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러도 대답 없는 택시는 셈법도 통하지 않는다. 서울시 적정 택시 총량은 6만여 대다. 운행 중인 택시는 약 7만여 대다. 최소 1만 대가 공급 과잉이다. 계산상으론 택시가 아닌 소비자가 골라서 타야 한다. 그런데 택시는 안 잡힌다. 그것도 가장 필요할 때. 공급 과잉이니 택시 기사 벌이가 좋을 리 없다. 정부는 세금으로 감차를 유도했다. 지난해 감차 보상 예산은 56억원이었다. 그런데 납세자는 오늘도 택시를 못 잡는다.
나는 둔감한 소비자였다. 먹고 살자는 것이려니 하고 난폭 운전도 눈감았다. 택시 탈 때마다 물었다. “기사님, ○○ 가시나요.” 그런데 어느 날 짜증이 훅 났다. 돈 내고 타면서 부탁하듯 묻는 게 억울했다. 소비자로서 나는 각성했다. 맛있는데 불친절한 식당을 더는 안 가는 것과 같다. 그 집이 아니어도 맛있는 집이 여럿 있었다.
택시는 식당보다 힘이 세다. 민심 전파자라는 정치적 상징이 힘을 키웠다. 무엇보다 택시 업계는 기계(택시)를 장악하고 있다. 기계의 사회적 힘은 멈출 때 강력해진다. 운행 중단은 교통 대란의 공포를 만들 수 있었다. 택시도 대중교통으로 대우해 달라는 택시법 파동(2012년)은 그래서 가능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페이스북은 콘텐트를 만들지 않지만 최고의 미디어다. 에어비앤비는 숙박 업체지만 호텔이 없다. 그리고 차량 공유 업체 우버는 차 없이도 58조원 가치의 교통 기업이 됐다. 택시의 아우성에 우버는 한국에서 한 발 물러났다. 그러나 카카오 택시로도 택시가 안 잡히면 소비자는 우버를 불러들일 게 분명하다. 시장의 변화는 서민 업종이라고 봐주진 않는다. 그러니 손님을 고르고 있는 뒷골목은 돈 버는 아지트가 아니라 함께 망하는 무덤이다.
택시만이 아니다. 새 단장을 한 서울 코엑스몰이 시끄럽다. 장사가 되니 안 되니 말이 많다. 소유주인 한국무역협회 책임론이 나온다. 계약 불만 상인들의 화풀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네 탓 공방을 할 만큼 여유로운지는 의문이다. 코엑스몰 외에도 대형 몰이 넘친다. 매장에서 입어 보고, 온라인으로 사는 게 요즘 소비자다. 그저 그런 매장은 잘 될 턱이 없다. 무협이든, 상인이든 ‘왜 코엑스몰에 가야 하나’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다.
마침 식재료 전문점 ‘이탈리’의 첫 한국 매장이 내일 문을 연다. 프리미엄 식재료를 팔고, 판매 재료로 조리를 하는 식당이 어우러진 ‘그로서란트(Grocery+Restaurant)’다. 뉴요커도 열광한 이탈리아 업체다. 요리 열풍의 다음 순번은 좋은 식재료라는 걸 알 만한 사람은 안다. 그런데 우리는 또 한 발 늦었다. 빨리 뒷골목에서 나와야 할 때다.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