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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보며 힐링 찾는 어른들 “아이들은 몰라요, 우리들 세계”

중앙선데이 2015.08.15 03:24 440호 16면 지면보기
애니메이션 열풍이다.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10위권 안에만 4편이 포진해 있다. ‘명탐정 코난: 화염의 해바라기’(누적 관객 32만 명)와 ‘극장판 요괴워치: 탄생의 비밀이다냥!’(54만 명)은 방학 특수 때문에 그렇다 해도, ‘인사이드 아웃’(463만 명)과 ‘미니언즈’(196만 명)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아이들보다 성인 관객 비중이 높을 뿐더러 개봉 2~4주차에도 관객이 꾸준히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에는 ‘무민 더 무비’와 ‘숀더쉽’이 개봉하면서 이 열기를 이어갈 전망이다. 아이들이나 보는 영화로 치부됐던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어른들의 마음을 공략하게 된 걸까.

성인 관객 몰리는 애니메이션

위로의 미학 담긴 ‘인사이드 아웃’
먼저 포문을 연 것은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이다. 기쁨(joy)과 슬픔(sadness), 버럭(anger)ㆍ까칠(disgust)ㆍ소심(fear) 등 다섯 감정이 머릿 속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일한다는 발상 자체가 획기적이었다. 대장인 기쁨이 지휘를 맡았지만 각각의 감정들은 순간의 기분에 충실했다. 까칠은 11살 소녀 라일리가 싫어하는 브로콜리가 눈앞에 놓일 때면 단호하게 거부했고, 소심은 그녀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했다. 그렇게 감정이 쌓일 때마다 본부는 각 감정에 따른 색깔의 구슬을 만들어냈고, 이중 강력한 힘을 가진 감정은 핵심 기억이 됐다.
영화의 매력은 관객이 캐릭터와 스토리 어디라도 자신을 쉽게 대입할 수 있다는 개방성에 있다. 이를테면 라일리가 언제까지나 밝고 명랑한 소녀로 남길 바라는 기쁨은 혹여 슬픔이 일을 그르칠까 곁에도 오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슬픔을 맞닥뜨린 라일리가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관객들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때로 눈물을 흘려도 괜찮다는 것을, 마음껏 슬퍼할 수 있음이 오히려 다행임을 말이다.
상상 속 친구 빙봉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한 명 쯤은 그런 친구가 있지 않았나. 인형이 됐든 달님이 됐든, 모든 비밀을 털어넣고 어떤 일도 기꺼이 함께 해주던 나만의 든든한 지원군 말이다. 그러니 관객들은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머릿 속에서는 저마다의 어린 시절로 각기 다른 추억 여행을 떠나게 된다.
사실 이 작품의 의미를 아이들이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 인격 형성 과정이라는 추상적인 내용이기도 하거니와 기억과 망각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내용이 무엇을 취하고 버리는가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아동들로서는 받아들이기에 무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애니메이션이 영화의 한 장르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아동이라는 특수한 집단을 대상으로 영화를 만들기보다는 온가족이 다함께 볼 수 있도록 타깃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며 “덕분에 사춘기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공감하면서 볼 수 있는 작품이 탄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피트 닥터 감독은 “대체 딸의 머릿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한 마음에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성인 관객층에 대한 고려가 있었던 셈이다.

외계 생명체의 치명적 귀여움 ‘미니언즈’
반면 ‘미니언즈’는 캐릭터로 정면 승부를 본다. 일루미네이션이 제작한 ‘슈퍼배드’ 시리즈에 등장해 씬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온 미니언들이 주인공으로 승격한 만큼 이들의 매력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당대 최고의 슈퍼 악당을 찾기 위해 떠난 원정이 이야기의 전부다. 더구나 이 영화엔 별다른 대사도 없다. 스페인어ㆍ인도어ㆍ중국어가 뒤섞인 암호같은 중얼거림에 모두가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바디랭귀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 단순한 스토리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로 캐릭터의 힘이다. 우선 케빈은 리더답게 사리 판단력이 뛰어나다. 미니언 역사상 최장신일 뿐더러 자존심도 엄청나게 강하다. 외눈박이 스튜어트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매사에 귀찮은 듯 시크한 표정이 트레이드 마크다. 하지만 바나나를 보면 환장하고 늘 기타를 치며 음악을 즐긴다. 막내 밥은 소심하지만 꼭 필요한때 치명적인 귀여움을 발산한다. 무한 긍정에너지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다.
미니언의 인기는 캐릭터 상품으로 옮겨붙었다. 삼립식품이 지난 6월 일찌감치 미니언즈 빵 4종을 출시한 데 이어 농심은 카프리썬과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였다. 그중 가장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바로 맥도날드 해피밀 시리즈. 장난감을 한꺼번에 사고 싶어하는 고객들의 요청이 쇄도하자 장난감 5개와 해피밀 세트 1개, 쿠폰 4장으로 구성된 1만7500원짜리 스페셜 세트까지 선보였다. 매장별로 100개 한정이란 프리미엄을 타고 1, 2차 모두 판매 즉시 매진됐다. 홍보팀 장고운 과장은 “미니언즈 반응이 워낙 좋아 처음으로 스페셜 세트를 기획하게 됐다”며 “평일인데도 줄 선 사람들이 대부분 20~30대여서 키덜트 열풍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영화진흥위원회 김세훈 위원장(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은 “귀여운 캐릭터에 노란색이 호감을 더했다”며 “영화를 관통하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정서가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한편 60년대 음악들이 최근 복고 트렌드와도 맞아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미니언즈는 개봉 첫주 북미 오프닝 스코어 1억 달러를 달성하며 ‘토이 스토리3’에 이어 역대 애니메이션 오프닝 순위 2위를 기록했다. 현재 전 세계 수익은 9억 1255만 달러(7위)로 ‘슈렉2’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다음달 중국ㆍ터키ㆍ그리스 등 개봉을 남겨두고 있어 10억 달러는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순수·모험의 세계 ‘무민 더 무비’와 ‘숀더쉽’
13일 개봉한 ‘무민 더 무비’는 ‘인사이드 아웃’의 감수성을 이어받는다. 원작자 토베 얀손 탄생 100주년, 캐릭터 탄생 7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이번 영화는 1955년 발표된 원작『무민, 리비에라 해변을 가다』를 바탕으로 했다.
무민 가족이 남쪽 바다의 휴양지 리비에라로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이야기는 오랜 세월이 무색하게 지금도 충분히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비키니가 없어서 수영장에 못 간다”고 투덜대는 스노크메이든은 매일 아침 옷장에 서서 고민하는 우리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필요한 것을 얻었으니 됐다며 남은 돈을 건네는 대범함과 난파선에서 금화 상자 대신 이국의 씨앗 상자를 택하는 순수함은 우리가 미처 지니지 못한 감정이다. 우리가 사는 곳은 “평화롭게 살며 감자 심고 꿈꿀 수 있는” 무민 골짜기가 아니므로. 해먹에 몸을 뉘이고 바위 정원을 가꾸는 그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같은 날 관객들을 찾는 ‘숀더쉽’은 ‘치킨 런’‘월레스와 그로밋’을 만든 영국 아드먼 스튜디오의 신작이다. 집 나간 아빠를 찾기 위해 도시로 모험을 떠나는 양 숀과 친구들의 이야기다. 컴퓨터그래픽이 아닌 점토로 빚어낸 캐릭터들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고, 역시 대사는 거의 없지만 여기저기서 큭큭 웃음이 터져나온다.
하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스토리가 담겨 있다. 주종 관계였던 이들이 우정을 넘어 연대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은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지만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기 때문이다. 당분간 어른들의 생채기 난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은 애니메이션의 역할일 듯 하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각 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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