 노멀(new normal)’로 대세가 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정치나 종교가 중요한 사람들이 다수인 시대와 다른 화제 개발이 필요할 것이다. 이전에는 정치를 안주 삼아 정치인들을 욕하거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한국에도 적용 가능한가’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북방불교와 남방불교의 차이’나 ‘신(神)은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우정을 쌓을 수도 있었겠다.



중간·중도·중립의 전성시대에는 지금보다 정치·종교에 대한 토론 수준이 오히려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중간지대 사람들은 더 높은 지식 수준을 바탕으로 뭔가 더 까다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응하면 살고 적응하지 못하면 죽는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빨리 알아채야 산다.



김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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