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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길 !] 야지디족 소녀의 절규

중앙일보 2015.08.22 00:06 종합 29면 지면보기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엊그제 터키 남동부의 시리아 난민촌에서 돌아왔다. 꼭 가고 싶었던 현장인데, 마침 그곳에 친구가 국제 구호단체 책임자로 있어서 방학 동안 일을 거들 수 있었다. 지난 4년간 계속된 시리아 내전으로 인구 2100만 명 중 400만 명이 터키·레바논·그리스 등으로 피했는데 터키로 온 200만여 명 가운데 2만여 명의 난민들이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올여름 한국도 찜통이었다지만 그 난민촌은 잘 달구어진 프라이팬 같았다. 해만 뜨면 영상 40도는 기본. 땡볕 아래 5분만 서 있어도 머리가 핑 돌고 가슴 사이로 티그리스강이 흐르고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이런 살인적인 더위에도 여자들은 까만 천으로 온몸을 가리고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신나게 뛰어놀았다. 고달픈 난민 생활 4년차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잘 웃고 남자들은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으며 “슈크란(고맙습니다)”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시리아 내전은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까지 가세하면서 점점 복잡하고 잔인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고 있는 거다.



 국제법상 난민은 크게 국내 난민과 국제 난민으로 나뉘는데 국내에 있으면 자국이, 국경을 넘으면 넘어간 국가가 이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즉 같은 시리아 난민이라도 시리아 안에 있다면 시리아 정부가, 터키로 넘어왔다면 터키 정부가 이들을 지원한다.



 난민들은 모두 대형 텐트 난민촌에서 살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부분은 친척이나 지인 집에 얹혀살거나 허름한 방을 세내어 기거한다. 한국전쟁 때 북한 피란민들이 남한 친지 집에 머물렀던 것과 같다. 보통 아무 연고가 없는 사람들만 난민촌에서 지내기 때문에 난민촌 밖의 난민들에게 식량·의료·초등교육 등을 지원하기 위해선 별도의 세심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곳 난민촌 시설은 내가 여태껏 본 곳 중 최고였다. 학교·진료소는 물론 체육시설과 문화센터도 있고 텐트마다 간이 에어컨도 있었다. 자원봉사자와 직원 수도 유엔 및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 기준보다 훨씬 높았다. 터키 정부의 확고한 의지 덕분이다. 터키 정부는 시리아 난민들을 부담스러운 불청객이 아니라 무슬림 형제이자 손님으로 극진히 대하겠다고 선포하고 국제사회의 큰 도움 없이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지난 4년간 200만 명의 난민을 돌보는 데 쓰인 돈이 매해당 무려 10억 유로, 우리 돈으로 약 1조3000억원이다. 그러나 재정 부담이 너무 커서 올 11월 국회의원 선거 후 난민지원책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도 뚝뚝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터키에는 시리아 난민만이 아니라 IS를 피해 온 수만 명의 이라크 쿠르드족과 수천 년간 이민족들에게 학살을 당해온 야지디족 난민들도 있다. 바트만 난민캠프에서 만난 야지디족은 하나같이 선량한 표정에 여자들은 인형같이 예뻤다. 이번 IS의 학살이 야지디족 역사상 74번째 대량학살이었단다. 농사짓고 양을 키우며 사는 이들, 다 합해봐야 고작 40만~50만 명인 이들을 도대체 누가 왜 ‘인종청소’ 하려 하는가.



 가장 큰 이유는 종교다. 이들은 조로아스터교와 이슬람교의 요소가 섞인 종교를 믿는다. 지구를 지옥으로 보고 언젠가 공작 모양을 한 최고신이 나타나 자기들을 구해줄 거라고 믿는다. 그 때문에 공작을 사탄으로 간주하는 이슬람교도들에게 끊임없이 박해를 받고 있다. 지난해 여름 IS가 인구 5만 명의 야지디족 최대 거주 지역인 이라크 북부 신가르를 장악하면서 또 한 번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자행됐다.



 그 현장을 목격했던 아버지와 10대 두 딸은 몸서리치며 그때를 이렇게 증언했다. “지난해 8월 3일 중무장한 수백 명의 IS 대원들이 들이닥쳤어요. 마을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무슬림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하더니 본보기로 동네 남자 한 명을 끌어내 단칼에 목을 쳐 죽였어요. 그러고는 네 살짜리 남자아이를 번쩍 들더니 이 아이를 산 채로 살을 저며 개종하지 않는 모두에게 그 살을 먹이겠다고 으르렁댔어요.”



 다음 날 IS는 성인 남자들의 손을 묶어 총살하고 여자들은 보이는 대로 잡아 차에 싣고 어디론가 데려갔단다. 이렇게 끌려간 여자들이 최소한 3000명, 깊은 신앙심으로 순결을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이들이 잔인무도하고 광기 어린 IS의 성노예가 되어 이 순간에도 말할 수 없는 치욕을 당하고 있는 거다. IS가 신입대원들에게 ‘가입선물’ 혹은 ‘포상’으로 준다는 여자들이 바로 야지디족 여자들이다.



 “우리 언니도 잡혀갔어요. 둘도 없는 내 친구도요.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건가요? 야지디족은 남을 해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요?”



 16세 아이의 아름다운 눈에는 차분한 분노와 간절한 애원이 섞여 있었다.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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