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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소재부품산업, 제조업의 활로

중앙일보 2015.08.18 00:06 경제 8면 지면보기
성시헌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끓는 물속에 개구리를 넣으면 바로 뛰쳐나온다. 그러나 찬물에 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변하는 온도에 안주한 개구리는 뜨거워지는 것도 모르고 끓는 물속에서 천천히 죽어간다. 영국의 생태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유명한 ‘삶은 개구리’ 실험이다. 기업 혁신의 대가인 잭 웰치는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을 ‘삶은 개구리’에 비유해 경고했다.



 최근 한국 제조업에서 ‘삶은 개구리 증후군’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올해 총 무역액이 1조 달러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2011년 이후 4년 만에 처음이다. 세계 시장에서 일본, 미국 등 선진국은 최첨단기술을 더 발전시켜 성큼 앞서고 있고 뒤에서는 중국의 추격에 숨이 차다. 한국 고도성장의 견인차이자, 세계 금융위기 극복의 원동력이었던 제조업에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정부는 최근의 이같은 위기를 돌파하고 제조업 생태계를 개혁하기 위한 ‘제조업 혁신 3.0’ 정책을 추진 중이다.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제품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고, 창의적인 스마트융합 신산업을 창출하자는 것이다. 이 전략의 핵심 중 하나가 국내 소재부품 산업의 육성이다. 소재부품 분야의 무역 흑자가 지난해 1000억 달러를 넘어선데 이, 올해도 사상최대치를 경신할 전망이어서 기대가 크다.



 특히 개발이 어렵다는 소재분야에서 2010년부터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 추진 중인 ‘세계일류소재’(WPM: World Premier Material) 개발사업의 최근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WPM 사업을 통해 개발된 초경량마그네슘 소재는 세계 최정상의 슈퍼카 제조업체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으며, 소재 선진국에서조차 상품화를 포기했던 고분자 폴리케톤 신소재를 세계 최초로 개발, 양산화에 성공했다. 이차전지와 디스플레이 등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분야의 국산화율이 60~70%로 크게 향상됐고, 지난 5년간 10여개의 중소기업이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큼 자랐다.



이러한 WPM사업이 그동안의 성과를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도록 하려면 국내 산업환경의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현재의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국내 수요기업의 오래된 관행이다. 기술 수준이 비슷함에도 그동안의 관례에 따라 국산 소재 사용을 꺼리는 것이다. 심지어 대기업 내에서조차 계열 회사에서 개발한 소재를 계열내 수요회사에 공급하지 못해 애써 개발한 신소재를 활용도 못 하고 폐기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런 점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소재 개발기업은 개발 초기부터 수요기업과 협력해, 소재로부터 부품 및 제품이 제작되는 세부공정의 문제점까지 해결하는 ‘ESI’(Early Supplier Involvement) 전략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또한 수요기업도 제품화 기술과 자금 지원, 개발소재 적용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준다면 소재는 물론 부품 산업 전반에 걸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시헌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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