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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중국 경제, 모르핀보다 수술이 우선

중앙일보 2015.08.18 00:07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철호
논설실장
최근 중국 관리가 몰래 금융위원회를 방문했다. 1989년 한국의 참담한 증시 부양 실패의 교훈을 얻기 위해서다. 자료도 한 보따리 받아갔다. 지난주 중국은 사흘 연속 위안화 가치를 4.65% 떨어뜨렸다. 중국은 “시장 환율로의 접근”이라고 하지만 두 가지 사실은 감출 수 없다. 우선 환율까지 손대 수출 확대를 꾀할 만큼 중국 경제가 어지간히 절박해진 것이다. 또 하나, 성장률을 자극하기 위해 ‘정책 총동원령’을 내렸다는 점이다. 중국은 통화 완화(금리 및 지급준비율 인하), 재정 확대(50조원 추가 투자), 증시부양책에 이어 환율 조정까지 숨가쁘게 모든 정책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리커창 총리의 ‘인위적 경기부양과 정부 간섭의 최소화’ 원칙과 정반대다.



 중국 공산당은 매우 초조한 분위기다. 경기침체로 공산당 일당독재가 흔들릴까 겁먹은 표정이다. 사실 그런 역사적 사례는 차고 넘친다. 장제스가 1949년 대만으로 쫓겨난 것도 악성 인플레 때문이었다. 국공내전(1927~49년) 동안 물가상승률은 200만%나 됐다. 그나마 45년까지 일본 식민지였던 대만의 인플레만 안정적이었다. 89년의 천안문 사태도 마찬가지다. 개혁·개방 이후 10년간 고성장과 함께 사회불안이 누적되면서 87~88년의 20% 넘는 인플레가 민중 봉기의 결정적 구실을 했다.



 중국 공산당이 경기를 띄울 가장 확실한 수단은 부동산이다. 중국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4%나 된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은 거품 붕괴를 우려할 만큼의 위험 수위다. 주택 구입층인 생산가능인구(15~64세)도 2013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고, 가계대출의 76%인 모기지가 언제 부실화될지 모른다. 중국판 하우스 푸어인 팡누(房奴·주택의 노예)가 보통명사가 될 정도로 사회양극화도 심각하다. 그렇다고 돈을 함부로 풀어 경기를 띄우기도 어렵다. 이미 지방정부와 국영기업의 부채는 턱까지 차올랐고, 신용불량자인 카누(카드 노예)도 급증하고 있다. 중국의 부채 통계도 믿기 어려운 수치다. 최근 부도처리된 부동산기업 자자오예(佳兆業)의 빚도 당초 5200만 달러(약 563억원)로 신고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100억 달러가 넘었다.



 지금 중국은 30여 년간 고도성장에 따른 성장통을 앓고 있다. 그 근본 원인은 누적된 과잉 부채, 과잉 설비 등이다. 이로 인한 6%대 중반의 둔화된 성장률과 급격한 부채 증가는 결코 좋은 조합이 아니다. 이런 추세라면 중국이 시간은 벌지 모르지만 결국 세계 경제의 뇌관으로 남게 된다.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온 한국의 경험을 떠올리면 80년대 중반 중화학공업 구조조정 같은 근본 처방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모르핀 진통제만 잔뜩 놓을 뿐 과감하게 고통스러운 수술을 할 용기를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중국 특수는 세계경제의 기관차였으며 한국 경제에 천금 같은 순풍이었다. 이제 그 바람의 방향이 뒤바뀔 조짐이다. 벌써 현대·기아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곤두박질하고 있으며 화웨이·샤오미 등은 삼성전자를 위협하고 있다. 전략적 자산이던 중국이 전략적 부담으로 바뀌는 변곡점을 맞고 있는 분위기다.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는 숨 고르기 중이지만 그 방향은 정해졌다. 앞으로 5% 정도의 추가 절하 가능성은 열어놓아야 할 듯싶다. 원래부터 미국이나 중국 같은 강대국들은 근린궁핍화의 비난에 아랑곳없이 스스로 만족하는 수준까지 환율과 금리를 밀어붙이곤 했다. 중국이야 3조70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쌓은 만큼 외환위기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주변국을 덮칠 쓰나미다. 지난 94년에도 중국은 위안화 환율을 무려 51% 올린 적이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선진국이라며 원화강세를 고집하다 참혹한 외환위기를 맞았다.



 더위가 꺾이면서 9월이 다가온다. 우리 앞에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의 경제 불안이 똬리를 틀고 있다. 동아프리카에는 ‘두 마리 코끼리가 싸우면 언제나 다치는 것은 풀’이라는 속담이 있다. 한국이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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