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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변호사는 선비인가, 아니면 장사꾼인가

중앙일보 2015.08.20 00:07 종합 29면 지면보기
나승철
변호사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2015년 7월 23일 목요일, 대법원은 형사사건에서 변호사의 성공보수 약정이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 소식이 전해지자 변호사 사회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과거 형사사건 성공보수 금지가 논의된 적은 있었지만 결국 도입되지 않았다. 이후 형사사건 성공보수는 관행으로 굳어져 왔는데, 대법원에서 이를 무효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이러한 판결을 내린 주된 근거는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과 윤리성이었다. 쉽게 말해 변호사의 형사사건 변호는 다른 직업과는 달리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을 요구하는 업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형사사건 변호와 관련해서는 다른 서비스업과 달리 당사자 간의 자유로운 보수 약정이 제한될 수 있다는 취지다. 즉 변호사는 ‘선비’라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변호사법 제1조도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변호사 양성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도 변호사의 공공성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변호사 업무를 서비스업의 일종으로 파악하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여러 방안을 내놓았다. 한 가지 예로 최근 10여 년 동안의 변호사 대량 공급 정책이다. 변호사 숫자를 늘려 변호사들 간의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법률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변호사들 간의 경쟁이 촉진되고 변호사들의 전문성이 향상되는 등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변호사의 공공성과 윤리성을 퇴색시켰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개업 변호사들 중에서 자신을 ‘선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변호사도 ‘영업’을 잘해야 하는 ‘상인(商人)’이 된 것이다. 최근 문제가 된 ‘집사변호사’에서 우리는 더 이상 변호사의 공공성을 찾아볼 수 없다. 2007년에도 대법원은 변호사가 ‘상인’이 아니라고 판결한 바 있다. 변호사 스스로 자신이 ‘상인’이라고 주장하는데, 대법원은 변호사가 여전히 ‘선비’라고 판단한 것이다. 변호사의 공공성과 상인성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의 공공성이 강조되는 대표적인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변호사법에서 아예 “변호사는 사법기관이다. 변호사의 업무는 영업이 아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 독일 변호사들은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변호사의 성공보수를 원칙적으로 금지시키고 예외적으로만 인정하고 있다. 다만 독일은 변호사들에게 강한 공공성을 부여하는 대신 국가가 일정 부분 변호사들을 경쟁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변호사 보수를 법률로 정하고 있는데, 법률로 정해진 변호사 보수는 상한(上限)이 아니라 하한(下限)이다. 그 이유는 변호사들이 서로 낮은 금액을 제시함으로써 과도한 경쟁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변호사의 상인성이 강하게 인정된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판결(Bates v. State Bar of Arizona)에서 “변호사의 업무가 상거래보다 고차원적이라는 믿음은 시대착오적이고 위선적이다”라고까지 했다. 변호사의 직무가 다른 직업과 다를 게 무엇이냐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변호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그러나 변호사들 간의 치열한 경쟁의 결과 세계 최고 수준의 로펌들 중 상당수가 미국 로펌이다. 물론 미국도 형사사건, 이혼사건에서 성공보수를 금지하는 등 변호사의 공공성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 법조계의 가장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는 변호사의 공공성과 상인성 사이의 혼란이다. 즉 ‘변호사는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이 없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철학이 정립되어야 일관된 정책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정부마저 뚜렷한 철학이 없다 보니 어떤 때는 공공성을 강조하다가 또 어떤 때에는 상인성을 전제로 하는 정책들을 추진하기도 한다. 그 결과 공공성을 지키려 해도 지킬 수 없고, 제대로 경쟁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기이한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현실과 규범이 일치하지 않으면 규범에 따라 현실을 제대로 규제하든가 아니면 현실에 맞게 규범을 고쳐야 한다. 그런데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 변호사는 마치 ‘선비의 옷을 입은 상인’과 같은 모습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던지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형사사건에서 변호사 보수 약정을 어떻게 할지 여부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판결에는 ‘우리 사회에서 변호사가 과연 선비인가 아니면 상인인가’라는, 변호사 제도의 본질적인 질문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할 의무는 변호사들 스스로에게 있다. 만약 변호사들이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갖지 못한다면, 변호사 사회는 앞으로도 공공성과 상인성이 혼돈된 채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될 것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법조계 모두가 이 질문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나승철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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