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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다이어리] 개구리할머니와 아들의 우정

중앙일보 2015.08.22 00:06 종합 2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박수련
경제부문 기자
일곱 살 유치원생인 아들에겐 조금 특별한 동네친구들이 있다.



 우선, 개구리할머니다. 올해로 팔순인 유선근 할머니는 아이가 조잘조잘 말을 배울 무렵부터 만났다. 시작은 개구리할머니네 집 앞 작은 돌절구 연못이었다. 할머니 손잡고 동네 마실을 나간 아이는 이 연못에서 보글보글 피어난 개구리알을 처음 봤다. 며칠 뒤 다시 찾은 연못에선 올챙이가 꼬물꼬물 다녔고 다시 며칠 뒤엔 앞다리 쑥, 뒷다리 쑥 뻗은 개구리가 뛰어다녔다. 반평생 동네에서 터를 잡고 산 할머니는 이때부터 ‘개구리할머니’가 됐다.



 그 이후로 해질녘이면 아이는 “개구리할머니네 집에 한번 다녀오면 엄마 돌아올 시간 다 될 거야”라며 할머니를 졸랐다. 그때마다 대문은 활짝 열렸다. 옥수수나 과일을 넣어갔던 가방은 다른 간식으로 채워져 돌아왔다.



 퇴근시간이 늦어질 때마다 마음 졸이던 나는 개구리할머니의 존재를 전해 듣고는 ‘옳다, 잘됐다’ 싶었다. 내 마음의 돌무더기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제3의 손길이 반가웠다. “오늘도 할머니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아이의 다짐을 받아두며 출근했던 때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서로를 친구라고 부르는 그들에게서 특별한 무엇인가가 보였다. 아이는 두 할머니들과 함께 다니며 평양냉면 맛을 깨쳤다. 동생이 태어나 힘들어할 때도 아이는 개구리할머니와 할머니에게서 위로를 받았다. 주말에 함께 동네 산책을 나가면 아이는 개구리할머니 집에 전등이 켜 있는지를 챙겼다. 나이 차이가 무색한 우정을 맛본 아이는 동네 어른들에게 꾸벅꾸벅 인사하고 안부도 곧잘 묻는다. 빈틈 많은 맞벌이 부모에게 개구리할머니는 핏줄이나 육아도우미가 가르쳐줄 수 없는 세계를 아이에게 보여줬다.



 이런 우정은 매일 아침 유치원버스를 기다리며 머무는 수퍼마켓의 주인아줌마, 동네 미용실 아줌마, 집 앞 카페 누나에게서도 보인다. 꽤 낭만적으로, 어쩌면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우정이지만 내게는 이런 관계들이 더없이 소중한 사회안전망이다.



늦은 밤 퇴근길에 들른 수퍼마켓에서 “오후에 (아이)얼굴이 어둡던데 무슨 일 있었나 몰라.” “엄마 마중한다고 벤치에 한참 앉아 있다가 들어갔어요” 하고 건네주는 말 몇 마디가 내겐 방범 폐쇄회로TV(CCTV)보다 더 고맙다. 네 살배기 둘째까지 동네 마실에 맛을 붙인 요즘엔 더욱 그렇다. 밤낮으로 아르바이트생이 바뀌는 수퍼마켓형 편의점 대신 30년 된 동네 수퍼를 찾고, 시내 미용실보다 동네 미용실을 가는 건 이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의 깊은 뜻도 이제야 깨닫는다.



박수련 경제부문 기자



◆워킹맘 칼럼 보낼 곳=e메일 opinionpag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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