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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성매매의 비범죄화’ 선언

중앙일보 2015.08.19 00:07 종합 30면 지면보기
양선희
논설위원
먼저 밝혀둘 게 있다. 성매매를 옹호하지도 않고, 그 업종이 ‘성적자기결정권’ 같은 고상한 논리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도 보지 않는다. 성매매업은 착취와 폭력, 인신매매와 인권유린, 한탕주의 등으로 버무려진 음습한 어디메쯤에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가 ‘성매매=범죄’에 견고한 지지를 보내는 것도 그 음험함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주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가 성매매를 비범죄화하자는 결의에 적극 찬성한다.



 국제앰네스티는 더블린 국제대의원총회에서 ‘합의에 의한 성노동과 관련된 모든 측면을 완전히 비범죄화하는 정책을 만들 것’을 권고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들은 이 결정에 이르기까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2년여의 고심과 조사·토론의 시간을 거치며 이 결정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성노동자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소외된 집단 중 하나이며 끊임없는 차별과 폭력, 학대의 위험에 놓여 있다.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이들에 대한 학대와 폭력의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성노동과 관련된 모든 측면을 비범죄화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세계 여성단체들과 일부 인권단체 등은 즉각 거세게 반발했다. 그들의 비난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성매매가 성적 학대와 폭력 등 범죄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성구매자와 알선 행위까지 범죄로 보지 않는다면 성매매 조직과 성구매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는 비난이다. 또 하나는 비범죄화를 ‘합법화’로 확대 해석해 성매매가 조장되고 확산됨으로써 사회의 건전성을 해칠 것이라는 걱정이다.



 ‘성을 사고파는 게 범죄냐’는 문제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폭력·학대가 범죄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에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과 그 안의 폭력 등 불법성을 분리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도덕적·사회적 정의 차원에서도 성매매는 변호받기 어렵다는 점에서 성매매를 범죄로 보는 것은 사회적 정의에 부합하는 것으로 옹호받았다.



 그런데 우리의 정의로운 신념을 위해 포기한 것이 있다. 바로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이다. 앰네스티 결정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그녀들의 인권은 거론하지 않는다. 다만 성매매 조직과 구매자들을 벌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만 표명한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그들을 벌하기 위해 그녀들의 인권은 짓밟혀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놔야 한다. 인권 보호와 차별 철폐는 현대의 정신이다.



 성매매는 인류가 시작된 이래 끈질기게 지속됐다. 어느 시대도 도덕과 정의감으로 이를 뿌리 뽑지 못했다. 성매매는 인류의 가장 추한 실존적 삶의 한 부분이다. 그 추함 때문에 가장 학대당한 것은 가장 약자인 성매매 여성들이었다. 그들의 인권은 그저 무시당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선 성매매가 범죄여서 폭력에 대해 법적 보호를 요청할 수도 없다. 범죄자는 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물론 우리나라 성매매업의 양상은 복잡하다. 원래 성매매는 생존을 위해 여성이 마지막으로 가는 업종이었는데 지금은 주부·학생까지 뛰어들고, 성매매 업주의 87%가 2030 청년 세대라 할 정도로 쉬운 창업 아이템이 됐다. 게다가 알선·구매자도 처벌하는 철저한 ‘금지주의’여서 점점 더 지하로 숨고 있다. 그러니 그녀들의 인권은 논의조차 안 된다. 그럼에도 단속으론 이 기형적 성매매를 제어할 수 없다는 점도 드러난 단계다.



 우리도 이젠 그녀들을 뒤쫓는 대신 비범죄화로 양지에 끌어내 실태를 파악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노력을 통해 그 안의 폭력과 범죄에 대응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성매매 특별법’도 그녀들의 인권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범죄화와 단속으로 그들의 인권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앰네스티의 제안을 우리 성매매 정책이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약자들의 인권을 짓밟고 세우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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