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비형 박승화 - 공격형 최정 “우리가 환상의 커플”

중앙일보 2015.08.20 00:26 종합 21면 지면보기
제5회 SG배 페어 바둑 최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박승화 6단(왼쪽)과 최정 5단. 같은 바둑도장 출신으로 서로 알고 지낸 지는 10년 가까이 됐다. 이들은 “초반 포석을 제외하고는 작전을 짜지 않았다”며 “각자 기풍대로 마음 편하게 바둑을 두자는 게 유일한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바둑은 홀로 싸우는 외로운 전투다. 반상 위에 나를 제외한 내 편은 없다. ‘페어(pair·짝) 바둑’은 다르다. 두 사람이 한 수씩 돌아가며 함께 바둑판을 짜야 한다. 내 편이 있으니 바둑 두기가 수월할 거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착각이다. 파트너와 호흡이 맞지 않으면 순식간에 바둑이 엉망이 된다. 페어 바둑이 단순히 기량의 합산대로 승부가 나지 않는 이유다.

최철한·윤지희 부부기사 꺾고 우승
이번 대회서 처음으로 호흡 맞춰
정반대 기풍 … 서로의 약점 보완
박 6단 “지면 내 탓 같아 부담 많아”
최 5단 “배려 잘해줘 재미있었다”



 제5회 SG배 페어 바둑 최강전에서 ‘환상의 커플’이 탄생했다. 박승화(26) 6단-최정(19) 5단이 18일 충남 아산시 영인면 아름다운CC에서 열린 이 대회 결승전에서 최철한 9단-윤지희 3단 부부를 220수 만에 불계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박 6단과 최 5단은 이번 페어 대회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이들이 파트너가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최 5단은 “내가 유창혁 사범님 제자라 그간 항상 유 사범님과 함께 페어 대회에 나갔었다”며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지 주위에서 아무도 나와 파트너를 하자고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박 6단을 만나게 된 것. 박 6단은 “정이가 유 사범님과 페어 대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파트너를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최정 5단은 국내 여자 랭킹 1위. 누구나 탐내는 파트너 감이다. 얼결에 최 5단과 파트너가 됐지만 박 6단은 초반에 부담감이 컸다. 박 6단은 “정이가 여자 랭킹 1위라 페어 대회 성적이 좋지 않으면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창혁 사범님보다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고, 주위에서 도둑놈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해서 부담감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부담감도 잠시, 이들은 환상의 궁합을 보여줬다. 특히 정반대 기풍이 서로 약점을 보완하며 최강의 팀이 됐다. “정이가 공격형 기풍이라 전투가 벌어졌을 때는 정이가 힘을 발휘했고, 나는 수비형 기풍이라 수비 위주로 역할 분담을 했다.”(박승화) “내가 형세 판단과 계가에 약한데, 박 사범님이 마무리에 강해서 후반으로 갈수록 마음이 편했다.”(최정)



 바둑 외적인 호흡을 묻자 최 5단은 “박 사범님이 다른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스타일이다. 평소에 지낼 때도 마음이 편했다. 또 유창혁 사범님은 나이가 드셔서 가끔 사소한 실수를 하시는데 그런 면에서 심리적으로 덜 불안했다”고 말했다. 이에 박 6단은 “나도 페어 대회 기간 내내 마음이 너무 편했다. 특히 정이가 유 사범님보다 내가 낫다고 했으니 만족이다. 유 사범님에게 전해 드려야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마음 편한 상대를 만나선지 대국 분위기도 늘 화기애애했다. 최 5단은 “8강전에서 페어 바둑을 두는데 박 사범님이 30분 넘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내가 너무 크게 웃는 바람에 방송 사고가 난 적 있다”며 “밖에 나가서 한 차례 웃고 왔는데도 웃음이 멈추지 않아서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바둑을 뒀다”고 회상했다.



 페어 대국을 잘 두는 비결로는 둘 다 ‘호흡’과 ‘배려’를 꼽았다. 박 6단은 “페어 바둑은 호흡이 맞지 않으면 힘들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를 상대가 두면 당황해서 다음 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서로 기풍을 고려해 상대를 배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고, 최정 역시 “한쪽이 아무리 좋은 수를 둬도 파트너가 그 의도를 모르면 오히려 바둑이 더 안 좋아질 수 있기 때문에 호흡이 중요하다”고 했다.



 유쾌한 이 커플을 다음 페어 대회에서도 볼 수 있을까. 변수는 박 6단의 군대다. “내가 군대를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아직 잘 모르겠다. 올해 말에 군대를 갈 생각이었는데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니 생각이 달라졌다. 내년 초에 ‘루양배 한·중·일 삼국 바둑 명인 페어전’에 정이와 같이 출전하고 싶어서 군대 문제를 고민 중이다.”(박승화)



 마지막으로 두 선수에게 이성으로의 궁합을 물었다. 최 5단은 “박 사범님이 나를 여자로 안 보실 거다”라면서도 “좋은 여자 있으면 소개시켜 드리고 싶다”고 선을 그었다.



글=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G배 페어바둑 최강전=남녀 2인(한 명은 반드시 프로기사)이 한 팀으로 출전. 착점은 흑(여성)→백(여성)→흑(남성)→백(남성) 순으로 진행. 생각 시간 각자 10분에 초읽기 40초 3회, 우승상금은 3000만원, 준우승상금은 1000만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