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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게리맨더링 여지 남겨 두겠다는 국회

중앙일보 2015.08.20 00:07 종합 2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남궁욱
정치국제부문 기자
내년 20대 총선 선거구를 나눌 ‘칼의 자루’는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쥐고 있다. 국회가 아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의 독립기구다. 여야가 아닌 외부 기관이 이 칼자루를 쥔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 때문에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기형적으로 나눠 버리는 ‘게리맨더링’이 사라질 것이란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큰 게 사실이다.



 그런데 사라지는 듯했던 게리맨더링의 그림자가 다시 어른거리고 있다. 18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선거구 획정 시 행정구역을 분할할 수 있게 해 주는 예외 조항을 공직선거법 부칙으로 만들자’고 합의하면서다.



 현행 선거법에는 “지방자치구의 일부를 분할해 다른 의원의 선거구에 포함시킬 수 없다”(제25조 1항)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을 어기고 행정구역을 쪼개고 합쳐 예외적으로 선거구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만들어 두자고 여야 정개특위 위원들이 합의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또다시 게리맨더링 논란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물론 이런 예외 조항 적용이 불가피한 지역도 있다. 서울 중구가 대표적이다. 7월 말 기준으로 이곳의 유권자는 12만6533 명이다. 현재로선 선거구 유지를 위한 인구 하한선(13만9426명)에 아슬아슬하게 미달이다. 이대로 가면 1만여 명이 부족해 중구 구민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해 줄 국회의원을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인근 구에서 몇 개 동을 중구에 ‘꿔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중구 같은 ‘꼭 필요한 행정구역 분할’만 있으란 법은 없다.



 실제로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군 단위로, 면 단위로 후보들에 대한 호불호가 크게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걸 잘 아는 의원들은 자신을 좋아하는 동네나 마을만 모아 선거구를 구성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선거구 그림’이 나오게 선거법 부칙이 만들어지도록 정개특위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행정구역 분할이 보다 손쉬워지도록 말이다. 부칙이 마련되고 나면 선거구획정위에도 손을 쓰려고 들지 모른다.



 이걸 막으려면 20일 열리는 정개특위 선거법개정심사소위원회가 중요하다. 여기서 서울 중구처럼 반드시 필요한 행정구역 분할이 아니면 허용해 주지 않는 ‘깐깐한 부칙’을 마련해야 한다. 이 부칙을 넘겨받아 직접 지역구 경계선을 그을 선거구획정위도 정치적인 고려 없이 공정하고 세심하게 획정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역시 칼자루를 국회에서 빼앗아 외부 기관에 넘기길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 때 게리맨더링은 역사의 화석으로 사라질 것이다.



남궁욱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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