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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잡으면 … 내겐 수행, 보는 이에겐 힐링

중앙일보 2015.08.20 00:16 종합 24면 지면보기
서울 견지동 조계사 뜰에 꾸며진 연꽃들 사이에서 범주 스님이 선묵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달마도를 다 그린 뒤 마지막에 찍는 게 눈이다. 마음으로 그리는 눈, 그게 심안(心眼)이다.”


구도 여정 책 낸 범주 스님
조계사 나무갤러리서 선묵전

 19일 서울에서 달마도의 대가 범주(梵舟·72) 스님을 만났다. 그는 속리산 법주사 근처 달마선원에서 수행과 함께 40년째 선묵화(禪墨畵)를 그리고 있다. “결국 그림은 기운이다. 수행을 통한 맑은 기운이 화폭에 담기고, 그 기운이 보는 사람에게도 전달되는 것. 이게 선화(禪畵)의 핵심이다.”



 젊은 시절 그는 미대생이었다. 홍익대 미대 4학년 때 출가했다. “대학에서 예술을 택한 것도 ‘나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서였다. 왜 인간으로 태어났고, 어떻게 사는 것이 후회 없이 사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는 누구인가’부터 풀어야 했다. 대학에는 최고의 교수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미술의 대가였지, 정신의 대가는 아니었다.”



 그는 4학년1학기를 마치고 머리를 깎았다. 졸업장이 필요하진 않았다. 경허-만공의 법맥을 잇는 전강 스님을 찾아가 10년간 선방에서 ‘이뭣고’라는 화두(話頭·깨달음을 위한 선불교의 물음)를 들었다. 스승은 “속세에서 하던 모든 걸 놓으라”고 했다. 물론 그림도 끊었다. 그렇게 강산이 한 차례 바뀌었다.



 10년이 지나서야 붓을 다시 잡았다. “수행과 함께 선묵화를 그리다 보니 몰입하게 됐다. 몰입을 하다 보면 ‘그림 삼매(三昧·불교 수행 중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 들어간다. 붓도 잊고, 화폭도 잊고, 무아(無我) 상태가 된다. 그때 우주의 기운이 화폭에 담긴다. 내게는 수행이 되고, 그림을 보는 이들은 마음의 정화를 얻더라.” 그래서 범주 스님은 선묵화를 ‘힐링 아트’라고 부른다. 3년간 연구해 옻칠로 묵화를 오래 보존하는 방법도 개발했다.



 범주 스님은 최근 자신의 구도 여정을 담은 책 『나를 찾아 붓길을 따라서』(운주사)를 출간했다. 또 29일~9월 8일 선원수좌회 복지기금 마련을 위해 서울 견지동 조계사 나무갤러리에서 ‘범주 스님 선묵 회고전’을 연다.



글·사진=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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