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아베 담화’ 이후에 벌어질 5가지 일들

중앙일보 2015.08.19 00:07 종합 2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4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발표한 담화는 동북아 역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중·일 관계 등 동북아 국제관계를 후퇴시킨 것도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적한 ‘아시아 패러독스’는 계속 살아 있게 됐지만, 지난주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발언으로 말미암아 양국 관계의 진전을 이룰 여지가 생겼다.



 아베 담화 직후 교도통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44.2%의 일본인이 담화에 대해 긍정적, 37%가 부정적이었다. 보다 보수적인 후지산케이 미디어그룹의 조사를 보면 57%가 긍정적이었다. 예상대로 좌편향 일본 매체의 반응은 비판적인 반면 우익은 아베 총리가 ‘과도한 표현으로 죄책감을 표시한 것’에 대해 실망했다. 전체적인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일본 정부에 대한 지지가 담화 이후 상승했음을 의미한다. 국내 정치 차원에서 아베의 이번 ‘중도적인’ 담화는 의도했던 효과를 거둔 셈이다.



 대한민국을 제외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아베 담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미디어 보도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과 호주 총리실은 담화 직후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미국·호주 정부가 신속한 반응을 보인 의도는 아시아에 긍정적인 사인을 보내기 위해서였다는 게 확실하다. 상호 비방보다는 전향적인 대화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서구 언론의 평가에 따르면 중국의 반응은 신랄했다. 하지만 과거 선례에 비춰 보면 상당히 온건했다. 중국 대변인 성명의 영문본과 중국본을 비교해 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중국어로 된 성명이 더 강경하다. 아마도 국내 정치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국 측 반응은 최근의 성명과 비교했을 때 일관성이 있었다. 근래 들어 꾸준히 개선되고 있는 중·일 관계에 찬물을 끼얹겠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지난해 11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 이래 중·일 관계는 안정화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배경으로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대부분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박근혜 대통령의 아베 담화에 대한 반응이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윤 장관은 “말보다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실망감을 표출함과 동시에 전향적인 변화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 박근혜 행정부는 사실 어려운 입장에 처했다. 아베 담화에는 역대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반성에 대한 재확인만 있었을 뿐 기대와는 달리 새로운 사과는 없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과 윤 장관은 아베 담화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했다. 또 앞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기대도 명백히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윤 장관의 반응은 한·일 관계 전반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추진력을 마련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첫째, 앞으로 집권할 일본의 총리들은 새로운 사과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의 ‘아베 방식’은 과거의 사과를 재확인하는 한편 후회와 슬픔을 표현했다. 이번에 일본 국민이 받아들인 이 아베 방식은 ‘뉴 노멀(new normal)’이 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여론조사 결과 다수의 일본인이 안보 관련 법률의 제·개정에 반대하지만, 제·개정은 이번 국회 회기에 이뤄질 것이다. 종전 70주년을 맞아 발표한 아베 담화가 자민당의 연정 파트너인 공명당을 충분히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아베 담화는 내각의 이름으로 발표됐다. 즉 평화주의적인 공명당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셋째, 아시아에서 경쟁관계인 중·일 양국의 안보 갈등은 높은 수준으로 계속되겠지만, 시진핑 주석과 아베 총리는 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중·일 관계를 수뇌부 차원에서 개선할 것이다.



 사실 8월 14일의 아베 담화는 첫째는 일본 국내, 둘째는 미국, 셋째는 중국을 고려해 가며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가 베이징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할 가능성까지 고개를 드는 이유다. 단, 군사 퍼레이드를 피한다는 구상도 나왔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러한 시나리오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베 입장에서는 정치적인 리스크가 너무 크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전승절 행사를 반일 군사 시위로 변질시킬 가능성이 있다. (최근 중국군 고위층이 그렇게 하겠다고 호언했다.)



 넷째,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발언으로 판단해볼 때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늦어도 11월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에, 아마도 그 이전에 한국에서 개최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3월 한·중·일 외교장관이 서울에서 만났지만 마지막 한·중·일 정상회의는 2012년 5월에 개최됐다.



 다섯째,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한·일 간의 논란이 많은 사안에 대한 논의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이들 문제에 대한 대화가 얼마만큼 진척을 보이느냐에 한·중·일 관계의 성공이 달려 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아베 담화는 실망스러운 점이 있었고 비판도 받았지만, 한·일 관계와 중·일 관계를 한·중·일 3국과 미국의 외교관들이 기대하는 시나리오에 진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여정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