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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냐 화해냐 그것이 문제로다

중앙선데이 2015.08.15 03:30 440호 25면 지면보기
고통은 이제 그만 잊자는 사람도 있지만, 역사는 되풀이되며 우리는 과거에서 미래를 배운다. 쓰라린 역사라도 끊임없이 상기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번 주로 꼭 광복 70주년을 맞은 지금, 그 시대를 회고하는 문화 콘텐트는 의외로 많지 않다. 영화 ‘암살’ 정도가 화제다. ‘광복 70주년 기념’이란 부제를 달고 나온 두 편의 창작 뮤지컬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초연 20주년을 맞은 ‘명성황후’(9월 10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와 제작기간 3년을 거쳐 올해 초연 무대에 오른 신작 ‘아리랑(9월 5일까지 LG아트센터)’이다. 같은 역사를 돌아보고 있지만 전혀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어 흥미롭다. 지난 20년새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이 그만큼 다양해진 걸까.

광복 70주년 기념 뮤지컬 ‘명성황후’ 와 ‘아리랑’


민족의 분노 불붙이는 ‘명성황후’
“백성이여 일어나라 일어나라…동녘 붉은 해 동녘 붉은 해 스스로 지켜야하리 조선이여 무궁하라 흥왕하여라~.”
다시 돌아온 을미년. 시해당한 국모와 조상의 영혼들이 비장하게 부르짖는 이 군가풍 엔딩 합창곡에 가슴 뜨거워지지 않는 한국인이 있을까. 애국심이 불끈 솟아난다. 커튼콜에 하나둘씩 옆 사람 눈치를 보며 일어나는 여타 뮤지컬과 달리 ‘명성황후’는 언제나 객석을 한 덩어리로 일으켜 세운다.
1995년 초연된 ‘명성황후’는 창작 뮤지컬의 대명사다. 66년 최초의 창작뮤지컬 ‘살짜기 옵서예’가 나온 이래 변변한 후속타 없이 외국 뮤지컬만 줄창 불법 복제해 올리던 척박한 시절이었다. ‘신의 아그네스’ 등 연극으로 명성을 쌓은 연출가 윤호진이 브로드웨이 유학을 다녀와 국민작가 이문열에게 원작을 의뢰하고 대중음악 창작자 김희갑·양인자 부부를 동원해 야심차게 만든 ‘창작뮤지컬 부활 프로젝트’다. 지난 20년간 ‘130만 관객 돌파’ ‘아시아 최초 브로드웨이 진출’ 등 숱한 기록을 세우며 대한민국 대표 뮤지컬로 군림해 왔다.
‘대한민국 국가브랜드대상’(2010)까지 수상한 ‘국가대표 뮤지컬’답게 ‘명성황후’는 조선 왕실의 권위와 화려함을 강조하는 볼거리·들을거리가 퍼레이드로 펼쳐진다. 모든 대사를 노래로 처리하는 송쓰루 형식과 대규모 합창이 빼곡한 웅장한 스케일은 대형 오페라 못지않다. 올해 20주년을 맞아 더욱 세련된 편곡으로 감동의 수위를 높였다. 97년부터 17년 동안 이태원이 지켜온 히로인 자리는 김소현·신영숙 등 성악을 전공한 최고 가창력의 두 배우가 폭발적인 호소력으로 국모의 위엄을 이어간다.
비주얼도 여느 유럽뮤지컬을 넘어서는 웅장함과 화려함을 갖췄다. 결혼식과 대연회, 전투, 수태굿 등 뮤지컬 무대에서 예상 가능한 각종 스펙터클 장면들이 전통적인 한국미를 발산하는 형태로 총동원된다. 최고의 무대미술가 박동우가 디자인한 경사진 2중 회전무대가 순식간에 역사의 다양한 국면들을 조명해내고, 총 600벌에 이르는 의상과 ‘무과시험’ 등 무예에 가까운 절도있는 군무의 향연도 무대를 다채롭게 수놓는다.

초연 후 20년 … 민족주의 더욱 강조
이런 화려함 뒤로 한꺼풀씩 쌓여가는 것이 민족의 분노다. 이 무대에서 일본은 ‘절대악’으로 그려진다. 그 상징적 존재가 을미사변의 주범인 미우라 공사다. 그는 명성황후에 못지않은 포스를 뿜으며 대립구도를 세운다. 갖은 어려움을 물리치며 나라를 지켜가던 여장부형 국모와 용감한 우리 장수의 숭고한 애국과 충절, 이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한 러브라인이 그에 의해 무참히 꺾여진다. 이런 팽팽한 대결구도는 대극장 객석을 대동단결시키는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아름답고 자랑스럽던 우리 것이 ‘절대악’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때 국민은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연 이래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런 선동적 민족주의 구도는 확고하다. 오히려 이번에 새롭게 도입한 무대장치는 이분법을 더욱 부각시킨다. 2막에 명성황후와 대사들이 대화를 나누던 무대 바닥이 상승하며 지하에서 미우라 일당이 시해를 도모하는 장면이 2층 구조로 드러나는 순간은 거의 충격적이다. 발톱을 숨긴 저들의 이중성을 파헤치는 듯하다. 한일관계가 최악에 이른 시점에 다시 도래한 을미년에, 되새겨야 할 역사의 순간을 이보다 더 강렬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피날레 대합창과 함께 이 작품의 새로운 시그니처로 기억될 만하다.



슬픔 달래고 화해 권하는 ‘아리랑’
“살어야 혀 살어야 혀 아홉 번 죽어도 살어야 혀 살어야 혀 살어서 견디고 이겨야 혀~”
‘아리랑’도 쓰라린 역사를 소재 삼고 있지만 애국심이나 민족주의 코드는 없다. ‘명성황후’에서 국모의 혼백이 ‘국가의 흥왕’을 외쳤다면 ‘아리랑’의 어머니 감골댁의 혼백은 ‘버티는 삶’에 관해 읊조린다.
일제강점기 한민족의 끈질긴 생존과 투쟁의 역사를 다룬 조정래의 동명 대하소설이 원작이지만 고선웅 연출이 감골댁 가족사를 중심으로 재편한 무대는 투쟁보다는 생존에 초점을 맞췄다. 자신의 대표작 ‘푸르른날에’에서 역사의 비극 뒤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비춘 것처럼, 고선웅의 ‘아리랑’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이리저리 떠밀려야 하는 개인을 불쌍하게 봤다.
양반 출신 송수익이 의병대를 이끌다 위기에 처하고 수국과 득보의 애틋한 사랑이 비극을 맞지만, 그렇다고 한일 대립구도는 아니다. 진짜 주인공은 이도저도 아닌 친일파 양치성이다. 송수익의 머슴출신으로 밀정 역할을 하며 수국까지 차지하지만 결국 모두에게 버림받는 복잡한 캐릭터다. “그 시절에 태어났더라면 아마 겁이 많아서 변절했을 것”이라 고백하듯, 친일파라고 마냥 ‘절대악’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 고선웅스럽다.
양치성은 레미제라블의 쟈베르처럼 매력적인 악역이다. 애초에 천대받던 머슴 계급에게 애국심을 기대할 수 있을까. 양치성이 아름다운 테너 음색으로 부르는 슬픈 노래에 일본의 침략으로 야기된 혼란이 비천한 인생을 상속받은 한 개인에겐 그저 혁명과 같은 기회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뿐 아니다. 일본군에게도 인간적 시선을 취하며 과연 ‘절대악’이란 게 가능한지 묻는다. 일본 장교 고마다가 암살당하자 그 부친이 절규하는 대목은 저들도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뻔뻔한 일본’ 부끄럽게 만드는 관대한 시선
‘아리랑’의 주제가 분노가 아닌 화해라는 건 엔딩으로 갈수록 선명해진다. 수국과 득보의 사랑은 결국 상여에서 맺어지지만 상여 행렬은 진도아리랑과 함께 혼례 행렬만큼이나 흥겹게 그려진다. 독립군들이 죽은 일본군들을 손잡아 일으켜 세우면, 저들은 멋쩍게 일어나 ‘미나상 스미마셍(여러분 죄송합니다)’을 외친다. 혼백들끼리는 용서와 화해의 절차가 끝난 걸까. 좀처럼 사죄를 거부하는 아베 정권을 떠올릴 때 엎드려 절받기가 민망스럽지만, 어쩌면 저들을 스스로 부끄럽게 만드는 장면이 될 것 같다.
비주얼은 아쉽다. 연극판 출신 고선웅은 배우의 동선만으로 현실과 상상, 산 자와 죽은 자가 뒤섞이는 초월적 공간을 만들어냈지만, 대극장을 채울만한 스펙터클에는 미치지 못했다. 도스 시절의 PC화면처럼 픽셀이 성겨 보이는 LED스크린 영상에 의존한 텅 빈 무대가 과연 ‘명성황후’의 무대를 만든 그 박동우의 작품 맞나 싶다. 평평한 무대를 가로지르는 무빙워크만이 속절없이 떠밀려가는 민초들의 운명을 은유하고 있을 뿐.
하지만 뮤지컬의 핵심이라 할 노래와 음악에선 큰 가능성을 보여줬다. 국악작곡가 김대성이 작곡한 서정적인 사랑의 테마 ‘진달래와 사랑’,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어떻게든’ 등은 만만찮은 감동에 중독성까지 갖췄다. 이미 글로벌한 인지도를 자랑하는 민요 ‘아리랑’과 함께 가장 한국적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가진 창작 뮤지컬이 된 셈이다. 이 ‘화해의 대서사시’도 보다 완성된 비주얼로 20주년을 맞게 되길 기대한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에이콤인터내셔날·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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